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의 경력이 남긴 흔적 1

'혼자'인 내 모습이 더 이상 괜찮지 않아 지는 경험

by 이사비나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반 강제적으로 나오게 된 나는 살기 위해 친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잘 놀지 않던 친구들에게도 가서 말을 걸어보려 했다. 나와 함께 밥을 같이 먹어줄 수 있다면 그 친구는 오늘의 친구였다.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말 한번 붙여주는 친구는 그날 나를 살려준 친구였다.


그렇게 왕따의 깊은 상흔이 한 겹 한 겹 아물어가는 듯했다. 어른이 되어 어린 나의 모습을 기억해 보니 참 다르다. 그땐 그 친구들이 나를 살려준 줄 알았는데, 내가 무척이나 하루를 견디려고 애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씩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급식실에 함께 내려갈 친구 한 명을 등교하자마 누구에게 부탁을 할까 고민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나를 열심히 살렸다.


왕따의 경력은 나에게 많은 흔적을 남겼다. 깊은 상처는 딱지가 떨어져도 울퉁불퉁 살이 모나게 올라오는 것처럼 이런 상처는 내가 맺는 모든 관계들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

더 이상 '혼자'인 내 모습이 괜찮지 않았다.

혼자 슈퍼를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오는 기분 좋은 일이 더 이상 괜찮지 않았다. 나 빼고 모두가 친구가 있는 느낌이었다. 학원에서 혼자 문제를 풀 때도 말 한번 걸어주지 않는 느낌이 아주 깊이 외로웠다. 나 빼고 모두가 '한 무리'가 되어 친구 먹어버린 느낌.


등굣길도 하굣길도 더 이상 웃을 일이 없었다. 그 모든 걸음 속에 나는 열심히 나에게 물었다.

'내가 뭘 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지금이라도 무엇이든 용서해 달라고 하면 될까?'

사실 무엇을 잘못하지도 몰랐는데 어린 마음에 무작정 다시 그 무리에 나 자신을 데려다 놓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오곤 했다.


그런 혼자인 시간을 견디는 게 늘 힘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늘 모여있는 무리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조금이라도 같이 걷는 이들이 나보다 걸음이 빨라질 때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걸음을 재촉해 내가 소외되지 않도록, 혼자가 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분주하게 따라 걷는다.


대학생 때도, 임용고시 스터디를 할 때에도, 첫 학교에서 근무를 할 때도 이런 감정은 계속 따라다녔다. 심지어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까지 말이다.


내가 이 시점에 이 글을 써낼 수 있는 이유는, 이제는 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감정의 뿌리를. 내가 무리 속에 있어도 불안하고 외로운 이유, 나에게 친절한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는 이유를 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내 잘못이 아니란 것을 아주 분명하게 확신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