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있다는 건 가족들에게는 아픔이자 마음을 쓰이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된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는 눈이 보이지 않는 내가 다칠까 봐 늘 노심초사하셨고 어릴 때는 나 혼자 있는 걸 걱정하셨다. 그래서 오빠나 언니가 옆에 있게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와 언니에게는 미안하다. 나 때문에 맘껏 놀지도 못하고, 집에서 나와 놀아줘야 했으니까.
그걸 내가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사회를 경험하고 장애를 가진 형제들을 둔 비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책으로 읽으면서였다.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알아 가면서 어쩌면 오빠, 언니에게는 내가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로 인해 부담을 느꼈지만, 늘 집에서 어린 나를 봐 줘야 했던 언니와 오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친구들과 놀고 싶고 나가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했던 마음은 어땠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언니 오빠가 있어 좋았지만 언니 오빠는 내가 부담이 되거나 귀찮았을 것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나에게 언니 오빠에 대한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눈이 보였더라면 언니 오빠가 좀 더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라는 죄책감이 나를 붙잡고 놓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니 오빠에게 감사한 것은 어린 나를 놓지 않고 같이 있어 줬다는 것이다. 홀로 있던 시절 그 사실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었다. 누군가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하면서 홀로 밤을 지새울 때, 가끔씩 오빠와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가끔은 아무도 없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건지를 뼈저리게 깨닫곤 했다.
그 와중에 언니 오빠도 어리면서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고 같이 있어준 것 자체가 너무나 고마웠고, 미안했다. 나는 몰랐던 그때의 오빠 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때의 마음을 듣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워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조금씩 혼자가 되는 걸 받아들였다. 혼자 엄마가 준비해주신 밥을 먹고 저녁에 만화를 보며 지냈다. 늦은 시간 엄마가 오면 반가움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점점 커 중학생이 되고, 그때는 혼자 있다는 게 너무나 답답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혼자가 편한 아이러니한 마음도 있었다.
혼자 자유롭게 만화를 보고 늦게까지 자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고 나중에는 외로움만 마음속에 남아 맴돌았다. 그때는 벽이 친구였고, 같이 있는 동반자였다.
지금은 여러 친구들이 있고 친한 사람들이 있어 그때처럼 외롭지 않다. 가끔 찾아오는 외로움도 친구들과 언니, 동생들로 인해 다시 잊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어릴 적 혼자였던 그때의 마음은 지금도 남아 있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울고 있다.
나는 그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언니 오빠에게 그때 같이 있어줘 고마웠다고, 그리고 나 때문에 미안했다고 전하고 싶다.
나는 혼자 큰 게 아니다. 나를 지켜주고 아껴준 사람들이 있어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 오늘밤, 그 점이 너무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내 편이 있어 든든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