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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Oct 28. 2024

ADHD 아이를 키우다 보면 눈에 흙도 들어가는구나

ADHD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건...

"세모야, 모래 던지면 안..."


악!


여느 드라마를 보면 늘 단골 멘트처럼 나오는 대사가 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 안 돼!"

아주 강력한 반대 의사를 자식에게 표할 때 쓰는 말.

내가 아이에게 많은 것들에 "안 된다 아니 된다" 해서 그랬을까? 아이는 그날 내 눈에 흙을 던져 넣었다.



온 가족이 조금만 나가면 볼 수 있는 캐나다의 어느 비치에 나들이를 갔다. Beach를 간다고 하면 대부분 백사장과 파도, 파라솔 정도를 상상할 것이다. 그곳도 딱 그런 곳이었다. 다만, 그곳이 바다가 아닌 '호수'라는 점만 빼고. 캐나다가 얼마나 큰 땅덩어리를 과시하는지 늘 피부로 느낀다. '여기가 호수라고? 바다 아니야?' 호수에도 파도가 친다. 이 나라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을 깨 주는지 참 재밌다.


고운 모래가 너무 부드러워 아이들이 놀기에 딱이겠다 싶어 즐겁게 모래사장에 맨발로 첫 발을 떼었보았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따뜻한 모래가 기분이 참 좋았다. 세모의 손안에 든 모래를 발견하기까지만 딱 좋았다.


세모는 주말에 ADHD 약을 먹지 않는다. 키와 몸무게가 체질적으로도 적게 나가는 아이인 데다 각성제를 먹으면 식욕이 떨어지는 부작용 때문이다. 주말에라도 잘 먹여서 성장도 잘하게 해주자는 의도다. 물론 주치의선생님의 허락하에 이렇게 하고 있다. 주말에 나들이를 갈 때면 그동안 얼마나 약효가 좋았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쉬지 않는 세모의 입, 어딘가 늘 신나 보이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텐션...


비치에 들어간 순간, 세모에겐 그 모래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렇게 바로 생각의 필터 없이 모래를 잡는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손에 잡힌 것들을 던지는 세모의 평소 모습에, 설마 하는 노파심에 한 마디를 던져야 했다.


"세모야, 모래 던지지 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흙이 내 눈에 들어왔지만 말이다.


그 순간, 다양한 생각이 내 머릿속에 스쳐갔다.


난 아이에게 화가 난 것일까?

왜 난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을까?

이 아이는 왜 아직도 이게 조절이 안 될까?

이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남편이 봤을까? 보지 않았길.

분명 그의 분노가 우리 여행을 망칠 텐데.

아이에겐 뭐라고 해야 할까?

가르쳐야 할까? 혼내야 할까?


이 수많은 질문 끝에 눈물이 났다.

눈이 아팠던 것도 아니다.

이렇게 약 한번 안 먹었다고 행동 조절이 안 되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 피해를 그 아이의 '엄마'인 내가 입는다는 게 처량했다. 처절하기도 했다. 연신 죄송하다고 나를 걱정하는 아이에게 또 이걸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에 무력해졌다. 말해봤자 가르쳐봤자 아이는 또 이렇게 모래를 잡고 던지겠지. 그리고 내 눈엔 또 흙이 들어갈 수도 있겠지.



그리고 몇 주가 지난 오늘,

난 또 아이가 장난으로 휘두른 빗자루에 눈을 맞았다. 아이에게 현관에 나뭇잎을 쓸라고 준 빗자루였다. 그러다 갑자기 빗자루를 휘두르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세모야, 그러다 동생 맞아. 그만해."

"세모야, 그만하라고 했어."


내가 눈을 바라보지 않고 말한 게 잘못이었을까?

그렇게 그 빗자루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 눈을 강타했다.


아이는 당황함에 어쩔 줄 몰라 자기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눈물에 마음이 약해졌을까? 아니... 처절했다. 한 치 앞일도 상상하지 못하는 아이라니. 그리고 아이의 충동성의 피해는 왜 늘 내가 받아야 하는가...



아픈 눈을 어루만지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럼에도 가르칠 사람은 나뿐이기에.

이 일의 피해가 다른 이들에게 가면 안 되기에.

또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세모야, 가족은 용서해 주지만 다른 이들은 용서해주지 못할 수도 있어. 너는 행동이 늘 크고, 조절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엄마가 한번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이나 꼭 하라고 하는 일은 한 번에 진지하게 들어야 해. 엄마 말을 심각하게 들어야 해. 정말 네가 원하지 않아도 한 순간에 모든 것들을 망칠 수도 있어."


ADHD 아이를 키우면, 늘 아이의 한 치 앞을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때론 아이의 먼 훗날도 대비해야 한다. 내가 아이의 곁에 없을, 정말 내 눈에 흙이 들어가는 그날이 오면, 적어도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걸 망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좌절하지 말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

나한텐 늘 그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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