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무슨 내용이야?"- "몰랑."

ADHD 아이에게 독서란

by 이사비나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 책을 많이 읽었더라? 책을 많이 읽혀줘야 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던지, 활동을 한다던지 엄마가 노력해 주면 다 잘 읽게 돼 있어."
"일단 도서관을 매일 가야지. 엄마가 노력하면 아이는 책을 읽게 돼 있어."


"세모야, 책 읽어야지. 공부 잘하려면 책 읽어야 해."
"아, 이것만 하고~~~"
"30분 타이머 맞춰. 책 읽기 시간이잖아."
"알았어, 나 뭐 읽어?"
"네가 골라봐~"
제일 읽기 쉬운, 짧은 책을 고르는 세모... 겨우 앉혀놓고 책 읽기를 시작했다.
"다 읽었어."


"그래서 무슨 내용이야?"

"몰랑."


"책을 30분이나 읽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고? 그건 읽은 게 아니잖아!"
"아 읽었으면 됐잖아~ 내용이 기억이 안 나는 걸 어떡해!"
“그게 무슨 독서야! 독서를 안 하면 수학도 못 하고 공부하기 힘들어. “


ADHD 아이에게 독서란 항상 지겹고 즐겁지 않은 활동이었다. 주의력, 집중력이 낮은 아이들에게 만화도 아니고 글을 읽으라고 하면 말 그대로 ‘읽기‘는 가능할지 몰라도 ’ 이해’는 절대 바랄 수 없다. 독후감은 언감생심이다. 쓰기야 말로 자신의 뇌 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적어내야 하는데 천천히 한 획을 그어내는 쓰기라는 활동을 즐기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서에 관한 다양한 육아서를 읽었다. 그 많은 책 육아서를 읽고 느낀 것은 첫째로 세상엔 참 훌륭한 엄마들이 많다는 것이고, 둘째로 독서를 안 시키면 아이가 성적이 낮아지고 모범적인, 우수한 학생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어떤 훌륭한 팁도 나와 세모에겐 적용되지 못했던 것 같다. 세모는 ADHD 진단을 받은 아이였고, 독서를 하자고 할 때마다 관계만 나빠질 뿐 아이는 글들을 읽고 해석하는 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아이가 아닌 내가 매일 책을 읽었다. 책을 매일 읽으면서 ‘독서’가 무엇인지, ‘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책’은 ‘공부’를 위한 것도 아닌, ‘육아’를 위한 것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 읽어야 한다는 것을. 책을 매일 읽으면서 외로울 때마저도 책만 열면 작가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혼자 떠다니는 생각을 쉬운 말로, 때로는 수려한 문장력으로 내 마음을 읽어주는 작가들을 매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고, 내 기분이 틀린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책들 덕분에 매일 위로를 받았다. 매일 독서로 내가 성장하면서 그동안 세모에게 독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했다는 생각을 했다.


독서는

과제가 아니라는 것.

책은 매일 영혼을 채워주는 영양제처럼

인생에서 함께 가야 할 친구 같은 것.


특히 ADHD 때문에 관계가 어려운

이 아이들에겐 책을 읽는 습관이야말로

엄마가 위로해주지 못할 수많은 시간들을

함께해 줄 선물 같은 것인 것이다.


<ADHD 아이를 위한 독서법>


1. 독서하는 시간을 일관적으로 마련한다.


ADHD 아이들은 변화가 있으면 다시 새로운 루틴에 적응하기 굉장히 어렵다. ADHD의 친구들인 불안, 강박적인 특성을 장점으로 이용하여 습관을 정착해 주는 것이 좋다. 변화가 없는 루틴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습관이 몸에 배면 A 과업에서 B 과업으로 넘어가는 주의력 전환이 어려운 ADHD 아이들은 전환하는 데 쓰는 에너지 대신 강박적인 특성 때문에 지켜야 하는 습관들은 자동화하여해야 할 일을 쉽게 해내기도 한다.


그런 특성을 이용하여 세모와 난 매일 잠자리 독서를 한다. 책상에 다 같이 앉아서 읽는 시간도 있지만 잠자리에서 함께 독서하는 건 절대 빼먹지 않는다. 평일에는 30분, 주말에는 1시간을 읽는다. 이것도 타이머를 이용하여 실제로 독서하는 시간을 지킬 수 있도록 습관화하였다. 매일 하기 때문에 "오늘은 뭐 읽어요?"라고 묻기도 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골라오기도 한다. 이때, 쉬운 책을 골라와도 일단 책을 갖고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책을 핀 것에 칭찬을 듬뿍 해줘야 한다.


2. 독서하는 환경은 따뜻하고 아늑한 환경이어야 한다.


ADHD 아이들에게 주변 환경은 집중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책은 아늑하고 따뜻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마음속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그래서 엄마나 아빠가 자기 전에 품에 앉혀놓고 읽어주기도 하고, 옆에 아빠의 어깨에 포옥 기대어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책상에서 혼자 독서대에 두고 타이머 켜놓고 읽을 때는 책 몇 쪽 읽다가 책 속 그림에 작게 그려진 파리에 꽂히기도 하고, 꽃밭이 나온 페이지에는 꽃이 몇 송이 있나 열심히 세다가 시간이 다 가버렸다. 혼자 하면 외로운 독서가 부모의 따뜻한 품, 아늑한 침대에서 하면 기분 좋은 일이 된다. 책을 보면 그 사랑받던 엄마의 품, 아빠의 잔잔한 목소리가 떠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환경을 아늑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3. 읽기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중학생까지도 읽어주면 좋다.


ADHD 아이들에게 한글, 영어 같은 문자란 참 해독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 아이들인데 글로 읽어내라 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한글은 좀 느려도 천천히 기다려줘야 하고, 한글을 좀 읽어보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 부모와의 관계도 멀어질뿐더러,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고작 6,7살에 느껴야 한다니 우리가 한글 하나에 잔혹해질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읽기를 강요하지 말자. 특히 시각주의력이 낮은 아이들은 더 어려울 것이고, 청각 주의력이 낮은 학생들에겐 본인이 소리 내어 읽어봤자 내용이 들어올 리가 없다. 그래서 ADHD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직접 책을 읽어줘야 한다. 이걸 아주 오래오래 해줄 각오를 해야 한다. '대체 언제까지?'라고 생각하지 말자. 다르게 태어났으니 다르게 품어주고 다르게 대접해줘야 하는 아이들이다.


워킹맘으로서 책을 들고 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부장님이 내미는 또 다른 공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얼른 씻고 자고 싶은데 책이라니... 그럴 땐 '오디오북'이다. 영어 책은 음원을 구해서 블루투스로 틀어줬고, 한글 책은 세이펜, 때로는 네이버 오디오북 어플로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하는 것은 청각 주의력을 높여주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된다. 일하는 부모들이여, 오디오북에게 자리를 내어주자.


4. 도서관 가기의 의무감을 버려야 한다.


도서관을 가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 아이 친구들을 보면 도서관에서 1시간이고 시간을 보내며 책에 빠져들어 있다던데 우리 아이는 도서관 가면 일단 목소리도 크고 이 책 보다 일어나서 다른 책 골라오고 친구를 만나면 친구에게 거침없이 가서 말을 건다. 6살 때에는 도서관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놀려고 했다. 물론, 약효가 있을 때에는 도서관 가서 책에 집중하여 즐겁게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을 마치고 세모를 만나는 시간은 보통 약효가 다 떨어졌을 때라 도서관은 가봤자 스트레스다.


책을 꼭 도서관에서 읽어야 하나요? 굳이?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가 가서 대여를 해서 보여주고 다시 반납하는 식으로 책을 접하게 해 줘도 된다. '도서관'이라는 장소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가서 호통과 협박만 오가는 도서관의 경험은 ADHD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 책은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


5. 독후 활동은 그냥 하지 말자.


정말 말 그대로 '그냥' 하지 말자. 독후 활동 하다가 아이한테 질문 폭격을 날리는 부모들 때문에 ADHD 아이들은 즐겁게 책을 읽고 기억도 나지 않는 책 내용을 기억해 내느라 즐거움을 다 날려버리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작업 기억이 낮은 데다가 처리 속도도 낮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때그때 물어보는 아이에게 친절히 대답해 주는 것만으로 아이는 충분히 책을 음미한 것이다.



ADHD 아이에게 독서란
평생 함께해 줄 수 있는
단짝 같은 것이어야 한다.
관계가 힘들 때, 자신이 답답할 때,
아이의 곁에 더 이상 우리가 없을 때
함께해 줄 무언가를 물려준다는 마음으로
숙제가 아닌, 인생의 쉼터가 될
책이 함께하는 삶을
선물해 주겠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