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으로 살아온 시간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주변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난데없이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난 누군가의 주변인이었던 거 같다. 주변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 뭐.
처음 주변인이 된 것은 언니 옆에서였다. 두 살 많은 언니는 나와 달랐다. 갸름한 얼굴에 예쁘장한 외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같이 다니면 항상 사람들이 언니를 보고 "어머~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생겼니~" 하고 옆에 있는 나를 돌아보고는 "넌 귀엽게 생겼네~" 했다. 항상 미영이 동생 미향이로 불렸다. 언니 옆에 있는 주변인이었다.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나를 처음으로 좋아해 주던 그 사람은 내가 좋았다기보다 자기가 좋아하던 친구 A랑 친한, 나를 동경했던 거 같다. 그 친구 옆에 있는 내가 특별해 보였나 보다. 그땐 그랬지 하는 이야기 속에 나는 없고 그 A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을 듣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언니를 좋아하는 오빠들한테도 나는 주변인이었다. 언니와 관계가 끝나면 나와의 관계는 모질게 끊어지는 경우들이 있었다. 나는 언니 동생으로 오빠들을 만난 게 아닌데 그냥 나였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니 줄줄이 비엔나처럼 떠오른다. 이건 생각한 대로 생각이 되는 건가?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성향도 다르고 커온 환경도 다른 친구였다. 그런데 그래서 더 친해진 거 같다. 그 친구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은 먼저 나에게 접근(?) 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썸을 타고 있다고 느꼈던 오빠님이 내 친구에게 좋아한다 고백한 사실을 알고 그럼 나는 들러리였나 하는 생각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먼저 알고 지내게 된 오빠였는데 말이다. 나는 친구 옆에 주변인이었다.
그 이후 친하게 지낸 동생이 한 명 있었다. 성격 털털하고 다들 좋아했다. 나랑도 잘 맞아서 여행도 자주 다니고 좋았다. 어른들도 그렇고. 둘이 친하니까 어른들과도 같이 자주 뵈었었다. 그런데 대부분 그 친구에 대한 호감이지 나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던 거 같다. 그렇게 느끼게 된 건 그 친구가 공동체에서 떠나고 난 이후였다. 그 친구 없는 나를 대하는 불편함들이 느껴졌고 나도 허전함이 컸다. 나는 그 동생 옆에서 주변인이었나 보다.
어떤 리더 옆에서 오래 같이 일을 했다. 목표지향적이었던 나는 일을 만들고 해 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리더에게 애정받는다고 오해를 많이 받았다. 사실 그저 일이 되는 게 좋았다. 그런데 그 리더 옆에 주변인이었던 모양이다. 일이 더 이상 의미 없게 되었을 때 내가 먼저 관계를 끊게 되었는데 그 뒤에 관련된 관계들도 순삭. 그 리더 옆에 나는 주변인이었다.
굉장히 독립적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제 와서 왜 주변인이었다고 이렇게 정리가 되는 걸까. 물론 모든 관계에서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의미 있는 관계들에서 유난히 나는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주변인으로 지내는 것을 오히려 즐긴 건가? 누군가 옆에 있지 않으면 나로 오롯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주변인으로 있지 않으려고 그렇게 인정에 목말라했던 건가.
내가 화나는 버튼 중에 하나가 '무시당했다'라고 느낄 때이다. 무시라는 키워드가 나에게 버튼이 된 것은 어쩌면 이렇게 주변인으로 지내온 것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로 먼저 주변인의 자리를 거부하는 몸부림이었을까?
이렇게 '주변인' 세 글자에 또 한 번 앞 뒤 없이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뭐 지금까지 그랬다면...... 이제 그렇게 지내고 싶지 않다면 난 어떤 모습으로 지내야 할까
지금은 사실 인간관계에 어떤 에너지도 쓸 수 없지만......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좀 더 온전히 오롯이 있는 내가 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