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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 Jul 19. 2023

사랑  

마음은 눈에 안 띄어도 결국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을 테니 생로병사를 거쳐 사그라들지 않을까.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가 생길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의 철칙 같은 것들이 무너지든 말든 신경이 안 쓰이는 데 입술이 부르튼 건 신경이 쓰이는 그런 상태가 버거웠다. 그런 상태의 병사,를 촉진시킬 수 있다면 선인장이라도 말려 죽일수 있을 것 같았다.   


올해 친구들 네 명이 결혼을 한다. 연애 안 하냐, 는 말이 안부인사가 된 지는 몇 년이 지났다. 주변에는 보기 힘든 결혼을 안 한 60대 여자와 어쩌다 대화를 하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 보이고 돈도 집도 있는 그 여자가 나에게 그래도 결혼은 고려해 보라는 말이, 몇 년 간의 안부인사나 당장에 가야 할 결혼식들보다 황망하게 다가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결혼할 뻔한 적 있으세요? 응, 근데 잘 안 됐어. 그럼 아직도 그 사람 가끔 생각나요? 가끔 생각나지.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거 자체가 감사해. 안 미우세요? 미웠지. 미운마음이 고마운 마음으로 바뀌기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5년. 


어쩌다 나는 한 달 동안 모르는 중년여자 둘과 동거를 하게 되었다. 중년을 넘긴 여자들의 사랑은 대단해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살찌웠다. 언젠가 친구가 할머니 때문에 맘 놓고 우울하지도 못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달할 때쯤 갑자기 방문을 열고 사과 깎은 거를 두고 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더 집어먹은 반찬은 다음날 두 배로 양이 늘어서 밥상에 올라와있었다. 


브루클린의 한 동네는 하수도시설이 없어서 비가 올 때마다 물이 고인다. 내가 함께 일하는 단체는 시 정부에서 그 동네의 재개발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동네사람들과 하수도시설에 대한 대책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비가 올 때마다 길이 물에 잠겨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는다고 했다. 비가 온 다음 날 가본 그 동네는 골목마다 작은 연못만 한 웅덩이가 있어서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서 지나가야 했다. 가끔 집중이 안되거나 잠이 안 올 때 유튜브로 틀어놓는 빗소리가 더 이상 편치 않았다. 


단체사람들은 비가 올 때마다 동네주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반년 간의 항의 끝에 시 정부는 임시 하수도 시설을 설치했고 재계발 계획 추진을 할 때마다 단체사람들은 때로 몰려와 하수도 시설을 요구하고 있다. 도시계획이 사람을 죽여도 안부 전화가 그 사람을 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2년 전 작고한 활동가의 생애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시사회를 갔다. 1970년대부터 그 활동가와 함께한 다른 활동가들이 상영회를 함께했다. 다큐멘터리 속의 활동가들은 맨해튼의 고속도로가 될 뻔한 동네를 55년의 항쟁 끝에 지켜냈다. 한 분은 보청기를 한 분은 휠체어를 사용했다. 보청기를 낀 사람은 휠체어를 밀었고, 휠체어를 탄 사람은 마이크를 내밀었다. 그들은 화면 속에서 몇십 년은 어려 보이는 얼굴로 간간히 등장하기도 했다. 세월에 흠뻑 젖은 얼굴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3층에 어찌어찌 앉아있는 그 얼굴들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내가 하는 연구와 관련이 있어서 이미 알고 시청을 했다. 내가 몰랐던 건, 그 활동가가 55년간의 항쟁 중에 아주 작은 승리라도 반드시 축하하는 파티를 매번 열었다는 것과 파티에서 가장 나이 든 어른에게 다가가 춤을 청했다는 얘기. 


지난달에 간 시위현장에서 아이를 데리고 온 여자가 있었다. 아이가 울먹거리자 옆에 있던 활동가는 과자를 꺼내서 아이에게 건넸다. 과자를 꺼내는 폼을 보고 느꼈다. 언제나 갖고 다니는구나. 


최근 들어 애정 어린것들이 여기저기 눈에 잘 치였고 그럴 때마다 배멀미가 났다. 그것들을 명명하기보다 그냥 머금고 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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