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음악이 시작된거야

Sound of Survival에서 Sound of Life로

by KeepWhatMovesMe

* 이 글은 기존에 브런치에 발행했던 글 [음악] 고통의 끝에서 음악이 시작되다의 일부를 가져와서 다듬은 글입니다.


혹시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요?

가사 한 구절에서 인간사의 보편성을 읽어낼 줄 알고, 멜로디 하나에도 잠들어 있던 감정들이 깨어나는. 그래서 음악 얘기만 시작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이 브런치북 『온힘을 다해 음악을 들었던 이야기』는 바로 그런 당신을 위한 거예요. 마치 당신이 옆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들려주는 이야기들. 그래서 이 모든 이야기는 반말이에요. 왜냐하면 음악 앞에서는 우리 모두 친구가 되니까요.


사이먼 & 가펑클 (Simon & Garfunkel)의 노래 중에 'The Sound Of Silence'라는 명곡이 있어. 이 노래의 가사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도입부의 이 구절이야.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 가사 Best 5를 고르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 가사를 이야기할 것 같아.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안녕, 어둠(고통)이여, 나의 오래된 친구야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다시 너와 이야기 나누려고 왔어.


어둠과 고통은 삶에서 떨쳐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나에게도 어쩌면 그것은 오래된 친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게 때로는 두렵지만, 나는 알아. 그 친구와의 만남은, 항상 내 인생의 더 나은 어떤 것과 연결되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난 그것을 과거로부터 배웠거든. 사실 고통이 내 인생의 더 나은 것과 연결되어져있다는 믿음은, 내 인생의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친구가, 실은 고통의 순간으로부터 온 경험 때문이야.


초등학교 3학년, 심장이 얼음처럼 차가워졌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때, 집에 외삼촌이 온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나는 본능적으로 기도하곤 했어. '심장이 얼음처럼 차가워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보이는 것, 들리는 것,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받지 않는 단단한 얼음처럼 그저 굳어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외삼촌은 엄마의 친동생이었지만, 그것 말고는 섞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어. 어릴 적 외할머니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상처 때문인지 엄마를 찾아와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를 격한 몸짓과 목소리로 호소했고,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 — 사업 자금만 있으면 이번에는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는 말—을 읊어댔어. 내 방 문을 닫아도, 귀를 막아도, 그의 목소리는 조용히 나의 세상 안으로 스며들어왔어. 나는 아직도 그 시절 문틈 사이로 침범해오던 10살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두려운 공기를 기억해낼 수 있어.


엄마는 외삼촌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지만, 외삼촌은 "자형(우리 아빠)에게 말하면 되지 않냐"며 "동생인데, 가족인데, 왜 이 정도도 못 해주느냐"며 소리쳤어. 그 목소리는 너무도 당당했어. "가족이잖아."


공감 능력은 거의 없지만 가장의 책임감과 성실함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우리 아빠, 공감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면서 거기다가 성실함과 책임감까지 갖춘 (내 얼마 안되는 좋은 특성의 모태이신) 우리 엄마. 나는 그런 부모님 아래에서 늦잠과 낮잠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한 채, 부지런함에 대한 강박을 품고 자랐던 것 같아. 그렇게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무장한 부모님과, 책 읽기를 좋아하는 두 딸이 있는, 나름 평범하고 조용하면서 평온한 4인 가족이 내 어린 시절의 대표 썸네일이라 할 수 있겠어.


그런데 외삼촌이 오면, 그 평화는 깨졌어. 저녁 시간에 아빠라도 있으면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오히려 내 방까지 스며드는 소리의 크기는 더 커졌어. 엄마를 괴롭히는 외삼촌을 질책하는 아빠의 목소리도 어쩔 수 없이 커질 수 밖에 없었고, 그 질책과 꾸중에도 절대 작아지지 않는 외삼촌의 목소리. 소리들이 소리 위에 쌓였어.


"그 삼촌 우리집에 못오게 해"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핏줄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라고 했어. 그리고 엄마는 그 외삼촌이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에게조차 무시받는 상황이 불편했었던 것 같아. "'그 삼촌' 아니야. '외삼촌'이야. 그리고 인사는 제대로 해야하지 않겠어?"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내 방에 들어갔을 때, 내 방과 연결된 베란다에 버려져 있던 카셋트 라디오가 눈에 들어왔어. 그래, 다음에 '그 삼촌'이라는 사람이 오면 헤드폰을 쓰던지 해서, 저걸 한번 끝까지 볼륨을 높여서 들어보자.


음악, 다른 세계가 전하는 새로운 복음



그리고 '그 삼촌'이 온 날에 한번 실험해봤어. KBS, MBC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자 유행가가 흘러나왔어. 그리고 이어지는 말소리. "대명동에 사시는 김00님, 해지는 노을이 너무 아름답지요~" 세상 평온한 목소리의 DJ들이 생일을 축하하고, 결혼을 축하하고, 출산을 축하하고 있었어. 나는 '그 삼촌'으로 인해 감히 초등학교 3학년 나이에 '불행'과 '불안'이 뭔지 알 것 같았는데 라디오에서는 오로지 행복한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려왔어. 나는 그들의 행복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격하게 주파수 다이얼을 돌리다가 AFN(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위한 라디오 방송)에서 멈췄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들이 흘러나왔어. 음악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음악과 음악 사이에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의 행복을 강제로 들어야 하는 고역은 피할 수 있었어. DJ가 뭐라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상관없었어.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팝 음악을 듣게 됐어.


갑작스러운 침입자의 행패로 균열이 나고 무너져 내릴 것 같던 내 일상의 벽. 그 순간, 음악이라는 구원자가 나타나 나를 감싸는 든든한 벽이 되어줬어. 볼륨을 높이기만 하면 음악은 그 어떤 침입도 허락하지 않았고, 나라는 작은 세상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줬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어도 상관없었어. AFN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소리는 마치 다른 세계가 전하는 새로운 복음 같았어. 폭발적이고, 요상하며, 멋지고, 선명한 것들의 집합. 적어도 이런 음악은, '핏줄이니까' '가족이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지'라는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을 것 같았어. 그냥 맘대로 '니가 원하는대로 혼자서 즐겁던지 울던지 알아서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어. 나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어.


그 이후, 나는 학교에 갈 때와 방과 후 친구들과 놀 때를 빼고는 항상 AFN 라디오를 들었어. 음악이 흐르면 사운드의 벽(the wall of sound)이 생긴다고 했는데, 그 벽은 때로는 외부 세상과 닿은 면은 단단하게, 나와 닿은 면은 말랑하게 나를 감쌌어. 이해할 수 없는 세상과 나 사이에 안전지대가 된 거야.


Sound of Survival에서 Sound of Life로


몇 년 후, 외삼촌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우리 집엔 완전한 평온이 찾아왔어. 다행스럽게도 그 때 이미 음악은 나의 친구가 된 이후였어. 나는 초등학교 때 그 AFN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어찌나 듣고 싶었던지, 친구들과 놀다가 헤어지지마자 골목길을 뛰어서 집으로 가곤 했어. 음악 안에는 말이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없을 것 같은 '완전히 다른 어떤 것'들이 있을 것 같았어. 그리고 왠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면 저렇게 멋진 '다른'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거 같은 이상한 희망과 열정이 생기기도 했던 것 같아.


고맙게도 그때 구원처럼 찾아온 음악은 단순히 고통에서 나를 구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어. 음악은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됐어. 기쁠 때는 혼자 있는 내 방이 콘서트홀이 되게 해주고, 사랑에 빠졌을 때는, 세상의 모든 장면을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주고, 외로울 때는 '그래도 네 옆에는 내가 있다'고 위로해주었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조차 결국은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것도 결국은 어느 노래의 선율과 리듬 덕분이었던 것 같아.


처음에는 생존(survival)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듣기 시작한 음악이라서 그저 'Sound of Survival'이어다면, 지금은 'Sound of Life'로 바뀌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되었거든. 고통에서 시작된 음악이, 지금은 인생의 모든 감정과 순간들을 더 깊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소중한 언어가 된 거야.


그래서 나는 지금도 믿어. 고통의 끝에서 시작된 것들은, 결국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 선물은 처음 우리를 구원해준 순간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의미로 우리 곁에 머물게 된다고.



///기억의 플레이리스트///


Simon and Garfunkle 'The Sound of Silence'

https://youtu.be/HZVkk_aQ0BI?si=XewvLkCNeEbIx4UH

이 노래는 폴 사이먼이, 어린 시절 침대에 누워 불이 꺼졌을 때를 떠올리면서 만들었다고 해. 사회적 혼란과 소통 및 단절을 느끼는 분위기에서 나온 곡이라 하는데, 내게는 무엇보다 압도적인 아래의 두 구절로 기억되는 곡이야. 그리고, 난 어둠과 고통을 '내 오래된 친구'라고 말하는 이 노래를 떠올리면 괜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해.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안녕, 어둠(고통)이여, 나의 오래된 친구야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다시 너와 이야기 나누려고 왔어.


언젠가 너의 고통이 선물로 바뀌는 순간, 이 노래가 함께 있길 진심으로 기원해


- from 늘상 음악에 빚지고 사는 KeepWhatMoves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