完. 심연 너머에

보이면 안 되는 존재가 보일 때 벌어지는 일.

by 구 벨

* 이번 화는 다소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이한 현상 및 존재를 믿지 않거나 심신이 미약하신 분들께서는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가끔,

아주 가끔.

깊은 잠을 자다가 불현듯, 마치 누가 급박하게 흔들어 깨우는 것처럼

깜짝 놀라면서 두 눈이 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두 손의 감각에만 의지하여 이불을 걷어버리고, 방 한 칸을 꽉 채운 새카만 어둠에 빨려들지 않으려 일부러 두 눈을 부릅뜨면서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 위 스탠드 불을 켠다.

"아씨...!"


나 홀로 비밀스럽게 유영하고 있는 듯한 새벽의 한가운데에서

정적을 깨고 울리는 비명 끝에 구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의자 다리다.

지난밤 높은 선반에 있는 책을 꺼내려고 가져왔던 간이 나무 의자에 그만 정강이를 찧은 것이다.


'내일 또 멍이 들겠군.'

욱신거리는 정강이를 부여잡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시계를 쳐다본다.

구 씨의 눈에 들어온 숫자는 '3'이다.

새벽 3시인 것이다.

뒷목에 무언가 흐르는 느낌이 들어 구 씨는 두루마리 휴지 3칸을 뜯어

목 뒤에 가져다 댄다.

땀이다.

한겨울에 인간의 몸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체액이다.


'온수 매트도 켜지 않았는데 무슨 땀이 이렇게...'


새벽은 모든 감각이 마비되는 시간이다.

마찬가지로 구 씨도 평소보다 동작이, 생각이, 본인에 대한 자각이 더디다.

그때 마침 뒤늦게 오른쪽 귀에서 기분 나쁜 이물감이 들어 손을 가져다 댄다.

유선 이어폰의 차가운 질감이 느껴진다.


'아 맞다. 나 노래 듣다가 잠들었지.'


또 이어폰을 빼고 자는 것을 깜빡한 구 씨다.

분명히 청각에 좋지 않을 것을 우려하면서도 피로감에 밀려오는 잠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이다.

잠기운이 달아나기 전에 얼른 이 의문스러운 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어폰을 책상 위에 선을 말아 정리해 두고, 스탠드를 끈 후 다시 안락한 침대 속 이불 고치로 몸을 틀어넣는다.


눈꺼풀이 다시 무거워지며 무아(無我)의 상태로 접어들 때 즈음,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게 이불이 바스락 거린다.

반수면 상태에서 아직 의식의 10% 정도는 깨어 있기에 구 씨는 생각한다.


'찌구가 나랑 자려고 침대에 올라온 건가?'


평소, 구 씨와 함께 자는 것을 좋아하는 반려견이기에 딱히 낯선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순간 구 씨는 자신이 몸을 전혀 움직이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부동자세라는 현실을 자각한다.

그리고 이를 자각한 순간,

구 씨의 옆에는 찌구도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럼 방금 바스락 거린 건 뭐지?'


의문을 품자마자, 어떤 힘에 짓눌린 듯이 구 씨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언가 엄청난 압력에 그 어떤 저항도 무용(無用)이 되어버리는 무기력함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런 구 씨를 놀리듯, 잠들기 직전까지 들었던 쇼스타코비치 (Shostakovich)의 재즈모음곡 2번 '왈츠'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분명히, 구 씨는 방금 전 이어폰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 침대에 누웠다.

즉, 구 씨의 침대에는 이어폰이 없다.


'아 휴대폰이 잘못 눌려서 소리가 새어 나오는 건가? 음악을 꺼야겠네.'


라고 생각하며 휴대폰 재생을 중지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서

머리맡의 휴대폰에 손 끝을 가져다 댄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통 음악을 틀면 휴대폰에서 웅웅거리는 진동이 느껴지는데 구 씨의 휴대폰은 잠잠하다.

'그럼 도대체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야...?'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인지하자, 웅장했던 악기들의 합주 대신

가볍게, 그렇지만 꽤나 달콤하게 허밍 하는 듯한 목소리로 바뀌어 연주된다.

구 씨는 잠옷이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도저히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자마자, 방문 밖에서 단잠에 빠져 계실 어머니를 부른다.


'엄..!ㅁ...!'

'엄.....!'

'어...ㅁ..!'

'............?'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구 씨는 말하는 자신의 음성이 들리는데

성대의 떨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입 근육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당연히 어머니를 부르는 것은 실패하였고,

이제 정말 구 씨 혼자밖에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순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쾌한 낯섦과 마주한다.

목 아래까지 단단히 덮고 있던 이불의 아래쪽이

'스-륵, 스-슥'하는 소리와 함께 아주 천천히 정말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이 상황에 더 이상 구 씨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냅다 두 눈을 꼭 감아버리는 것으로 현실을 무마하려던 그 순간,

부드럽게 허밍 하던 목소리가 뚝 끊긴다.

그리고는 구 씨의 코 바로 앞까지, 거의 얼굴을 뚫을 기세로 들이대고 있는 어떠한 형체와 눈이 마주친다.

그 형체는 무어라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불편했고 불쾌했다.

거의 손가락 한 뼘만 한 눈에는 안구가 들어있지 않았다.

입꼬리는 하늘로 치솟을 듯 웃고 있었으며

구 씨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듯 한쪽 고개를 훽 꺾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정말 놀라면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다.

기절한 것인지 그냥 잠에 든 것인지

그 뒤로 구 씨가 눈을 뜨니 아침이였고,

아주 짧은 1-2초의 찰나였지만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 씨는 생생하게 그 모습을 기억한다.


또,

그로부터 대략 5년 뒤에

오랜만에 구 씨의 집에 놀러 오신 외할머니께서는 밤에 이 방에서 주무시다가

새벽에 다급한 목소리로 구 씨의 가족 모두를 깨우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키는 정말 팔 척같이 기다란 어떤 남자가 아주 새-카만 옷을 입고

우리 양반이 자고 있는 방 앞을 알짱거리면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거야."

이야기를 듣던 구 씨의 가족은 그만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할머니 건넛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던 할아버지도 동시에 꿈을 꾸셨는데 그 내용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꿈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내가 자고 있는데 검은색 도포를 차려입고, 그냥 온몸이 새카만 사람이 자꾸 창문 너머로 나를 기웃기웃 보더라니까.

그러다가 그냥 깼어."


그 이후로 두 달쯤 되었을까.

실제로 구 씨의 할아버지는 급작스럽게 원인 모를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어른들은 그게 저승사자였다고 말한다.


이런 기이한 경험을 하다 보니,

구 씨의 집안내력에 딱히 무당이 있지도,

신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무속신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어린 시절에는 겁이 많아서 절대 혼자 찾아볼 생각도 않던

호러(Horro) 장르 영화나 다큐멘터리, '심야괴담회'같은 무서운 콘텐츠를 찾아보게 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몇 년간 공부 아닌 공부를 하다 보니

구 씨는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점을 발견했다.

바로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 것'

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하면 좋다더라'는 믿거나 말거나 미신으로 웃고 넘기며 행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하지 말아라'라는 것은 (예를 들어, 폐가에 가서 브이로그를 찍는다거나 집에 초를 켜두고 아무에게나 비는 것 등을 의미한다) 정말 굳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구 씨는 무당의 역사가 고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지속되는 것이 이에 대한 실증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도 기이한 존재와 마주해 보았기에 감히 경고할 수 있다.


보이면 안 될 존재가
언제
당신에게
방문할지 모릅니다.


꼭 신기가 있지 않더라도 기가 허약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누구나 이상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그것들'의 장난에 응해주지 말 것.






* 이미지 출처: pinterest



* 작가의 말: 어느덧 '비소설가 구 씨의 일일'이라는 에세이가 마지막 화에 도착했습니다.

브런치에서 도전한 저의 첫 연재작이기에 스스로 미숙함을 많이 느끼고 더 정진해야겠다며 다짐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연재라는 시스템이 독자분들과의 '약속'이기에 책임감과 부담감이 함께 공존했던 것 같습니다.

또, 저의 글 중에는 되돌아보니 완성도가 낮게 느껴져 아쉬운 작품도 있지만, 글쓰기의 꾸준함과 애매함을 견디는 힘을 길러준 고마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작품은 아마 소설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새 생명이 움트는 계절 안에서 함께 역동하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고심하고 또 고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03.02 일요일,

첫 봄비를 반기며 방구석 한편에서 인드라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