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연극이 되어버린 건에 대하여.
야 너는 진짜 천의 얼굴이다.
깔깔거리며 구 씨와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던
15년 지기 친구의 말이다.
사실 구 씨는 얼마 전 처음으로 남들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은 특정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상황을 재연할 때 '연기(acting)'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구 씨의 집은 이야기할 때 마치 배우가 연극을 하듯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구 씨 어머니의 경우에는 남편에게 시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말할 때 가장 먼저 표정을 바꾼다.
눈썹 한쪽을 치켜뜨고 미간에 힘을 주는 것이다.
가뜩이나 눈이 왕방울만 한 어머니라서,
작은 표정 변화 하나에도 생동감이 살아난다.
그다음으로는 목소리를 변조한다.
실제 시어머니 목소리에 가깝게 성대를 약간 조여서 높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몸짓까지 더하면 완성이다.
특히 손 끝이 중요하다.
구 씨의 할머니, 그러니까 어머니의 시어머니는
말을 할 때 손짓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구 씨의 어머니가 연기를 끝내면,
바로 이어서 구 씨의 아버지가 배턴(baton)을 받는다.
구 씨의 어머니만큼 이목구비가 자기주장이 강하진 않지만, 함께한 세월은 못 속이는지 움찔거리는 두 눈썹과 함께 목소리 변조를 시작한다.
이번에는 옆집 아주머니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구 씨의 아버지는 여성의 목소리를 내야 하니 조금 버거운 듯 보이지만, 남성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고음을 짜내며 연기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구 씨는 웃음이 난다.
가정환경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 어마하다.
30년 가까이를 이런 부모님과 살아오다 보니,
구 씨는 이야기에 연기를 더하는 것이 숨 쉬듯 자연스럽다.
어머니를 닮아 튀어나올 듯 큰 눈 덕분에 연기력이 좋아 보이는 것은 덤이다.
구 씨는 친구들과 사담을 할 때는 물론이고,
직장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도
상황을 재연할 일이 있으면 연기를 시작한다.
특히, 구 씨의 필살기는 '표정'이다.
눈이 주 무기인 어머니, 목소리 변조가 주 무기인 아버지와는 다르게 표정 자체가 구 씨의 주 무기인 것이다.
눈썹을 움찔거리고 눈의 크기를 작게 떴다가 크게 뜨는 것을 반복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입꼬리를 적극 활용한다.
예를 들어, 불평하거나 슬픈 상황을 재연할 때에는 마치 이모티콘처럼 입꼬리를 한껏 아래로 늘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입의 크기 조절도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구 씨와 처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리액션이 풍부하시네요.'
'생생하게 이야기 전달을 잘하시네요'
'표정이 너무 웃겨요'
라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다 보니, 구 씨도 처음에는 걱정이 있었다.
'다른 집안은 이렇게 이야기를 안 하나?'
'내가 너무 오버스럽게 보이려나?'
'연기를 안 하고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
'와.. 진짜 모르겠네.'
그리고 실제로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니
정말로 구 씨의 집만 특이한 형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구 씨는 나름 큰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사회에서 튀어 보이고 싶지 않아서,
한동안 눈썹의 움직임이나 눈 크기 조절, 입매 조절 등까지 의식적으로 신경을 쓰며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역시 개버릇 남 못준다는 것이 맞는지,
말하는 맛이 맹숭맹숭한 게 구 씨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못해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구 씨로서는 오히려 이것이 사회생활을 할 때 윤활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못하는 걸 나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일상이 연극이 되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가는
구 씨는 행복한 배우이다.
또 그 순간에 주변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영광을 지닌 행복한 광대이다.
조금 엉뚱하기도 하지만,
더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오늘도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입꼬리를 연신 씰룩거리는 구 씨이다.
* 이미지 출처 :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