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먼 나라 캐나다에 오고 나니, 온 신경이 예민해졌다. 모든 것이 낯선 곳. 시차에 적응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낯선 곳에서 먹는 것마저 낯선 음식을 먹는 게 싫어 부랴부랴 가져온 미역을 불려 미역국을 끓였다. 터지면 대 재앙이 될 액젓은 왜 싸가냐고 남편의 타박을 받으면서까지 가져온 것은 늘 먹던 맛으로 끓이고 싶은 엄마로서의 욕심이었다. 햇반을 돌리고 아이들이 일어났을 때 먹을 밥과 국, 가져온 수저를 나란히 놓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오늘도 굶기지 않았다.'
새 집에 이사와 처음으로 아파트가 아닌, 자동으로 잠기지 않는, 열쇠로 열어야 하는 현관문이 달랑 하나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주차장 문, 그리고 뒷마당 문까지 모두 열쇠로 열게 되어있다. 하루 깜빡하고 이 세 개의 문 중 하나라도 안 잠겨 있으면 언제든 못된 마음을 먹은 이에게 최악의 일을 당할 수도 있다. 매일 밤 자기 전, 뒷마당 문, 주차장 문, 현관문이 가로로 잘 잠겨있는지 확인을 한다. 나의 실수로 아이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오늘도 잘 지켜주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날이었다. 두통약을 먹고 정신을 차렸다. 아침 7시부터 정신없이 두 아이의 두 끼의 식사를 준비한다. 아침 식사, 그리고 점심 도시락 두 개. 주먹밥을 만들고, 치킨 너겟을 튀기고 나니 뭔가 아쉬웠다. 오이를 하나 꺼내 오이 스틱을 먹기 시작한 세모를 위해 슥슥 잘라 넣었다. 맛도 없는 것을 자꾸 싸준다면서 툴툴 대는 아이의 짜증이 거슬렸다. "그래도 골고루 먹어야 해."
'오늘도 잘 먹였다.'
"방수요 깔았어?" 남편이 매일 밤 자기 전 나에게 하는 잔소리다. 둘째 네모가 아직도 밤에 가끔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밤늦게 책을 쓰다 겨우 잠자리에 든 지 2시간 만에 아이가 짜증을 내며 낑낑대고 있다. 이불에 손을 짚고 일어서는데 따뜻한 축축함. 새벽 3시 26분이었다. 조용히 아이의 바지를 갈아입히고, 이불을 걷어내 갈아준다. 아이는 산뜻하게 새 내복을 입고 다시 잠에 든다.
'오늘도 아이의 잠자리를 잘 돌봐주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엄마가 하는 일들이 이렇게나 많은지를. 아침에 알람을 맞춰 일어나 아이들의 아침을 챙기는 일부터 안전하게 지켜내는 일,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 보는 아이들을 위해 미래를 계획하는 일, 그들의 잠자리까지 챙기는 일까지. 하나하나 돌아보면 나는 참 좋은 엄마다.
그런데 참 재밌는 건 아이들은 이런 부모의 사랑이 참 당연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인 것처럼 나에게 요구한다. 내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을 잘 돌봐줄 거라고 믿고 있다. 아이들의 그런 믿음에 나는 한번 더 생각한다. 나는 참 좋은 엄마구나.
나 역시 수많은 식사를 대접받았겠지.
그리고 수많은 밤, 나의 안전을 빌어준 이들이 있었겠지.
건강히 어른이 되어 숨 쉬며 살아가는 오늘을 당연히 여기지 말아야지.
헤아릴 수 없는 수고가 우리를 키워냈음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