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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24. 2023

건방지게 셀프로 진단하는 암 환자

 코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비염의 신호. 숱하게 겪어왔던 증상 아닌가. 코와 목이 점점 따가워질 것이고 그러다 노란 콧물이 나올 것이며 가래와 인후염 증상이 나타날 것이다.  


 우선 집에 있는 비염약을 먹기 시작했다. 비인두암에 걸리고 나서부터는 재채기를 달고 살게 됐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침, 저녁으로 먹으라며 비염약을 왕창 처방해 주셨다. 처방약은 확실히 효과가 좋다. 하루 이틀분만 먹어도 증상이 사라지니까. 문제는 약을 끊으면 증상이 여지없이 찾아온다는 것.


 약을 먹었더니 증세가 완전히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해지지도 않는 상태였다. 이런 경우는 이비인후과에 방문해서 다시 비염약을 처방받는 게 좋다. 며칠 전 딸 앵두가 열이 39도에 오르고 독한 감기에 걸린 것 같더니 아무래도 옮은 모양이다. 앵두와 나는 코로나든 독감이든 감기든 늘 함께 걸린다.


 이비인후과에서 약 3일 치를 처방받고 꼬박꼬박 챙겨 먹었더니 많이 좋아졌다. 평상시 같으면 병원에 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상태를 지켜보다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병원에 가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 전. 크리스마스 이후로 며칠간 휴진을 하기에 증상이 다시 심해지면 약을 먹을 수 없는 리스크가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병운에 안 가도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코도 거의 뚫렸고 불편함도 거의 없으며 며칠만 지나면 증상은 깔끔하게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귀에 물이 차긴 했지만 이런 일은 암에 걸린 후 자주 있던 일. 의사에게 말할 것도 아니다. 그래도, 조금 귀찮지만 병원에 갔다. 여분의 약을 더 받기 위해서.


 두 시간을 기다려 진료실로 들어갔다. 상태를 물어보시는 의사 선생님에게 코는 많이 좋아졌고 귀에 물이 찬 것 같다고 했다. 원래 귀 얘기를 안 하려 했는데 왜 했는지 모르겠다. 별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코 속을 들여다보시는 의사 선생님이 의외의 말씀을 하신다.

 “아직 콧물이 많이 고여 있는데요?”

 “네?”

 할 말이 없다. 내가 느끼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보시기엔 아직도 상태가 안 좋은가보다.

 “귀 좀 볼게요.”

 귀로 내시경을 집어넣더니 인상을 쓰시며 말씀하신다.

 “중이염이 왔네요.”

 생각도 못했다. 항생제가 포함된 5일 치 분의 약을 처방받았다. 놀라웠다. 분명 몸은 괜찮은 것 같았는데. 병원에 안 갔으면 큰일 났을 거라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자고 일어났더니 다리에서 근육통이 느껴진다. 마치 독감이나 코로나에 걸린 것처럼 머리도 아프다. 기력이 없다. 계속 골골대는 나를 보며 아내가 집 근처 내과에 가서 수액이라도 맞고 오라고 한다.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밑져야 본전이니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몸 상태가 다시 좋아졌다. 워낙 자주 아프다 보니 셀프로 진단하고 병원 진료를 생략하려는 아주 불량한 암환자가 되어 있었다. 


 오늘의 교훈 :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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