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엄마도 가끔 나를 안내하다**가** 계단이 있거나 턱이 있어도 앞에 뭐가 있다는 말을 빼놓고 이동하다**가** 내가 걸려 넘어질 뻔한 후에야 미안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뜸해졌지만 엄마와 나가면 자주는 아니고 종종 생기는 해프닝 중 하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안내 좀 잘 하라며 잔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턱 하나만 잘못 걸려도 넘어지고, 계단 하나만 잘못 디뎌도 굴러서 다치는 게 일상이라 나는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그걸 알면서도 나와 지내는 게 너무나 익숙해서 잊어버리시곤 하셨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엄마를 종종 부축하고 넘어질 뻔하면 잡아주는 등 반대 상황이 돼 가는 중이다. 예전에 늘 밝고 당차고 활기 넘쳤던 엄마는 이제 할머니가 돼 무거운 것도 들기 힘들어 하시고, 무릎이 안 좋아 연골 주사를 맞으시는 등 쇠약해진 모습이 자주 느껴지기 시작하셨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엄마가 과일을 사 들고 오는 것도 불안해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내가 사 오겠다며 엄마를 말린다. 그러나 나도 시각장애인이므로 과일 상태를 볼 수 없어 인터넷으로 사서 배달 시켜 먹고 있다.
지금까지는 과일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 맛있는 것들만 왔고, 그래서 엄마는 과일 사는 걸 내가 한다고 해도 맡기실 정도가 됐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하지만, 나는 그게 느리게 올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내 착각이었음을 요즘 많이 실감 중이다.
나이가 들어 나와 비슷한 키가 돼 버리신 엄마를 보며 느끼고, 무거운 걸 들고 온 날 유독 지친 모습을 보면 그렇고, 흰머리가 났다고 말하며 웃으실 때 엄마의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아직은 내가 다니는 경로당 어르신들보다는 젊지만, 엄마도 이제 할머니 대열에 입문하게 되니 마음이 심란해진다.
앞으로 엄마와 나는 얼마나 더 지낼까?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도 나이를 먹고, 그러면 언젠가는 헤어짐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많이 울겠지. 엄마를 볼 수 없음에,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음에 마음이 허전한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많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소한 이야기부터 심각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다투면서 지내는 게 내 하루 일과다.
언젠가는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워질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그리워하지 않게 지금 잔뜩 들어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은 곧잘 한다.
경로당 어르신들을 보며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엄마의 잔소리 속 사랑을 느낄 때마다 더 그렇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도 그 속 사랑을 모르지 않을 만큼 어리진 않다.
사람은 언젠가 이별을 하게 된다. 그 이별이 아쉽고, 슬프고, 외롭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오늘도 나는 자기 전 엄마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며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엄마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하며 내일 다시 이야기할 날을 기다리겠지.
이별하는 날까지 엄마와 나의 이야기가 행복하게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