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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아이의 오지랖, 여기선 무기

ADHD 아이와의 캐나다 생활

by 이사비나

"세모야, 이리 와봐. 지금 너 너무 피해 주고 있어. 주변 사람들 잘 보고 조심해야 해."

한국에 있을 때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

해외에 입국한 지 며칠 밖에 안 되었지만, 이젠 가장 적게 하는 말이 되었다.


캐나다에 오기로 결심했던 건 세모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아이들이 태어나면 캐나다에 한번 데려가보자 라는 남편과의 버킷리스트였다. 그런데 세모의 ADHD 진단으로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ADHD 약물에 적응한 지금이 적기라 생각하여 2년 전부터 추진해 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외곽, 경기도 어디쯤 정도 되는 캐나다의 대도시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정착했다. 안전한 동네라고 현지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 이곳에 집을 구하고 학교를 등록했다.


캐나다에 도착해서 국경에서부터 줄을 서서 이민관 심사를 받고, 세관을 통과하고 할 일이 너무 많아 세모에게 ADHD 약을 꼭 먹여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과잉 행동으로 계속 지적받아서도 안 되고, 우리가 실수하면 모든 가족에게 피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국한 캐나다.

줄을 서는 내내 약효가 있던 세모는 얌전했지만 둘째는 제어가 안 될 정도로 방방 뛰었다. 백인의 중년의 여성이 뒤를 쓱 돌아봤다.

"I'm sorry."

내가 가장 잘하는 그 말을 자동적으로 내뱉었다.

"No worries. So cute."

빅 스마일로 나를 안심시켜 준다. 아이가 귀엽다고.



며칠간, 시차 적응으로 네 가족 모두 밤잠이 다른 시간에 시작되고 각자 자기 패턴대로 일어나고 반복했다. 낮에 활동을 해야겠다 싶어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갔다. 세모는 한국에서처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Hi, My name is 세모. What's your name?"

"Noah."


나에게 달려오는 세모.

"엄마 나 쟤한테 말 걸어봤어!"

"이름이 뭐래?"

"몰라?"


이름을 잊은 세모. 놀랍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이웃집 아저씨를 마주쳤다.

"Good morning. I'm 세모."

세모는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용기일까?

한국에서는 세모에게 늘 이런 것들을 가르쳤다.

"저렇게 무리가 지어져 놀고 있는 형들에게는 그냥 가서 놀이에 껴달라고 하면 안 돼.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갑자기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걸면 안 돼."


하지만 이곳에서는 세모의 오지랖이, 그의 적극성이 무기가 된다. ADHD 아이들의 단점이 어떤 환경에선 뛰어난 적응력이 되어주기도 하는구나 싶다.



캐나다에 며칠 지내본 소회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는 나라. 모자이크처럼 각각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는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다. 히잡을 쓴 사람들부터 수염이 덥수룩하게 기른 아이 아빠, 타투가 멋들어지게 있는 아이 엄마, 웃통을 벗어던지고 사이클을 하는 할아버지부터.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다양한 생활 방식들.


어쩌면 ADHD 아이의 특별함이 여기선 평범함이 되진 않을까.

앞으로의 날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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