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던 길

by 수정

내가 열 살 때부터 스물몇 살까지 살던 동네,
손바닥 들여다보듯 구석구석 훤히 떠오르는 그 동네, 그곳을 떠올리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라 학교에 가려면 집에서부터 버스정류장까지 꽤 걸어가야 했고, 버스를 타고서도 한참을 나가야 했다.
덕분에 고등학생 시절에는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했지만 집에서부터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이 좋았다.

내가 걷는 길을 따라 저 멀리에는 기찻길이 지나고 작은 논과 밭도 있었다. 버스정류장 근처까지 걸어가면 벚꽃이 예쁘게 피던 공원이 있었고, 도서관도 있었다.
그 공원과 도서관에 자주 놀러 가곤 했었다.
버스로 한 정거장쯤 떨어진 곳에는 오일장도 섰다. 장날이면 엄마랑 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떡볶이도 사 먹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어릴 적 추억도 많은 동네이지만,
나에게 그 동네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남편과 함께했던 시간들 때문이다.
우리는 대학생 때 만났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같은 동네에 살았다. 동아리 선후배 사이였던 우리는 처음에는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학교 가는 길에 버스에서 자꾸 마주치다 보니 어느새 가까워졌고, 나중에는 일부러 서로를 기다렸다가 같은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남편의 집은 코앞이었는데, 나는 15분쯤 더 걸어가야 했다.
어느 날부턴가 남편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혼자서 다시 되돌아갔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에 혼자 가겠다고 거절했지만 함께 걷는 시간이 점점 더 좋아졌다. 어쩌다 혼자서 집에 가게 되는 날이면 혹시나 뒤따라 오는 건 아닌지 자꾸 뒤돌아보게 되었다. 항상 함께 걷다가 없으니 허전하고 자꾸 생각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고 긴 연애 끝에 결혼도 하게 되었다.

함께 걷던 길에 스치듯 서로 손이 닿으면 두근두근했던 마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남편이 내 손을 잡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다가도, 혹시라도 진짜 손을 잡을까 봐 나는 내 주머니에 슬며시 손을 넣고 걸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손을 잡게 된 날, 그 저녁의 훈훈한 공기,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던 기분 좋은 설렘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때는 참 순수하고 어렸었다.
그 길을 우리는 참 오래 걸었다. 별거 아닌 농담에도 깔깔 웃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헤어지기 싫어서 느릿느릿 천천히 걸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남편과 그 동네를 다시 가보았다. 많은 것들이 변했고 여기저기 들어선 건물들 때문에 내 기억보다 더 좁아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우리가 함께 걷던 그 길은 여전히 반가웠다.
그날 우리는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 그때 그랬던 것처럼 종알종알 옛이야기들을 나누며 함께 걸었다.
그리고 살다가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다시 이곳을 찾아와 오늘처럼 또 함께 걸어보자고 약속했다.
그때까지 우리 인생길도 잘 걸어가 보자고 말하며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믹스 커피를 마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