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왕따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따돌림의 모든 기억

by 이사비나

중학교 2학년, 나는 왕따가 되었고, 왕따는 단 한순간의 시간으로 뚝 끊기듯 한번 겪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당시 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양 씨에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양 씨가 나를 도와줄 거라 굳게 믿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한 사이였던 내 친구 양 씨가 무언가 해줄 줄 알았다.


그때부터였다. 잔인한 계절이 시작된 것이.

양 씨가 그날 손에 들고 있던 A4 용지 여러 장 속에 타이핑된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이것마저 나는 당시에 알지 못했다. 그냥 나만 볼 수 없는 소설이라니, 대체 무슨 소설일까 궁금하면서도 알기 두려웠던 어린 마음만 기억이 난다.


하루는 친구들과 모두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었던 날이었다.

"몇 시에 만날래?"

"8시 30분에 버스정류장에서 만나자."

"오케이!"


'엇? 이제 내 왕따가 끝나는 건가?'

갑자기 다 같이 놀이공원을 흔쾌히 가기로 약속하는 아이들. 드디어 아이들이 이제 나를 다시 껴주기로 한 것인가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그날 내가 왜 일찍 집을 급하게 나섰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괘씸한 그녀들의 표정을 보라는 신의 계시였던 것인지, 어쨌든 나는 1시간이나 집을 일찍 나섰다. 늦으면 왠지 날 두고 갈 것 같은 불안감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그곳엔 정말 거짓말처럼 나 빼고 그 무리가 모두 나와있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녀들의 표정을.

나를 보자마자 인사를 하기보다 둥글게 모여 속삭이며 질책하는 아쉬운 숨소리가 하나 둘 오갔다. 내가 일찍 올 줄 몰랐다는 눈치였다. 그렇다. 나를 두고 일찍 놀이공원에 가버리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내게 하려는 것이 그들의 계략이었나 보다.



그때였다. 내가 그 무리에서 왕따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

그렇게 나는 무리를 나왔다.

왕따를 당하고 싶지 않아 무리를 나왔는데 나는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무리에서 나온 후 겨우 등교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시험 기간에 시험을 봐야 하는데 공부를 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 없었다. 그냥 혼자가 된 기분에 책상에 앉아있는데 어디에도 말할 수가 없어 그냥 울기만 했다.


반 친구 한 두 명이 다가와 왜 우냐고 물었다.

현주였다. 딱히 친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반 친구들이 다가와 위로해 주었다.


중학교 2학년, 성적은 뚝 떨어졌다.

학교를 가고 싶지 않아 병결석도 며칠이나 쌓였다.(이 기록은 아직도 생활기록부에 남아있어 어쩌다 떼어 본 생기부를 보고 그 좋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말 춥다 못해 얼어버려 너무 아팠던 왕따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그 계절을 견뎠다.


그리고 그 상처는 검은 그림자처럼 내 영혼에 덕지덕지 붙어, 내가 만나는 모든 관계들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그늘을 지게 했다.




ADHD에 대해 알고 난 후, 돌아보는 왕따의 기억들을 연재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왕따의 시작과 잔상처럼 남아있는 힘들었던 에피소드들을 남겨보았습니다. 다음 연재에는 따돌림이 피해자에게 남기는 것들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오늘도 친구 관계로 힘들 아이들에게,

그 계절은 견디면 지나간다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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