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선생님은 시를 써 오라 했다. 수많은 단어들을 머릿속에 둥둥 띄우니 뇌성 치듯 빛 번쩍이며 머릿속에서 작은 무대가 있는, 노오란 빛 감도는 극장이 나타났다. 이야기가 귀를 타고 머릿속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극장의 노오란 불은 켜지고 무대는 펼쳐졌다. 극에 한참 빠져들 때면 어김없이 나만의 배우들은 살아 숨쉬었고, 그들만의 눈빛으로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만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돌 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바깥세상이라는 거친 비바람을 적절히 막아주고, 광활한 하늘에서 내리 쏘는 뜨거운 태양빛을 적당히 차단해주는 아버지의 울타리도 함께 사라졌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아팠다. 몇 달에 한 번씩 며칠을 병원에 다녀왔다. 이 시절 나에게 공포는 유치원에서 견학 갔던 절, 그 입구에 십이지상이었다. 십이지상이 지켰던 입구 통로에서 말 못 할 공포로 꼼짝을 못 했다. 동물도 사람도 아닌 거대한 상이 불 같은 화를 내며, 툭 불거진 눈에서 불꽃같은 레이저를 땅에 딱 달라붙은 나에게 쏘아댔다. 들어 올려진 한쪽 손이 금방이라도 나를 쳐서 절 안쪽 하데스로 넣어버릴 것만 같았다. 며칠 씩 어머니가 사라지면, 어머니가 십이지상 앞에 붙잡혀 있다고 생각했다. 극도의 불안으로 며칠을 잘 수 없었다. 그런 밤이 지나면 어머니는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런 어머니는 나에게 불구덩도 이겨낸 철의 여인 같았다.
철을 집어삼켰어도 어머니는 약한 여자였다. 거칠고 거친 바깥세상에서 무시무시한 타인이라는 용이 날뛰면 어찌할 수가 없었다. 철의 여인과 용과의 싸움에서 용이 집 안팎에서 타지 않는 불을 뿜어내면 땅은 지진이 난 듯 화를 내며 나를 잡아 삼켰고, 하늘은 크고 큰 곡소리를 내며 비바람을 내게로 쏟아냈다. 그럴 때마다 딱딱하고 커다란 책을 들어 끓어오르는 바깥을 차단시키고 읽기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읽기가 시작되면 나타나는 머릿속 극장에서 나의 배우들은 세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펼치며 바깥의 공포를 잊게 해 주었다. 그렇게 읽기는 아버지의 울타리이자, 피난처가 되었다.
읽기 안에서 만남의 향연은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고, 읽기 안에서 다채로운 세계는 나만의 매트릭스를 만들어주었다. 매트릭스 안에서 나는 상상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도 될 수 있었다. 매트릭스에서의 상상은 현실에서 쓰기로 발현되었다. '쓰기'에 한참 빠져 있을 때면, 하이얀 물 알갱이가 하늘에서 내려와 쓰고 있는 나를 두르고 휘어 감아, 땅으로 밀었다 위로 쓸어 올려 일으켜 세웠다. 그때, 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나를 직시했다. 읽을수록 세상을 향한 도전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쓸수록 현실이라는 땅을 작은 걸음으로 조금씩 넓혀갔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승리의 트럼프로 물질적 재산을 거머쥔 어머니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야 하는 마땅한 길- 사회가 만들어준 하나의 길만이 진리요, 생명이라 가르쳤다. 그 하나의 길에 쓰기의 길은 없었다. 군부독재와 군위 주의 잔재가 충만했던 학교는 ‘쓰기’ 안에서 실존하는 나보다는, 명문대를 입학하는 가상의 한 명이 필요했다. 나다움으로 나를 육방체의 꽃으로 피우려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읽기라는 울타리는 아버지라 상징되는 어떤 사람이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공간이었기에 현실 앞에서 나는 팔닥거리는 도전의 가슴도 삭혀버렸고, 앞으로 향해가는 작은 걸음도 향방 없는 잰걸음으로 만들어버렸다. 세상이 다시 공포가 되었다. 부재에서 오는 죽음의 공포, 결핍에서 오는 불안의 공포, 타인으로부터 오는 시선의 공포, 나라는 존재로부터 오는 불확실의 공포가 생에 두려움이 되었다. 생에 도전은 나만의 매트릭스에서 잠시 발동하다 이내 사그라들 뿐이고, 생에 두려움은 그럴싸한 대학으로 확실하고도 안정된 직장으로 가게 했다.
쓰기는 그저 고상한 취미이자 생을 살아가기 위한 부수적인 도구이지 쓰기만으로 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교육에 길들여져 갔다. 그럼에도 주어진 생으로 떨어지는 생사고락의 매 순간들에 찾아오는 깊은 밤, 짙은 새벽에 나는 쓰고 있었다. 쓰기는 나의 유일한 안식처요, 쉼이었다. 생존을 위협할 만큼 존재가 흔들릴 때에,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무엇이든 나는 쓰며 나의 나됨이 무엇인지를 허공에 묻고 또 묻고 있었다. 쓰기의 시간이 축적될수록 나다움에 대한, 타오르는 목마름에 부대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깊고 또 깊었던 어느 밤, 공허를 쓸어 담은 바람이 마음에 구멍으로 들락거리는 어느 밤이었다. 고의로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이 공허의 바람 따라 들어왔다. 회귀. 걷다 멈췄던 길 옆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나를 보았다. 주저앉아 있는 나의 실루엣 따라 보라색 선이 덧입혀졌다. 나라고 생각하며 만들었던 지난 시간에 일들이 보라선 안으로 빙그르르 회전했다. 회전 원 안으로 안으로, 내 안으로, 더 깊숙한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알 수 없는 서러운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서런 울음이 깊고 깊음 안에서 터져 올랐다. 깊음에서 눈물은 강이 되었고 몸 구석구석을, 기억 구석구석을 채워 오르고 오르며 쏟아 흘러나왔다. 불현듯 따스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며 하이얀 빛이 들이 비췄다. 하이얀 빛, 나를 가두었던 보라선으로 경계를 허물며 넘실댔다.
보라선이 풀리고 그곳에, 무엇이 나라고 할 수 없는 내가 서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실패의 순간에 아니, 어떤 순간에도 쓰고 있는 내가 있었다. 쓰기 안에서 하나의 두려움을, 다음의 두려움을, 다다음을 이기며, 가장 나 다운 나를 조심스레 찾아가 이전의 시간과 조율하고 있었다.
타인이 툭 던지고 간 작은 돌들로 갈팡질팡 만들어진 길 위에서, 타인의 숨을 쉬며 터덕터덕 걸어왔던 길은 나의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뒤를 돌아보니 어린 시절에 멈춰졌다고 생각했던 길이 희미하게 큰 원을 그리며 우회해 만들어져 있었다. 타인의 돌로 만든 타인의 길을 갔던 것이 아니라, 한 손에 펜을 한 손에 종이를 들고 나의 숨을 헐떡이며 나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새벽이 옴을 알리는 가냘픈 빛처럼 비로소 자유함이 쓰는 나에게로 흘러들어왔다. 나의 호흡으로 나의 길을 걸어왔던 내가 있었다. 쓰는 내가 가장 나 답더라.
창조주가 모태에서 나를 지으시고 지상이라는 복잡하고 복잡한 미로 속에 던졌다는 상상을 한다. 던지기 바로 직전에 거칠고 거친 황마 작은 주머니를 주며 존재가 혼란스러울 때 꺼내보라고 한다. 나만의 색이 배제된 사회적인 지시 사항을 따라 생의 미로를 풀어가다, 길을 잃고 주저앉아, 황마 주머니를 꺼내본다. 아주 작은 망원경이 있다. 들여다보니 렌즈 끝에 맺힌 상이 나의 글이다. 쓰기라는 망원경을 쥐고 생의 미로를 다시 풀어본다. 주저앉아 있는 이곳에서부터. 지금이 그렇다
쓰기는 데미안이 나에게 덮어 씌우고 가버린 데미안의 알을 쪼아 깨낼 수 있는 생존의 도구이고, 무지개 넘어 레프리칸이 보관하고 있는 ‘나’라는 황금상자를 찾아가는 나침반이고, 미운 오리가 자기의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 꼭 거쳐가야 하는 고요의 숲이고, 나의 발등에 등이며 걸어갈수록 만들어지는 나의 길에 빛이다
쓰다. 나의 생에 나의 호흡을 불어넣는다. 쓰는 나는 존재한다. 나로 존재하는 나는, 쓰며 나의 길을 만들어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