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도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관계 강박(ROCD)

왕따의 경력이 남긴 흔적 2

by 이사비나

왕따의 경력이 남긴 흔적 중 첫 번째가 혼자 있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라면, 두 번째 흔적은 바로 '강박'이었다. 따돌림의 시간이 지나고 새롭게 사귀게 된 친구들은 이전 친구보다 착하고 언제나 나를 잘 챙겨주었던 고마운 이들이었다. 하지만 절대 따돌림을 당하기 이전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 점이 가끔 다행이면서도 서글픈 것 같다.


새로운 무리에 들어갔다. 그렇게 난 또 친구를 사귀게 됐다.

그러나 나는 지속적으로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을 살피느라 온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 순간도 놓치면 안 된다는 완벽주의가 편안해야 할 친구 관계 속에 늘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까 내 말을 왜 대답을 안 한 거지?'

'왜 나 빼고 둘이 얘기하지?'

'아 나 그날 가족 여행 가야 하는데, 나 빼고 놀면 또 내 험담 하는 거 아닐까? 여행 빠지고 친구들 만나러 가야겠는데?'


심지어 아이들이 잘해줄 때에도 나는 쉽게 믿지 못했다.

'나를 정말 좋아해서 저렇게 말하는 걸까?'




관계 강박(Relationship OCD, ROCD)은 강박장애(OCD) 중 하나라고 한다.

연인이나 배우자, 혹은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확인받으려 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단순히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오는 걱정을 넘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좋지 않은 부정적 생각들이 반복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관계 강박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1. 관계 자체에 대한 의심 (Relationship-Centered)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나?" 혹은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사랑할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관계가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작은 다툼에도 "우린 역시 맞지 않아."라며 극단적인 결론을 내린다.

2. 상대방의 결점에 대한 집착 (Partner-Focused)

상대방의 외모, 성격, 지능, 사회적 능력 등 특정 부분을 과도하게 분석한다.

"저 사람의 웃음소리가 거슬리는데, 이게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신호인가?"처럼 사소한 단점을 관계의 치명적인 결함으로 확대 해석한다.

이 중에서도 나는 '관계 자체에 대한 의심'이 많았다. 아니, 여전히 많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남자친구(지금의 남편)를 만나는 기간에도 늘 의심이 자리했다.


내가 관계 강박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건 정신과 의사 정우열 선생님의 유튜브 클립을 보고 나서였다. 거기서 대표적인 관계 강박 행동을 이야기하셨는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이 행동이 무척이나 나의 과거와 지금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1. 끊임없는 확인: 상대에게 "나 좋아해?" 반복해서 묻거나, 상대의 SNS, 연락 횟수 등을 과도하게 체크.

친구가 연락이 뜸해지거나 나보다 다른 친구와 시간을 많이 보내면 강박적으로 연락이나 만남 횟수를 더 늘리고 싶어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남편이 과제로 바빠 하루 종일 연락이 줄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 앞에 불쑥 찾아가 당장 얼굴을 보고 여전히 나를 보고 웃어주는지 그의 애정은 변함이 없는지 확인하려 했던 기억도 난다. '관계 강박'이라는 말을 듣고 이때의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2. 비교하기: 우리 커플을 다른 커플이나 영화 속 완벽한 관계와 끊임없이 비교

3. 안심 구하기: 친구나 전문가에게 "이런 상황인데 우리 괜찮은 걸까?"라고 계속 물으며 확신을 얻기.

4. 회피: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아예 데이트를 피하거나 친밀한 접촉을 거부.

요즘 나의 모습은 '회피'도 보인다. 점점 가까워지다 멀어지는 관계가 두려워 애초부터 딱 일정한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도 있다.

"이 선은 넘지 마세요. 우리 이 만큼만 잠시 친하게 지내요." 이런 마음.


관계 강박은 왜 생기냐고?

보통 이런 이유에서 생긴다고 한다.

완벽주의적 성향: 모든 것에 '정답'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성격

불안정한 애착 유형: 어린 시절의 경험 등으로 인해 유기 공포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경우.

높은 책임감: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상대나 나를 불행하게 만들면 안 된다"라는 과도한 책임감.


나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이 관계 강박을 끊고 싶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이 강박과 '잘 이별하는 법' 혹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다.

오랫동안 나는 관계에 '정답'이 있다고 믿었다. 상대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읽어내고, 내가 완벽하게 대처한다면 결코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착각 속에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하지만 관계 강박을 이겨내는 첫걸음은 '불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아, 지금 내 안의 상처 입은 아이가 또 불안해하고 있구나.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라 강박일 뿐이야."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상대의 침묵이 나의 쓸모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모든 순간 완벽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곁에 남는다는 것을 이제는 믿어보려 한다. (이건 우리 아이들이 나를 치유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경험.)


따돌림의 기억은 나를 이전의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상처 덕분에 나는 타인의 아픔에 더 예민하게, 더 깊이 공감하는 법을 배웠다고 자부한다.




이전 10화왕따의 경력이 남긴 흔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