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하지만 대화가 없어 외로운 이방인.
이삿짐을 미리 보내고 보고싶었던 전시를 보는 것으로 서울에서의 마지막 일상을 보낸 뒤, 포항으로 떠났다. 느즈녁히 출발한 터라 휴게소 들리고 하다보니 금방 밤이 되었고, 비가 와서였는지 안개가 낀 저녁 도로를 달리다보니 뭔가 신비로운 기분도 들었다. 양쪽에 산을 낀 고속도로를 안개를 헤치고 터널을 통과해 달리면서 마치 산신령이 나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지금 심란하구나. 걱정말거라. 이 터에서 내 너를 잘되게 해줄지니.' 뭐 이런...
가족을 이루고 안정되가는 중이었지만, 새로운 시작과 적응이 두려울 나이는 또 아직 아니었다. 아직 나는 휴직중이었고, 다시 복직할 생각이었기에 제주도 1년 살이 하는 마음으로 내려왔고, 그래서 조금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장기 휴가를 떠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장기간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산다는 건 의외로 설레는 일이었다.
포항에서의 첫 집은 그때 첫 입주하던 브랜드 신축 대단지 아파트였다. 그 당시 가장 비싼 집이었다. 논밭에 둘러쌓였지만 앞에 강도 보이고 에어컨이 방마다 달려있는 그런 집. 서울에서의 집에 비하면 말도 안되는 좋은 집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서울에 비해서 말도안되게 쌌다. 이가격에 분양을 하면 건축원가는 나오나 싶을 정도로... 맨하튼에 살다가 교외의 주택으로 이사온 신입 주부가 이런 느낌일까? 거실 밖으로 보이는 건물이 고층 오피스 빌딩이었던 전의 조그만 구축 아파트와는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훨씬 넓고 좋은 고층 아파트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맞은편의 아파트들과 그 아파트들 너머의 강, 그리고 그 뒤에 보이는 논밭들... 논밭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니. 여긴 그래도 시에 동인데! 그 이질적인 느낌이란...
그 좋은 집에서 처음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밤이되니 빛이 없는 논밭들은 어둠속에 뭍히고, 오직 밝은 맞은편 아파트의 조명들만 빛이 나 마치 해운대 같은 장면들이 펼쳐졌다. 낮에 봤던 그 여백들과는 전혀 다른 밤풍경. 가로 누워 그 반짝이는 밤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내일 부터 뭘 해야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첫 밤이었다.
첫 밤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즈음의 포항생활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를 사귀려고 문화센터도 다녀보고, 어린이집 엄마랑 커피도 마셔봤는데 잘 되지않았던 것 같다. 외로운 마음에 맘카페에서 친구를 찾아보려고 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없는 팀, 아이가 있는 팀, 두팀을 모았는데, 결론적으론 잘 되지않았다. 오히려 조그만 이 땅떵이안에서도 문화가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끝났다.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묘하게 배타적이었다. 그들이 편하게 뱉는 일상중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태반이었고 (예를 들면 지명이라던가, 시내의 무슨 가게라든가, 전 시장이나 지역인사라든가) 모르는 내색없이 맞장구 치다 내가 입을 열면 가끔 떠오르던 그들의 의아한 표정. 그 표정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느끼는 그런 감정들을 그들도 지금 느꼈나보다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사람들은 참 친절했다. 엔분의 일의 사회를 살던 나에겐 그게 참 불편했다. 댓가없이 퍼주는 친목을 쌓아가는 과정 속에서, 받으면 그만큼은 갚아야하는 나는 늘 빚지는 느낌이었다. 요리도 못하고 청소도 못하고 빨래도 못하고... 뭐하나 특별한 재주도 없는데. 요리를 받으면 요리로 갚지 못하고, 부모님이 재배했다며 나누는 채소나 야채들을 받으면 그건 더 막막했다. 나는 정말로 줄게 없었으니까. 차라리 아무것도 받지 않았으면 싶었는데, 받지 않으면 예의가 아닌 것 같은 이 알수없는 문화를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이 너무 자연스럽고 능청스럽게 나누고 있었다. 나 때문은 아니었지만, 두 모임 모두 금방 끝났다. 마치 자매처럼 모든 걸 주고받고 하던 한 모임은 어느날 갑자기 누구하나가 서운함을 토로하며 방을 나가면서 폭파되었고, 다른 한 모임은 점점 모임의 빈도가 잦아들더니 모이지 않게되었다. 친한 사람들이 한두명 남았지만... 나는 다시 외로워졌다.
집앞 커피숍에서 커피를 시키고, 마트에 가서 계산을 하면서 대화는 했지만, 대화가 없던 시절이었다. 서울의 친구들은 다들 신혼이나 미혼이라 직장다니느라 바빴고, 우리가 모이던 그 시간 그 곳에 나는 이제 더이상 갈 수 없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나가면 잘가라 배웅하는 그런 90년대의 행복한 가정을 그린 영화속 엄마 역할처럼. 나는 남편을 배웅하고 그의 퇴근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집을 인사하며 나가는 주인공이고싶었지, 집에남아 손흔드는 엄마 역할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남아 이렇게 생산적인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역할을 맡다니. 내가 기어코 이 롤을 맡다니. 누군가 만나서 신세한탄을 오부지게 하고싶은데, 말할 사람이라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그 놈 뿐이었다. 그러니 그 놈을 하루 종일 오매불망 기다리는 수 밖에. 커피를 마셔도, 술을 마셔도 마셔줄 사람이 그 뿐이지 않은가.
앞에 나서서 모두를 리드하는 지도자형은 아니었지만, 나도 나름 꽤 잘나가는 외향형 인간이라우. 이사오기전 동네에선 막 생긴 맘카페에 원년 멤버이기도 했다. 그게 어디든 말만 통하면 친구 정도는 사귀고도 남는다고 자만했는데. 아주 보기좋게 나는 고립되었다. 요리학원도 기웃대 보고 플룻부는 곳, 발레하는 곳도 기웃거렸지만, 내 또래 엄마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아이를 지켜보며 과일을 나눠먹는 저 엄마들은 어떻게 알게되었을까? 문화센터 앞 푸드코트에서 같이 밥을 먹고있는 저 엄마들은? 이곳에서 잘 섞여서 살아갈 수 있을까? 말이 아주 잘 통하는 외국에서 나는 외로워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