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 학원보다 축구장을 보내세요.

국영수보다 중요한 ‘사회성’, 왜 가르치지 않나요?

by 이사비나

“아들입니다.”


산부인과에서 뱃속 아기가 아들이란 말을 듣자마자 축구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남편의 말. 우리는 아들이란 말에 손흥민을 그려보는 여느 부모처럼 설렘 가득히 아들을 기다렸다.


돌잡이에는 축구공 모형을 올려놓고, 세모가 축구공을 잡아주길 기대했다. (역시나 축구공을 잡아서 기뻤다.) 그렇게 4살부터 공을 쥐어주며 차 보라고 짧은 다리로 역습이라도 해보라며 아이와 즐거운 주말을 보냈었다.


그리고 어느덧 6세가 되어 친구들이 축구 클럽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제 세모가 제법 축구를 잘할 거라며 동네 축구 클럽에 등록했다.


그런데 손흥민은 아니어도 축구를 즐기며 에이스로 거듭날 거라 기대했던 우리에게 축구 클럽에서의 세모의 모습은 당황의 연속이었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단순히 공만 잘 몰고 가서 골대에 때려 넣으면 되는 줄 착각했다. 세모는 축구의 규칙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기술 연습을 할 때 줄을 서 있어야 할 때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새치기 기술을 시전 했으며 코치님이 세모를 지적하느라 수업이 원활하지 못한 때가 잦아졌다. 특기가 핸들이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ADHD가 아니라 어려서 그렇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그래서 아이를 매 시간마다 불러서 혼냈고 축구 학원마저 제대로 못 다니는 애라는 것이 좌절스러웠었다.

그렇게 축구 클럽과도 이별을 했었다.


8세에 ADHD 진단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ADHD 아이들은 특히 바깥 활동을 많이 시켜 에너지 발산을 해야 합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요?”

그럼 축구지!


그런데 ADHD라는 아이를 데리고 또 돈 주고 혼내러 축구 클럽을 보낼 수는 없었다. 남편이 아이와 매일 축구를 해주기도 어려웠기에 “동네 축구”에 아이를 넣어버렸다.


동네 축구는 말 그대로 정글이다.

손흥민같이 킥이 센 엉아들부터 겨우 쫓아다니기만 하는 쪼꼬미 초보들까지 함께 있다. 게다가 작은 풋살장 안에서 동시에 10개 경기가 이뤄진다. 공이 10개란 말이다. 그런 무정부 상태의 작은 축구장에서 세모는 1년을 버텨내고 2학년이 되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그 정신없던 동네 축구가 세모를 변화시켰다. 그 변화를 매 순간 매일매일 지켜본 사람으로서 왜 ADHD 아이에게 국영수보다 축구가 중요한지 알려드리겠다.


ADHD 특성을 살펴보자면 축구는 어쩌면 수학보다 어려운 일이다.

1. 핑퐁 대화의 어려움: 패스하라는 말, 수비하라는 말, 규칙 및 전략의 소통은 허공에 떠돌 뿐이다.

2. 공감 능력 부족: 팀이 이기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공을 차는 것이 제일 중요할 뿐이다. 상대방이 화내면 왜 화내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3. 차분히 기다리지 못하는 성향: 벤치 선수가 되는 순간, 축구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스포츠가 된다.

4. 급한 충동적 성향: 급하면 축구는 핸드볼이 된다. 특기는 핸들이다.

5. 배려의 부재: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페어플레이와 협력의 중요성을 알 턱이 없다.


어제 세모는 동네 엉아에게 한 대 맞을 뻔했다. 누가 봐도 엉아가 많이 참아줬다... 형이 차야할 차례였는데 굳이 굳이 세모 본인이 차겠단다. 형 입장에선 평소에도 말 안 듣는 세모를 껴준 경기인데 자기 고집만 피우니 불통도 이런 불통이 없다. 이런 일이 매일 있었다.


동네 축구를 시키면서 나와 남편은 생각했다.

“그래, 이거야. 사회성은 여기서 키울 수 있어. 놀이 치료? 다 필요 없어. 축구장이야 말로 규칙 지키기부터 다양한 성격 또래들과 부대끼며 가르칠 수 있는 기회야. 가르치자, 우리. “

수학, 영어, 국어 등 다 우리가 끼고 가르치면 적당히 따라와 주었다. 하지만 ‘사회성’만큼은 참 어려웠다. 의사 선생님도 사회성은 약으로도 안 된다 하셨다.


사실 ADHD가 아닌 학생들도 학교에서 보면 사회성이 점점 더 부족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건 가정에서 가르쳐야 하는데, 안 되면 학교에서라도 부딪히면서 가르쳐줘야 하는데... 조금만 싸워서 아이가 속상하면 학부모는 전화를 한다. 작은 말싸움도 아이들이 해결하고 매듭을 짓는 일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아이들은 타인을 자세히 관찰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친근함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괜찮은지 잘 가늠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국영수보다 “사회성”이 간절하게 느껴진다. 특히 타인의 입장을 주의 집중하여 관찰하고 깊게 느끼지 못하는 ADHD 아이들에겐 더 간절하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동네 축구장의 정글에서 아이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용히 불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금, 여기서” 가르치는 것이다.


“세모야, 방금 형이 패스하라고 했는데 왜 안 했어? 세모만 하고 싶어 하면 축구는 같이 할 수 없어. 세모가 배려해서 패스를 해서 세모의 팀이 이길 수도 있어. 욕심이 나도 참아야 해. “


“세모야, 방금 동생이 뺏었다고 왜 화냈어? 드리블을 하다가 상대편이 공을 뺏는 건 화낼 일이 아니야. 세모도 상대편의 공을 뺏어야 하잖아. 너는 되고 남은 안 되는 건 없어. 우린 축구를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 화내면 안 돼. 가서 사과해야 해.”


참으로 많은 사과와 많은 지적이 오갔다.

1년이 지난 지금 약효가 없는 저녁 시간에 동네 축구장에 던져놓아도 그 정글 속에서 신나게 타잔처럼 나무줄기를 타듯 노는 세모를 볼 수 있다. 사과도 할 줄 알고 형들한테 적당히 맞춰줄 줄도 안다.


국영수 왜 배우죠?
잘 살아가려고 배우는 과목들이죠.
ADHD 아이들은 누구보다
타인의 도움과 이해가 더 필요한,
그리고 필요할 아이들이에요.
그래서 국영수보다 때론
사회성이 너무 절실하답니다.
사회성, 가르칠 수 있어요.
오늘도 가르치러 갑니다, 축구장.


*사진 출처-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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