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벽과 두 겹의 벽으로 이루어진 요새
여러분은 '요새'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남한산성 같은 것이 떠오르나요? 아니면 중세 배경 영화에 나오는 성벽 높은 성이 떠오르나요? 저는 요새 하면 그냥 높은 벽이 떠올랐어요. 절대 뚫고 지나갈 수 없는 한 방향 적 벽. 그 뒤에 숨으면 아무도 찾지 못할 것 같은 벽. 아무런 색도 못 느껴지는 무채색의 벽.
이번에 방문하게 된 스포르체스코성은 요새라고 하는데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지금이 평화의 시대고 그런 시대 관광객으로 차있는 곳이어서 그럴 수 있겠지만 밖에서 안으로 들어갔을 때 주는 안정감은 생각지 못한 감정이었습니다.
이곳은 15세기경 밀라노 영주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때 만들어진 거라고 합니다. 거대한 중세 르네상스 요새로 역사박물관으로 이용 중이며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유명한 피에타가 있는데 바로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피에타 '론다니니의 피에타'입니다. 작은 방에 있는데 이번에 그 뒷모습만 보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쉬움보다 이 요새의 매력에 흠뻑 빠져 미켈란젤로 피에타를 제대로 못 본건 아쉽지 않았습니다.
중세 봉건제도를 가르칠 때 장원을 이야기하면서 늘 보여주는 그림이 있었는데 그 그림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래 그림에 있는 영주의 성! 그 진짜를 본 거니까요. 옛 밀라노 지도도 안내판에 있어서
위치적인 형태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단단하고 작은 틈도 없어야 할 것 같은 벽에 작은 구멍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벽 안에서 공격할 때 쓰는 용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이드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화포구 역할을 하는 것도 있지만 벽이 공격을 받아 무너지더라도 벽 전체가 아닌 부분만 무너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건물이라는 것이 참 철학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켜주는 요새이지만 공격에 대한 방어가 단순히 막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받아도 최소한의 손실만 있게 만드는 그 생각! 그 생각에 감탄이 나왔습니다. 벽도 이중벽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방어를 위해서는 최대한 두껍게 높게 지으려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벽 두 개와 그 공간을 이용한 것이죠. 그리고 그 공간을 통해 이동도 다 가능하게 해 뒀더라고요.
몇 번을 둘러보고 계속 사진을 찍으며 요새가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요새지만 이들이 매일 머물고 있어야 하는 곳이기에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감성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자기들이 머무는 곳에 숲처럼 그리게 했다는 것을 보면 밖을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잘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 숲의 모습을 실제화해서 요새 정원에 만들어 둔 모습도 같이 보았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자신에게 요새가 있나요?
성경에서 시편이라는 시가서를 보면 하나님에 대한 여러 표현을 합니다. 그중에
하나님은 나의 요새시요~
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럴 때마다 막연한 요새였는데 이번 스포르케스코 성을 방문하고 요새 같으신 하나님 도 한번 더 묵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현장이면서 요새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마음에 새겨졌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