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로 이사한 뒤 적응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선 곳이었고, 우리 가족을 포함해 대부분의 주민들이 다른 동네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었다. 서로의 같은 입장인만큼, 사람들은 빠르게 친해졌고 또 빠르게 각자의 삶을 찾아갔다.
그 변화 속에서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면, 엄마가 이전보다 훨씬 가까운 곳으로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어느 날부터 다른 집의 집안일을 돕는 가정부로 일하셨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날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파란 하늘에 햇살이 유난히 강하던 여름날, 엄마는 유난히 들뜬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들, 이제 엄마 돈 버니까 맛있는 것도 사주고, 필요한 것도 사줄게.”
아빠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엄마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전 동네에서는 엄마가 얼마나 먼 곳까지 일을 다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사한 뒤에는 주변에 형편이 괜찮은 집들이 많았는지, 엄마는 근처 아파트로 일을 나가게 되었다.
엄마가 일하던 집의 주인은 서울의 유명 대학을 나온 대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였다.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겠지만, 퇴근 시간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가정부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원래라면 엄마는 저녁 여섯 시쯤 집에 돌아와야 했지만, 집주인은 야근이 잦았고 엄마는 주인 중 한 사람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느라 밤이 되어서야 집에 오는 날이 많았다.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 집에는 갓난 여자아이 하나와 나보다 네 살 어린 남자아이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돌보며 엄마가 집에 갈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 집에는 우리 집에서는 보기 힘든 장난감과 물건들이 많았고, 주인아저씨는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자신들이 쓰지 않는 물건을 우리 집에 종종 건네주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학교 대표로 수학 경시대회 나가고 싶은 사람은 수업 끝나고 남아.”
담임 선생님의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어차피 할 일도 없다는 생각에 교실에 남았다. 잠시 후 다른 반 아이들까지 모이기 시작했고, 대략 서른 명쯤 되었을 때 선생님은 인쇄물을 나눠주시며 말했다.
“이 문제들 공부해. 2주 뒤에 시험을 볼 건데, 성적이 제일 좋은 세 명이 학교 대표로 나갈 거야.”
종이를 받아 들고 문제를 훑어봤다. 풀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나는 수학을 꽤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그 순간 깨달았다. 별다른 기대 없이 자료를 책가방에 넣어 두었다.
며칠 뒤,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들, 엄마 일하는 집 있잖아. 거기 주인아저씨가 너 수학 좀 가르쳐주겠대. 선생님이 준 자료 가지고 가서 한번 배워볼래?”
엄마가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이야기를 꺼냈고, 아저씨가 선뜻 그러자고 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 과외라는 걸 받아보게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아저씨는 고려대학교를 나온, 공부를 아주 잘했던 분이었다. 초등학생 수학 정도는 여유 있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나는 아저씨의 설명을 그대로 흡수했다. 무언가를 배우는 일, 이해하는 일, 그리고 문제의 답을 정확히 찾아가는 과정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일주일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수학 공부의 즐거움을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대표 선발 날이 다가왔고, 나는 1등으로 학교 대표가 되었다. 이어서 전국 대회에 나가 입상까지 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이과 쪽 공부가 나와 잘 맞는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엄마가 일하는 집으로 가 아이들을 돌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우연처럼 시작된 일이 나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되었고,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쯤 그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제는 내 나이가, 당시 그분들의 나이를 훌쩍 넘어섰다.
그때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