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슬플 것 없는 진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한 지도 어언 1년이 되어가는 요즘,
주변에서 푸념소리가 자주 들린다.
“아니, 내가 무슨 자기 *시다야?
내가 도대체 이런 것까지 왜 해야 해?”
이해가 된다.
아니 이해가 되다 못해 절절하게 공감하는 구 씨다.
직장을 다녀봤거나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라고 하더라도 사실 회사라는 조직 내에 있다 보면
그 경계가 모호해질 때가 많다.
자신이 맡은 일이 아니더라도 해야 할 때가 있고, 해당 업무 담당이 뚜렷하지 않다면
본인이 맡아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할 때 회의감이 들거나 자존심이 구겨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울그락불그락 얼굴이 벌게지도록 열을 내는 주변의 낯빛을 뒤로하고
구 씨는 과거 자신의 영상을 머릿속으로 오버랩한다.
사회초년생 시절 구 씨의 모습이 나타난다.
여기저기 발 빠르게 뛰어다니며 조금이라도 동료, 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다.
이내 장면이 전환되고, 점점 구 씨가 맡은 일 이외에도 다른 업무들을 수행하는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이게 나의 업무와 무슨 연관성이 있지? 하는 얼굴이지만 신입의 패기로 일단은 열심히 하고 본다.
더 빠르게 넘어간 다른 장면에서는 전보다 퀭해진 얼굴로 담당 직무와 관련성 없는 업무를 하는 구 씨가 있다.
그리고는 매일 집으로 돌아와 울면서 하소연한다.
"내가 생각한 일은 A가 아닌데, 자꾸 나한테 A를 시켜. 너무 회의감 들고 힘들어서 때려치우고 싶어."
그리고 시간선이 비교적 현재로 넘어와, 상사와 면담 중인 구 씨가 보인다.
상사가 걱정스럽게 구 씨에게 말한다.
구 선생님은 할 줄 아는 게 많아 보이는데
그걸 다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괜찮나요?
현재 업무에 대부분 만족하고 있는 구 씨이지만,
더 도전해보고 싶은 업무도 있었기에, 이러한 마음을 읽어준 상사가 고맙기도 하다.
이 기회를 빌어, 업무를 하면서 발생하는 답답함과 억울함, 그리고 얼마나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토로하고 싶은 욕망이 목구멍까지 끓어오른다.
'저는요, 이 업무도 잘 맞지만, 저 업무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고 저렇고 이렇고 저렇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저런 걸 잘하는데,
그 강점을 활용하여 업무에서 이렇게 저렇게 적용하면서 애쓰고 있습니다.
또, 저는.................................'
한참 혼자만의 발표장을 꾸려 머릿속으로 실컷 공치사를 하다 보면
구 씨의 컨트롤타워에 사이렌이 울린다.
'적당히 하고 얼른 일하러 들어가라.'
조금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다만,
구 씨는 스스로를 '시다바리'라고 생각하며 직장생활을 한다.
이는 딱히 스스로를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닌, 지극히 사실일 뿐이다.
흔히 어떤 사람의 잡다한 뒤치다꺼리를 하는 사람을 시다바리라고 표현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현대의 직장인, 즉, 월급쟁이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꿈을 크게 가지라는 이야기를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스스로가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될 것을 꿈꾸고,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사실,
직장 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다.
어느 분야든 본인의 분야에서 소름 끼치는 천재가 아닌 이상
비슷한 스펙의 '대체 가능한 인재'들은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마치 기계의 부품과도 같다.
아무리 구 씨 스스로가 일을 잘하고 현재 맡은 바를 성실히 해낸다고 하더라도
사실 비슷한 스펙에 그 직무에서 일을 무난하게 해낼 사람은 넘쳐난다.
물론, 구 씨는 개개인의 강점과 개성을 묵살하는 건 아니다.
또,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은 인간에게 너무나 필요하고, 현재 구 씨 삶의 좌우명(Aim for the stars: 별을 향해 쏴라)이기도 할 정도로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직장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아실현', '역량강화' 모두 다 필요한 단어이고, 직장에서 실현된다면 참 이상적일 것 같은 요소이다.
그리고, 분야에 따라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해야 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 씨를 포함하여 본인이 조직의 직원이라면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할 수 있는 권한이 100% 본인에게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조직은 일반적으로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해서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 씨 정도면 본인의 분야 및 적성에 꼭 알맞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직원이기에 시다바리 일은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사장이 되는 방법밖에는 없는 걸까?
평생 이렇게 소모적인 시다바리로 살다 죽는 건가?
구 씨는 이런 생각을 한다.
직장이라는 것이 물론, 본인을 정의하는 데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것만이 온전히 본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그러니 시야를 약간만 넓히면 시다바리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꽤 많다.
한 사례로, 구 씨는 직장에서 본인의 결정권이 낮거나 혹은 원하는 직무를 하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취미로 창작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창작활동이나 운동은 자율성이 높은 성격을 띠고 있기에, 직장에서의 무기력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또, 누군가 구 씨에게 본인의 직무가 너무 권태롭고 변화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면, 전혀 다른 분야(역동적이며 예측 불가능한)의 취미를 추천한다. 예를 들어, 악기를 배우거나 정기적으로 유기견 봉사 등을 하면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취미 뿐만 아니라 양극단에 있는 일을 동시에 병행하면 낯섦에서 오는 신선함을 느끼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답답함과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다.
현재까지도 구 씨는 이에 관심을 가지며 더 현명하게 직장생활을 하기 위한 보완 방법들을 찾아나가고 있다.
노동을 통해 본인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도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노동의 가장 1차적인 목표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돈을 버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 직장에만 생각이 매몰되다 보면 세상을보는 시각이 좁아질 수 있다.
구 씨는 이것이 구 씨와 같은 젊은 2-30대 직장인들이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며
단 한번뿐인 각자의 인생을 더욱 다채롭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용기를 내어 제언해 본다.
*시다: 시다바리의 줄임말. 일하는 사람 옆에서 그 일을 거들어 주는 사람. (고려대한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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