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도를 떠나며 시작된 내 기억

by David

내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서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은 더 어릴 적 기억도 또렷하다고 말하지만, 내게 그 이전의 시간은 텅 비어 있다. 마치 누군가가 인생의 첫 장 몇 페이지를 조용히 뜯어낸 것처럼.

내가 사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아주 커다란 산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 산을 난지도라고 불렀다.
산이라고 부르기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쏟아져 나온 쓰레기들이 쌓이고 또 쌓여 만들어진,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냄새가 가득한 산이었다. 그 인근에는 판자촌이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판자촌에서 조금 떨어진, 허름한 단층 주택에 살았다. 하나의 화장실을 다른 집과 공유하는, 그럭저럭 구색은 갖춘 집이었다. 집 주변에는 가끔 뱀과 쥐가 나타났다. 쥐는 찍찍이를 놓아 잡았고, 뱀은 다행히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묘한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환경이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위험’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환경의 일부였을 뿐이다.

사실 가난하다고 느낀 적도 거의 없었다. 그곳이 내가 아는 세상 전부였기 때문이다. 비교할 다른 세계가 없었다. 동네 안에는 조금 더 부유한 집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절대적 빈곤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 집이 특별히 더 가난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은 늘 검소하셨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다니던 학습지도나 학원은 내게 경험할 수 없는 세계였다. 아이들이 요구르트를 하나씩 배달시켜 먹는 모습이 조금 부러웠을 뿐이었다.

가난에는 뜻밖의 장점도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고, 대신 친구들이나 동네 형들과 놀이터와 운동장을 전전하며 하루를 보냈다. 해가 질 때까지 뛰어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느껴지던 발바닥의 욱신거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가끔은 가족들이 모여 집 앞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했다. 잘 곳이 있었고, 먹을 것이 있었으며, 옷도 잘 입고 다녔으니 의식주 자체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저 그런 평범한 가정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아이가 자라기에 그리 좋은 환경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도 행운이라는 것이 찾아왔다. 서울의 다른 동네 임대아파트에 당첨된 것이다.

난지도의 허름한 집을 뒤로하고, 비록 좁지만 깔끔한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가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벽에 묻은 때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 집은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하늘 위로 지나다니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내가 정말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이사가 단순한 주거 이동이 아니라, 내 인생이 사회가 정해놓은 길로 진입하는 첫 장면이었다는 것을. 정말로 새로운 세상에 한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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