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우리 집이라고 명명했던 곳은 총 네 차례 바뀌었다. 장소의 변화로 따지면 세 차례지만, 집안의 완전 변신은 네 번이었다.
어리고 또 어렸던 시절에, 우리는 우물이 있는 초록색 대문 안, 엉덩이만 간신히 걸칠 수 있는 좁고 긴 마루가 딸린 작은 방에 함께 살았다. 어리고 또 어렸기에 특별한 기억은 없지만 늘 눈 앞에 그려지는 그 집은, 녹조 가득 낀 우물과 우물 옆 초록색 대문 한 컷, 높다란 마루가 깊었던 주인집 한 컷, 주인집 소유의 식료품상으로 들어가는 거 무퇴 퇴한 문 한 컷, 좁고 긴 마루 한컷, 마루 안쪽에 들어선 미닫이 문에 맞붙은 하늘빛 파아란 부엌문 한컷, 이렇게 네 장의 스틸 영상으로만 남아 있다. 그중, 어리고 또 어렸던 나의 영혼을 사로잡은 이미지는 녹조가 잔뜩 낀 우물과 초록 대문 사이 하늘이었다. 좁은 마루와 작은 방 하나를 품은 우리 집, 그 위로 밋밋하게 올라간 슬래브 지붕 선과 거무퇴퇴한 식료품상을 덮어주던 마름모 번쩍 들린 추녀 선 사이의 애매모호한 공간에 걸쳐 미동하지 않던 하늘. 녹조 낀 우물 안팎에서 뛰어놀아도, 초록 대문을 비행기 삼아 횡으로 날아보아도 미동하지 않던 애매모호한 공간에 걸친 하늘. 어리고 또 어렸던 그 시절에 그 하늘은 변하지 않는 모호함으로 기억 저편에서 항상 맴돌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즘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드디어 우리 집을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 집이 형태를 바꾸기 전, 집은 크게 세 덩어리이었다. 한 덩어리 아래채는 전세 준 남의 집이었고, 허락 없이 편안하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두 덩어리가 온전히 우리들의 것이었다. 대문과 가까운 큰 덩어리에는 유리로 된 미닫이문과 맞닿은 진한 황토색에 깊은 마루가 있었고, 마루 안쪽으로 큰 방이 있었다. 중심이 되는 커다란 덩어리 왼쪽 옆으로 작은 부엌이 있었고, 부엌 왼쪽 옆으로 작은 덩어리 한 채가 있었다. 언니와 나의 방이었다. 큰방 마루에서 가볍게 점프를 하면 다다를 수 있는 좁은 마루가 딸린 우리들의 작은 방. 이 방은 나에게 노오란 창고 같았다. 언젠가 모르게 들어온 갈색 광택을 내는 피아노 한대가 있었고, 큰방과 연결된 다락방이 있었고, 책들이 꽂힌 작은 책장이 있었다.
어느 새벽기도에서 엄마는 하얀 옷을 입은 미소천사가 예배당에서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았고 이후로 언니와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언젠가 모르게 갈색 광택 번쩍이는 피아노 한대가 들어왔다. 피아노를 치면 칠 수록 내적 고요함이 찾아왔지만, 이상하게도 외적 분란도 함께 따라왔다.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검은색 음표들이 우리 집 담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는 앞집 삼촌집 벽을 뚫고 들어가기만 하면, 용광로 같던 삼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절대 미학을 가진 엄마의 노력으로 담벼락과 대문 앞에는 알록달록 예쁜 화분들이 즐비했었는데 어느 또 그 어느 날 용광로 같던 삼촌이 불을 뿜어 모조리 사그리 완전히 철저히 하데스의 지옥으로 처넣어버렸다. 어찌 되었든 파이노의 내적 고요함은 그래서 늘 더 깊은 내적 고요 속으로 이끌지 못했다.
노오란 방에는 아직도 그 방이 창고처럼 느끼게 한, 다락방이 하나 있었다. 조그마한 갈색 나무 문을 열면 작은 계단이 위로 향해 있고 그 계단을 기어오르다 보면 다락방 치고는 높고 좁은 방이 큰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절대 미학을 소유한 엄마의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자태가 향기를 뿜어내는 엄마의 재봉틀과 갖가지 생활용품들과 바람이 부는 엄마의 옛 책들이 엄마의 질서 따라 놓여 있었다. 엄마가 과연 이 책들을 읽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어찌 되었든 엄마의 옛책을 만지면 스르륵 하고 세상에도 없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바람의 책들은 작은 책장 속, 커다란 세계 어린이 명작 동화를 꺼내 들게 했다. 노란 방 한쪽 귀퉁이에서 나는 유리구두를 신고 있고, 나는 피리를 불고 있었으며, 나는 갖가지 주인공들의 옷을 입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되어보고 세상에도 없는 여러 나라에 살아보고 세상에도 없는 여러 환경에 처해보는 버라이어티 한 경험을 하면서 나는 내적 고요를 따라갔다. 그 고요 속으로 깊숙이 깊숙이 들어갈수록 외적 고요도 함께 찾아왔다. 용광로 같은 삼촌도 어떤 방해도 모두 책 표지에서 차단된 것이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집안의 모든 커튼은 내려쳐지고 엄마는 납작하고 기다란 은색 바랜 빛을 내는 라디오를 조용히 틀고 우리를 꼭 껴안아 두툼한 목화솜 이불속에 넣어두었고, 그러한 밤이 지나면 나는 작은 날개 내 발목에 달아 매듯 살짝 날아 나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건너뛰어 다니길 무한 반복하던 어느 날, 우리 집은 공사에 들어갔고, 두 덩어리의 집은 아주 커다란 한 덩어리로 탈바꿈을 했다. 분리된 나의 노란 방은, 갈색 문으로 둔갑했고, 뜀 공간이 걷는 바닥으로 변화되자 뛰면 나타나는 발목 날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 퇴화돼 버렸다. 하지만 분리된 나의 노란 방이 갈색 문으로 둔갑하면서 책장은 더 커졌다. 더 많은 책들이 들어왔다. 세상의 다양한 정보가 득실 되던 백과사전, 어린이가 마땅히 읽어줘야 하는 창작동화전집들, 세계 고전문학전집, 바람 부는 엄마의 이상한 책들... 나를 독서의 세계로 데뷔시켜줬던 커다란 세계명작 동화전집들... 갈색 문을 열기만 하면 노오란 바람 가득 불어와 와락 나를 끌어안고는 그 방안으로 더욱더 끌어당겼다. 갈색 문은 닫히고 노오란 빛 자욱이 낀 그 방 안에서 한층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주인공들을 만나노라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하룻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마지막 이사. 정원이 딸린 이층 집. 노란 집에서 시작되어 갈색 문 안쪽 작은 방에 이어 완전히 독립적인 나의 방이 생겼다. 세련된 핑크 꽃 가지가지 하늘로 흐르는 벽에 대항해, 민트로 정리된 침대와 책상, 거울이 달린 서랍장 그리고 책장에, 엄마의 질서로 자리가 잡힌 나의 방이 생긴 것이다. 녹조 낀 우물과 초록 대문 사이에서 놀던 애매모호하던 하늘이 민트 책상에 달린 노란 전등으로, 내 발목에 날개를 만들어준 나의 작은 방이 민트색 커다란 책상으로, 갈색 문 안 노오란빛 자욱하던 그 방은 내 마음으로 화했다. 나의 방이라고 지켜졌던 방 안으로 들어가면 바깥의 소음은 차단이 되고, 민트 책상 언저리 빠알간 작은 버튼을 누르면 노오란 빛 전등이 켜지며 민트색 커다란 책상은 기다린 듯이 나를 다른 세상으로 옮겨줄 활주로가 되고,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책들은 나만이 탈 수 있는 비행기가 되어,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삶으로 옮겨주었다. 퇴화된 발목의 날개는 손목의 날개가 되어 쓰게 하고 읽게 했다.
'독서가 취미예요'라고 하면 유치한 시대가 되어버린 이 시대 속에서 나는 이렇게 독서가 취미가 되어 있었다. 특기라고 할 수 없는 독서습관 때문에, 나에게 독서는 유일한 취미이다. 좋아하는 작가 마르케스가 한 산문에서 독서 습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독서 습관은 젊었을 때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배울 수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 그런 습관을 강요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그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이런 독서 습관은 전염에 의해 획득된다. 일반적으로 훌륭한 독자의 자식들은 훌륭한 독자가 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독서 습관은 전 가족의 습관이 되는 것이다. 음악도 이와 비슷하다. 또한 이 두 경우는 어른들이 압력을 가할 경우 반대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즉 억지로 강요할 경우, 독서와 음악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언젠가 나는 위대한 음악 교수가 어린아이들에게 피아노 수업 시간에 하는 일상적인 연습을 통해 피아노를 배우게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교육법은 아이들에게 정말로 고문과 같기 때문이다. 그 음악 교수의 교수법은 이런 것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인 것이었다. 즉 그는 집에 피아노를 두어서 어린아이들이 피아노를 가지고 장난치게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 마르케스 '무슨 책을 읽으십니까' 중
어린 시절 책들이 빛을 뿜었던 작은 방들이 나를 전염시켰던 게 분명하다. 바람 부는 엄마의 책들에 묘한 갈망과 그 갈망을 채우기 위해 커다란 세계 명작들 속을 헤매었고 그 헤매는 시간 속에서 커다란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 공간이 더 많은 책들에 대한 욕구로 바뀐 것이다.
우리 집안은 학자 집안도 아니었고, 우리 집은 책 읽기보다도 생계가 바쁜 집이었기에 책을 감염시켜 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행운처럼 나에게는 책들이 산적한 작은 방이 있었고, 사람이 아니라도 나를 독서에 전염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나에게 독서는 내가 가져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의 출구였고, 내적 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활주로였고, 깨어나기 싫은 동굴이었고, 나를 찾아가는 정신의 미로였고, 해결하기 싫은 문제에 도피처였고, 해결책을 찾는 보물창고였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향연이었고, 두려움이 많은 내가 용기라는 싹튼 나무 지팡이를 꺼낼 수 있는 깨달음의 샘이었다.
어리고 또 어렸던 시절에 나를 눌렀던 애매모호했던 하늘, 검은 음표 너울너울 춤을 추면 용광로가 용솟음치며 터져 나오는 앞집의 소음, 바람 따라 불어오는 엄마의 눈물, 언니의 첼로 선율 따라 춤을 추는 집안의 사물들 소음들, 언니의 드로잉이 넘실대는 페인팅들, 질서 정연한 민트색 치고 오르는 노오란 안개들... 과거라 칭하는 모든 것들이 독서의 음률 따라 내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