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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브리나Sabrina Oct 07. 2023

잃어버린 기억, 이를 되찾으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들-2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9: Lost Memories](2002)

2009 로스트 메모리즈 [2009 Lost Memories] (2002) *나카무라 토오루 포커스 리뷰

주연: 장동건, 나카무라 토오루



(전편에서 간략하게 줄거리에 대해 다루었기에, 바로 디테일한 리뷰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 초반부 이토 회관에서의 총격 신. 해당 촬영장은 남양주 시에 세워진, 촬영 당시 최대의 세트장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총에 맞아 깨지는 연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리석을 활용하는 등, 말 그대로 자본과 투자를 아끼지 않은 장면. 실제로 특수훈련을 받은 엑스트라들을 투입했다고 하니 더욱 볼 만하다. 그리고 나카무라 토오루 배우는 무려 1985년에 데뷔한 영화배우답게, (영화 촬영 시점에서 이미 경력만으로 따져도 15~16년 차.) 해당 장면을 준수하게 소화한다. 단단하게 권총을 쥔 파지법이 인상적이다. 샛노랑 색의 정체 모를 고글 역시 잘 소화해 낸 것은 덤.















 사카모토(장동건)와 사이고(나카무라 토오루)의 감정이 대립하는 신. 이노우에 재단의 수상함을 감지한 사카모토가 감정적으로, 그리고 다소 무모하게 수사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평소와 다르게 냉정함을 잃은 친구를 눈치채곤 이를 다잡으려 하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다. 배우의 굵직하고 단단한, 귀에 확 들어오는 발성으로 사카모토에게 일갈하는 장면일 뿐만 아니라, 직후 자신의 말에 상처 입었을 친구에게 사과하는 장면. 특히 사과를 건네는 장면에서는 더욱 섬세한 표정연기가 돋보인다. 사실 해당 장면의 원인은 사카모토가 (다분히 의도적인 타인의 발언에 의해) 자신의 사적인 감정에 치우친 것에 비롯되었으나, 이미 자신보다 더욱 감정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을 친구를 배려하여 어른스럽게 먼저 사과하는 장면이 두 캐릭터 간의 신뢰 관계를 잘 보여준다. 











 결국 경찰 상부 조직의 음모에 의해 갈라서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두 사람. 다카하시(신 구 배우님)를 살해했다는 누명까지 쓰여 더욱 위기에 처한 사카모토. 그리고 차마 친구가 조직에 의해 개죽음당하는 장면은 볼 수 없어 남몰래 사카모토의 수갑을 풀어주고, 탈출로까지 마련해 주는 사이고. 조직과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의 착잡한 심리를 잘 표현해 낸 장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사이고 역시, 명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몸이다. 이 장면을 끝으로 사카모토는 자신의 인생에 소중했던 두 사람을 모두 잃는다. 그래서인지 이 뒤에 사카모토가 총에 맞은 상처도 치료하지 않은 채 거리를 배회하는 신을 넣어준 듯하다.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주인공이 인파 속에서 홀로 고독함을 맛보는 왜, 그런 클리셰가 있지 않은가.)













 가까스로 탈출한 사카모토는 후레이 센진의 아지트에서 머무르게 되고, 조작된 역사에 대한 진실을 듣게 된다. 또한 사이고 역시 자신의 집을 찾아온 상사로부터 이노우에 재단, 그리고 역사의 왜곡에 대해 알게 된다. 정확히 이 시점을 기준으로 영화의 분위기와 장르가 급변하게 된다(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자신을 비롯하여 선조들이 살아온 몇 백 년 간의 현실의 근간이 흔들리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는 장면인데, 정지된 캡처 화면보다 움직이는 동영상 화면으로 봤을 때 더욱 그가 받은 충격과 흔들림이 더욱 잘 나타난다. 미간의 움직임이라던가, 떨리는 눈꺼풀 등등. 게다가 '시간의 문'을 넘어간 후의 결과에 대해서, 그리고 왜 하필 자신이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임무 수행 전 마지막으로 딸에게 저녁 인사를 건네는 장면인데,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담겨있는 표정. 배우가 실제로도 두 명의 딸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잘 묘사된 감정 표현.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밝은 톤의 의상, (구체적으로 재킷)을 착용했다가, 점점 어두워지는 영화의 분위기에 맞물려 사이고의 의상의 톤이 함께 짙어지는 점도 인상적이다. (밝은 회색 - 남색 - 검은색) 나 혼자만의 의미 부여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두워지는 캐릭터의 심리 변화를 묘사한 거라고 생각한다. 

















 부산항에서의 총격신, 그중에서도 마지막 장면. '영고대'와 '월령'이 작동하여 시간의 문이 열리고, 더 이상 이 세계에 잃을 것도 없는 사카모토는,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아무런 미련 없이 자신의 몸을 던진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뒤에 남겨진 사이고. 그다지 길게 잡힌 샷이 아니지만, 이 짧은 순간에도 배우의 미묘한 감정 변화가 잘 드러난 신이다. 차례대로 시간의 문에 몸을 던진 친구에 대한 경악, '나 역시 이 현실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듯한 절망, 거부하고 싶은 현실이라도, 돌아가봤자 자신을 기다릴 것은 참담한 미래뿐이라는 슬픔, 그리고 결국 선택해야만 하는, 운명에 대한 결의. 사이고 역시 사카모토를 따라가는 길을 택한다. 










 


 100년을 거슬러 과거의 하얼빈으로 타임슬립한 두 사람, 그리고 대나무 숲에서의 마지막 조우. 역사를 바로잡으러 가는 그 길에 동행이라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기에, 한 때 친구였던 두 사람은 둘 중 하나를 총으로 겨누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고 결국 사이고의 총구는 마지막 순간에 흔들리게 된다. 여기서 너와 나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며, 이미 한 발을 맞은 자신을 죽이라 하지만 차마 제 손으로 친구를 죽일 수 없었던 사카모토는 총을 내려놓는다. 여담이지만, 다소 갑작스러운 장면의 전환에 조금은 황당하고 유치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으나... 20년 전 영화임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장면의 미장센 만은 아름답게 잘 촬영되었다고 생각한다. 대나무 숲에서 서로가 좌우로 교차된 연출, 장면의 색감, 그리고 비장한 느낌을 주는 배경 음악까지 더불어. 



 마침내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이 있었던 그곳, 하얼빈 역. 마지막까지 자신을 집요하게 쫓아온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이고를 향해 총구를 겨누게 되고 마는 사카모토. 결국 사이고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나, 최소한 마지막 순간에서 사카모토를 원망하지는 않으면서 눈을 감는다. 실제로 해당 장면에서 나카무라 토오루 배우가 장동건 배우를 향해 손을 뻗는 장면은 '괴로운 운명에 처한 자신을 마침내 보내준 고마움'에서 비롯된 애드리브라고 한 것이 오피셜이니. 


 이후 왜곡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사카모토의 손에 의해 영고대는 파괴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역사가 계속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결말이다. 촬영 당시 (2001~2002) 기준으로 약 8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갔을 정도로 상당한 규모의 자본 투자와 노력이 들어간 영화이고, 그만큼 어느 정도의 보는 재미는 보장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렵고도 민감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했다는 위험성과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서 더욱 눈에 들어오는, 장면 간의 유기성을 따질 수 없는 산만함과 지루함은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카무라 토오루 배우 본인에게, 이 영화는 지금까지 촬영했던 어느 영화 보다도 훨씬 큰 규모와 노력으로 제작된 영화라며 한국의 영화 산업에 대해 긍정적인 코멘트를 남겼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홍콩에서도 다양한 영화를 촬영했던, 당시 15년 이상의 배우 경력을 갖고 있었던 그에게도 한국 영화가 보여준 스케일과 에너지는 꽤나 남다른 인상을 남겼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 역시도 이 영화를 통해 '나카무라 토오루'라는 배우를 알게 되었고 다양한 일드를 접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나름 개인적으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 영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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