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유럽" 혹은 “중앙유럽” 체코에 대한 소소한 사실들
체코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감정 표현이 직설적인데,
체코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표현 중 하나가
"동유럽(Eastern Europe)"이라서,
체코를 그렇게 표현하는 순간,
아마도 바로
“중부유럽(Central Europe)"으로 수정되거나
혹은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팁을 안 주고 나왔을 때
당하게 되는
그 싸하고 냉랭한 표정을 만나게 될 것이다.
“동유럽”이 되기 싫어하는 건
사실 크로아티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도 마찬가지라서,
그걸 잘 모르는 외국인이
“동유럽"이라는 표현을 쓰면,
크로아티아, 폴란드에서는
“우리는 동유럽 대신 중부유럽이라고 한다”며
현지인이 “중부유럽"으로 바로잡아주곤 했는데,
체코 사람들도 그럴지,
아님 아예 그냥 못 들은 척 무시할지
잘은 모르겠다.
자기 기분과 감정에 너무나도 충실한
그 차갑고 쌩한 표정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프라하가 "동유럽"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둥,
“체코가 “동유럽”에서 제일 좋다”는 둥,
칭찬이라도,
그냥 괜히 한 번이라도,
체코인을 “동유럽인"으로 만드는 말은
시도해보고 싶지도 않다.
사실 우리가 아무리 아닌 척 해도,
“동유럽"이라는 단어가 “유럽 동쪽"이라는
가치중립적인 지리적 구분만을 뜻하진 않는다.
동쪽이나 서쪽이라는 방위가
남북을 축으로 자전하는 구형 지구에서는
기준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라,
생각보다 객관적이지 않고,
그것이 국가와 연결될 때는
정치적, 문화적 함의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한국의 동쪽에 있지만,
우리는 미국인을
동양인이나 동태평양인이라 부르지 않고,
그들도 절대 우리를
서양인이나 서태평양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동양, 서양과 마찬가지로
동유럽, 서유럽도
단순히 유럽 대륙의 동쪽, 서쪽만은 아니다.
아마도 나이가 많은 세대에게 "동유럽", "동구"는
무엇보다도 20세기 냉전시대 공산국가라는
정치적, 역사적 범주에 따른 명칭일 것이며,
나이가 어린 세대에게는
경제 수준이 서유럽보다 낮아,
물가가 좀 싸서 체류비가 저렴하고,
서유럽 다 둘러본 n차 유럽 방문객이 가기 때문에,
인스타 사진이 좀 덜 평범해 보이는,
좀 덜 전형화된 유럽 관광지 정도의
문화적 가치를 가질 것이다.
그런 정치, 역사, 경제, 문화적 관점에서
많은 한국인이 “동유럽 사람”이라 여기는
체코인들이
“동유럽"이라는 표현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그들이 오랫동안 벗어나고 싶어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공산주의", "소련" 등 암울한 과거를 연상시키고,
아무리 봐도 자신과 너무 다른
“러시아”라는 나라와
하나로 묶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봤을 때,
그냥 언어만 좀 비슷하고,
20세기 공산국가였던 것만 같을 뿐,
민족주의가 태동한 19세기 이전에 체코는,
체코인들이 생각하는 찐 동유럽 국가,
한국인들도 대표적 동유럽 국가라고 흔히 여기는
러시아와
문화적, 정치적으로 별 교류가 없었다.
그래서
건축도 전혀 다르고,
종교도 전혀 다르고,
역사도 전혀 다르다.
두 나라 간
문화적, 정치적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20세기엔
“동유럽”의 먼 이웃 소련으로부터
공산주의라는 체제 속
자유의 억압과 내정간섭이라는
달갑지 않은 선물을 받아,
문화적, 정치적으로 후퇴한 암흑기를 경험했다.
그리고 체코인들이
자신을 “동유럽”이 아니라
“중부유럽”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를
보다 일차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러시아를 뺀
유럽 지도를 펴서 봤을 때,
체코는 정말 유럽 동쪽보다는 중간에 있기도 하다.
(러시아의 유럽 부분을 포함하면
중부에서 더 나아가 아예 유럽 서쪽이 된다.)
얼마나 유럽 대륙의 중심이던지,
체코는 심지어 바다도 없다.
물론 적지 않은 수의 나라들이
넓지 않은 대륙을 조금씩 나눠 쓰는 유럽에는
놀랍게도 바다 없는 국가들이 꽤 있다.
하지만 비전문가인 내가 언뜻 보기에
그중에서도 지도상 유럽 중심에 가까운 나라는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정도고,
그중에서도 체코가 젤 중심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지도를 보면,
체코랑 오스트리아의 경도가 거의 비슷하다.
더구나 체코 수도 프라하는
한국인 그 누구도 동유럽이라 부르지 않을,
오스트리아 수도 빈보다 더 서쪽에 있다.
그러니 오스트리아를 동유럽이라 하지 않으면서,
체코를 동유럽이라고 하는 건
사실 체코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하다.
이렇게 체코인들이
체코가 “동유럽”이라 불리는 걸 “혐오”하는 건,
20세기 후반 “정치적, 이념적 동유럽”,
즉 공산체제에서 벗어나고 난 후 생긴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서,
이미 60-70년대 냉전 시절
유명인 중에는 “밀란 쿤데라”라는 체코 작가가
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인터뷰에서
체코를 지칭하며 사용한
“동유럽”이라는 표현에 여러 번 크게 발끈했고,
나중에
« Un occident kidnappé » ou la tragédie de l'’Europe centrale (“납치된 서양” 혹은 중부유럽의 비극)
이라는 글을 발표해서,
체코가 왜 동유럽이 아니라
중부유럽인지를 역설하기도 했다.
그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아무리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해도,
“동유럽”이든 “중부유럽”이든,
“동해”든 “일본해”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
“남의 일”엔 무심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 주장이 별로 큰 파급력을 가지진 못해서,
내가 몇 년에 한 번씩 슬라브어 관련 수업할 때마다
학기초에 이걸 꼭 말하고 넘어가는데,
그때마다 학생들은
처음 듣는 이 얘기를 신기해한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낯선 게 우리뿐만은 아니라서,
프라하 기숙사에서 며칠 같이 살았던,
프라하 대학에 교환학생 온,
영국인 룸메이트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처음 듣는 얘기라며,
역시 신기해했다.
그런데 얼마 전 BBC 뉴스를 보다가,
체코에 대해 “동유럽”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 들었고,
그 영국인 룸메이트가 왜 “중부유럽”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했는지 이해했다.
“중부유럽”(Central Europe) [혹은 “중앙유럽”]
이라는 표현은
어쩜 아직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들 스스로를 지칭하는 표현 또는
그걸 아는 몇몇 지역 연구가들만 쓰는
"전문용어"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
뭐 이런 스스로 유럽의 중앙이라고 여기는 나라를
여행하거나 살아보면,
한국이나 러시아에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국이나 호주에 체류할 때도 느끼지 못한,
유럽 어느 곳으로도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딱 유럽 중심이네. 중부유럽 맞네.’
하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아무튼 폴란드,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그리고 특히 체코에 가서는
그 나라를 Eastern Europe보다는
Central Europe으로 지칭하길 강력 권장한다.
듣는 “중부유럽인”도 더 기분 좋고,
그런 “전문적인” 것까지 아는 “교양인”도
더 센스 있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체코”는 체코어로
Česká republika [체스카 레푸블리카],
영어로 Czech Republic이다.
이게 Republic of Korea처럼
여권이나 국제 스포츠 경기에만 나오는
딱딱한 공식 명칭이 아니라,
그냥 보통 이야기할 때도,
뉴스에서 언급할 때도 사용하는 일상적 명칭이다.
그래서 이게 너무 기니까,
체코어로는 Česko[체스코]라고 줄여 부르고,
(체코어로 주변 나라 이름은 다 o로 끝난다)
영어로는 Czechia [체키야]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체코”라는 나라가 한국에 알려진 건,
20세기 공산국가 “체코슬로바키아”부터여서,
1993년 두 나라로 갈라지고 난 후,
한국에서는 큰 고민 없이
한 나라는 “슬로바키아”
다른 한 나라는 “체코”라고 부르는 것 같다.
“체코인”은 체코어로 Čech [체흐],
영어로 Czech [첵]이다.
체코 전설에 따르면,
어떤 두 형제가 길을 가다가 갈라져,
각각의 나라를 세우는데,
한 형제 Lech [레흐]는 폴란드를,
다른 형제 Čech [체흐]는 체코를 세운다.
폴란드 버전에서는
삼형제가 길 가다가 갈라져,
레흐는 폴란드,
체흐는 체코,
루스(Rus)는 러시아를 세우는 거였는데,
체코 버전에서는 러시아를 쏙 뺐다.
뭐 체코가
민족 감정 때문에 일부러 러시아를 뺀 것 같진 않다.
폴란드 버전에 러시아가 있다고 해서
폴란드인들이 러시아에 대해 호의적인 것도 아니다.
폴란드의 일부는 심지어
러시아에 약 120년간
식민지배를 당한 역사까지 있다.
예전 폴란드는 동서로 러시아, 체코가 이웃했으므로
전설에는 비슷한 언어를 쓰는
체코와 러시아 모두 폴란드의 형제로 들어가지만,
20세기 이전 체코 주변에는
슬라브 국가라곤 폴란드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슬로바키아도 있다)
오히려 여기에 먼 나라 러시아가
“형제”로 들어가는 게 더 이상하다.
아무튼
이 전설의 시조 이름에서
나라 “체코”와 민족 “체코인”을
의미하는 체코어 단어들이 나왔다.
체코는 “모라비아”
또는 체코어 “모라바(Morava)”라는 이름으로
8세기 역사에 첫 등장한다.
발전을 계속한 모라비아 공국(Principality)은
9세기엔 가장 중요한 슬라브 왕국이 되었다.
비잔틴 제국,
즉 동방정교의 중심지가 된 그리스의 성직자
콘스탄틴(=키릴)과 메토디우스 형제가
슬라브어를 위한 문자로 발명한 글라골리차와
그 문자로 번역된 복음서를 선물하며,
슬라브인의 그리스도교 개종을 위해 찾아간 곳이
바로 대 모라비아 공국이었다.
당시 그리스 주변에도
이미 슬라브인들이 많이 거주했지만,
그때 국가 차원의 그리스도교 수용할 나라는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의 조상들이 세운
대 모라비아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대 모라비아(Great Moravia, Velká Morava)는
현재의 체코, 슬로바키아와
폴란드 남부, 헝가리 북부 지역을 포함했다.
하지만 내부적 분열로
지배층 일부가
서쪽에 새로 생긴 이웃나라 보헤미아로 가고,
모라비아는 결국 멸망한다.
모라비아 동쪽,
현재의 슬로바키아에 해당하는 지역은
이후 천년 동안 남쪽 헝가리의 지배에 들어가고,
이제 체코는 보헤미아 공국
(Duchy of Bohemia, České knížectví)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이어간다.
잘 보면 “보헤미아”라는 나라의
영어명과 체코어명이 다른데,
이건 “코리아”와 “한국”같은 거다.
보헤미아(Bohemia)는
기원전 체코 지역에 살았던 켈트족인
“보이(Boii)족의 공국(Ducatus Bohemiæ)”
이라는 의미로,
로마인들이 체코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라,
다른 나라들도 계속 그렇게 불렀는데,
정작 켈트족과 거리가 좀 있는 슬라브족인
체코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앞서 말한 그 전설에 기반하여,
“체흐의 공국(České knížectví)”이라 불렀다.
하지만 “체흐의 나라” 보헤미아는
독립된 국가의 형태가 아니라,
11세기 초에서 19세기 초까지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의 황제령(Status Imperii)이었고,
독일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독일어가 널리 통용되었다.
아래 지도가 11세기
신성로마제국 안의 보헤미아 공국이다.
나중에 왕국(Kingdom)으로 격상된 보헤미아는
처음에 프르세미슬 왕조(Přemyslid dynasty, Přemyslovská dynastie)이다가,
14세기 룩셈부르크 왕조(Luxembourg dynasty, Lucemburská dynastie)로 교체되는데,
체코인들의 자랑인
카렐 4세(Charles IV, Karel IV) 또는 카를 대제가
바로 이 룩셈부르크 왕조 출신이다.
부계는 게르만족, 모계는 슬라브족이었던
카렐 4세는
“체코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강조했다는데,
그는 체코 출신 보헤미아 왕으로서는 흔치 않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기도 했고,
많은 것들을 새로 시작하고, 발전시켜,
그의 치세기는 보헤미아의 황금기라고 평가된다.
카렐 대학, 카렐 다리 같은 것이
그의 통치 시절에 세워졌고,
그밖에 체코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Karluv, karlova, karlove, karlovy 같은 명칭이
그의 이름에서 온 거다.
항상 북적거리는
프라하 카렐 다리 옆에 그의 동상도 있다.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보다 1세기 앞서
15세기 얀 후스(Jan hus)라는 종교개혁가가
보헤미아에 등장하는데,
당시에 그의 주장은
보헤미아 밖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절대적으로 “성스러운” 종교를
“감히” 개혁하려는
“불경한” 생각이 퍼진,
보헤미아는 “이단의 땅”으로 낙인찍혔다.
때마침 15세기 집시들이
유럽 동쪽에서 서유럽에 대거 유입되었을 때,
많은 유럽 동쪽의 민족들 가운데 굳이
그들을 “보헤미아인들”이라 부른 것도,
보헤미아의 이런 평판 때문이란다.
그리고 그런 보헤미아의 이미지는
19세기 비주류 자유주의자 예술가로,
그리고 현대의 부스스한 헤어스타일과
독특한 기하학적 문양의 히피의상을 일컫는
“보헤미안 스타일”로까지 이어진다.
즉, 우리가 흔히 쓰는 “보헤미안”은 사실
체코 “보헤미아”에서 나오긴 했지만,
“보헤미아”와 직접적 관련은 없는 거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그 의미가 많이 변형된
영어 형용사 bohemian이
역사적 국가명이나 현대의 지역명일 때는
체코어에서 “Český(체코)”에 상응되는데,
스타일일 때는
역수입하여 체코어화한
“bohémský(보헤미안)”을 따로 쓴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 (Old Town Square, Staroměstské náměstí) 중심에
이 모든 것의 시작인 얀 후스의 동상이 서 있고,
그 동상 뒤에는 오래된 후스교 교회도 있다.
비록 얀 후스의 종교개혁은 실패했지만,
보헤미아는 여전히
프로테스탄트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였고,
17세기 그런 보헤미아에서
가톨릭 신자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신,
프로테스탄트 공후를
보헤미아의 왕으로 추대하자,
이웃국가들의 가톨릭 공후들이 반발하여,
17세기 초반 프라하 근교 bílá hora [빌라 호라],
즉 “흰 산”이라는 의미의 언덕에서
백산 전투(Battle of White Mountain, Bitva na Bílé hoře)가 벌어졌고,
그것이 그 이후 30년 동안 지속된,
유럽 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의 종교전쟁인
30년 전쟁(Thirty Years War)으로 발전했다.
30년 전쟁은 가톨릭에 기반한
신성로마제국의 쇠락과 멸망을 불러왔고,
19세기 초반 보헤미아 왕국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신성로마제국 대신
오스트리아 제국 (Austrian Empire, Kaiserthum Oesterreich)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Austro-Hungarian Empire)의 일부가 되었다.
이렇게 보헤미아는 30년 전쟁 이후에도
계속 게르만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오히려 계속 좀 더 게르만화되었다.
하지만 결국 18-19세기 보헤미아에서
낭만주의와 민족주의가 태동하면서,
체코와 슬라브의 정체성이 중시되기 시작했고,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한 후
수백 년의 게르만 제국들의 지배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 보헤미아는
비슷한 언어를 공유하는 슬로바키아와 연합하여,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 Republic, Československá republika)란 독립국가를 형성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에 이웃 나라 독일에 점령당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영향력 하에서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공산국가가 된다.
1968년에는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Prague Spring, Pražské jaro)”,
즉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Socialism with a human face, socialismus s lidskou tváří)”를 표방한,
정치와 경제를 탈중앙화하는 개혁 시도가 있었고,
그러한 체코 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한
“big brother” 소련에 저항하는 국민들의 시위가
체코슬로바키아 곳곳에서 일어났다.
“프라하의 봄”은
주변의 유럽 공산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쳐,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지만,
결국 소련의 무력개입으로 강제 진압되고,
어떤 유럽 공산국가도
당시에는 기존 체제 전복에 성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20여 년 후 1989년
다른 많은 유럽 공산국가와 마찬가지로,
체코슬로바키아는
드디어 평화적인 벨벳 혁명(Velvet Revolution, sametová revoluce)을 통해
공산 정권을 무너뜨리고,
1993년에는 벨벳 이혼(Velvet Divorce, sametové rozdělení)이라 불리는,
역시나 평화로운 해체 과정을 거쳐,
(유고슬라비아 같은 경우는 몇 년간 내전을 했다)
슬로바키아로부터 분리되어,
체코 공화국, 즉 Česká republika [체스카 레푸블리카]라는 국가가 된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1000년 동안 다른 나라여서,
언어만 비슷할 뿐,
많은 것이 달랐고,
위의 지도에서 보듯,
공산 체코슬로바키아는
보헤미아, 모라비아, 슬로바키아라는
세 지역으로 나뉘었었는데,
행정적, 경제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체코, 즉 보헤미아, 모라비아 중심적이어서,
체코와 슬로바키아 주민 모두
이 체제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다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기반의 체코와
오랫동안 체코 역사 밖에 있던 슬로바키아라는
별개의 두 독립 국가가 되었다.
2004년 많은 구 유로 공산국가들과 더불어
EU 회원국이 된 체코는
2020년 현재 1인당 GDP 23,000달러이며,
최근 5년간 2-5%의 경제성장률 보이고,
실업률은 약 3%로 유럽 최저 수준이다.
유럽 구 공산권 국가 중에서는
슬로베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경제적 수준이 높은 국가이며,
1991년 구 공산권 중부유럽 국가,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가 만든
비셰그라드 그룹(Visegrád Group) 중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체코는 관광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관광업은 총 GDP의 약 5% 정도로,
오스트리아, 프랑스 (약 10%),
크로아티아, 그리스 (약 20%) 보다
관광업의 비중은 낮다.
체코는 남한의 80% 정도 크기로,
많은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보다 조금 작은데,
우리처럼 남북으로 긴 모양이 아니라,
동서로 긴 모양이다.
역사 속 국가 이름이
지금은 지역명이 되어서,
크게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
체코어로는
Čechy [체히]와 Morava [모라바]로 나뉘는데,
프라하가 있는 서쪽 지방이 보헤미아,
제2도시 브르노(Brno)가 있는 동쪽이 모라비아다.
두 지방은 언뜻 비슷하면서도
언어와 문화가 또 다르다.
보헤미아는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고,
모라비아에서는
폴란드, 헝가리와 유사한 부분이 발견된다.
모라비아 동쪽에는
체코어와 매우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고,
20세기엔 한 나라를 이루기도 했던
가까운 이웃 슬로바키아가 있고,
보헤미아 서쪽에는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그리고
오랫동안 문화적, 정치적으로 체코를 지배했던
애증의 이웃 독일,
남쪽엔 체코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또 다른 게르만 이웃 오스트리아,
그리고 북동쪽엔 비교적 사이가 좋은
슬라브 형제 폴란드가 있다.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같은 큰 지역 구분 말고,
위 지도에서처럼 체코도
우리의 “도” 같은 여러 개의 행정 단위로 나뉜다.
나는 그 중에서
(1) Central Bohemia의 프라하, 카를슈테인, 쿠트나 호라,
(2) Karlovy Vary의 카를로비 바리,
(3) Usti 의 테레진, 리토메리체,
(4) Pilsen의 플젠,
(5) South Bohemia의 체스케 부데요비체, 체스키 크룸로프,
(6) Liberec의 리베레츠,
(7) South Moravia의 브르노,
(8) Vysocina 의 텔치,
(9) Olomouc의 올로모우츠
를 가봤는데,
작은 나라라도
우리처럼 음식도, 언어도, 문화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체코는 꽤 좋은 여행지다.
누군가가 “동유럽” 쪽으로 여행 가고 싶다고
추천해 달라고 하면,
소중한 사람일 경우
우선 “동유럽” 아니고 “중부유럽”임을 설명해주고,
자연,
특히 멋진 바다를 원하는 사람에겐 크로아티아를,
문화, 즉 다양한 시기의
예쁜 유럽식 건축물을 원하는 사람에겐
체코를 최우선 추천할 거다.
우선 그 유명한 프라하는
수백 년간 켜켜이 쌓인 건축들이 조화로워,
어디 가든 예쁘고,
어디서 찍어도 사진 배경이 예쁘다.
그리고 어디에서 찍은 건지 단번에 알 수 있게,
포토존인 프라하 성이나 구시가 광장의 구조물들이
개성이 뚜렷하다.
이번엔 프라하 말고 다른 도시도 많이 갔는데,
체코 다른 도시들도 하나같이 다 예쁘다.
단, 밤엔 조명이 어둡고,
야경은 좀 별로다.
노란빛이 감도는 어두운 가로등 조명이
사진에 별로 아름답게 나오지 않아서,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해가 진 후 멋진 사진은 포기하는 게 낫다.
체코는 여행하기 꽤 안전한 국가다.
Institute for Economics and Peace에서 발표한
2021년 국가 안전 랭킹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 9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프라하나 브르노(Brno) 같은 대도시엔
물론 좀 위험한 지역이 있기도 하고,
관광객이 많은 시즌에는
붐비는 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소매치기를 만날 수도 있다고도 하지만,
유럽의 다른 관광지에 비하면 그 또한 심하지 않고,
전반적으로는
체코는 여행하기 안전한 나라로 평가된다.
내가 체코에 머무르면서 느끼기에도 그랬다.
물론 그래도 관광시즌에 프라하에 간다면,
소지품을 잘 챙겨야 하고,
밤에 혼자 외진 곳을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다.
체코는 물가도 싸다.
프라하 구시가 바깥쪽,
우뚝 솟은 현대적 건물
My [마이]
(원래 체코어식으로는 my는 미”라고 읽는데,
이건 “마이”다)
지하에 자리 잡은 슈퍼마켓 Tesco에서
장 볼 때마다,
멍 때리고 있어도,
작은 소리로 속삭여도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그 모국어로
“여기 정말 싸다”
라고 한국인 관광객들이 감탄하는 걸
정말이지 갈 때마다 항상 들었다.
체코에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그리고 가끔은 저녁까지 집에서 챙겨 먹었는데,
그 Tesco뿐 아니라 다른 슈퍼마켓에서도
우리 돈 10,000-15,000원 정도면
(200-300 코루나)
5일 치, 일주일 치 먹을
과일, 채소, 치즈, 햄, 우유, 요거트, 빵 등을 샀다.
다른 유럽도 그렇지만,
유럽에서도 물가가 저렴한 체코에선
식료품이 한국보다 확실히 싸다.
외식물가는
그냥 커피가 보통 50-60 코루나 내외
(약 2,500-3,000원),
커피까지 합쳐 밖에서 먹는 점심 한 끼는
보통 200 코루나 내외(약 10,000원 정도) 다.
관광지는 이보다 더 비싼 곳도 많지만,
관광지 벗어나면 좀 더 저렴한 경우도 많다.
numbeo라는 사이트에서는
프라하 물가가 서울보다 38% 싸다고 하는데,
공산품은 거의 구입하지 않았지만,
식료품은 많이 저렴하고,
외식물가는 평균적으로 비슷하거나 약간 싸니까,
내가 느낀 체감 물가도 30-40퍼센트 정도
프라하가 서울보다 저렴한 것 같았다.
그나마 체코에선 프라하가 가장 물가 비싼 도시라,
체스키 크룸로프 같은
대놓고 관광지인 도시가 아니면,
다른 도시들은 프라하보다도 더 물가가 싸다.
체코는 EU에 가입했지만,
아직도 koruna [코루나]를 그대로 쓴다.
내가 갔던 EU 가입국 중에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그리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독일, 이탈리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등은 유로로 바꿨고,
체코,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스웨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등은 자기 고유의 화폐를 아직 사용했다.
“체코 코루나(Koruna česká)”라는 의미로
Kč 또는 CZK로 흔히 표기하는 koruna는
“왕관”이라는 의미라서,
영어로는 crown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체코 말고 많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왕관"이라는 의미의 화폐명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국가가 동전을 발행할 때,
왕관을 찍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환율은 보통 1 코루나에 40-50원 정도 한다.
체코어는 영어랑 많이 다르지만,
체코, 특히 프라하는 오래전부터 관광지라,
체코인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의 영어는 한다.
그래서 뭐 대단히 복잡한 논쟁을 할 게 아니라면,
길 묻고, 가격 묻고 하는 정도 선에서는
영어만 사용해도
의사소통엔 큰 불편이 없다.
혹시 러시아어를 좀 한다면
러시아어와 비슷한 단어들을 발견하게 될 텐데,
그리고 러시아어 할 줄 아는 체코인들도 꽤 많은데,
그래도 체코에서 러시아어는 안 쓰는 게 낫다.
체코는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이자,
러시아인이나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우크라이나인, 몰도바인 등이
취업하여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20세기 공산 소련의 억압과
현재 러시아 관광객들의 교양 없는 태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체코인들이 러시아인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2012년 내가 프라하에 있는 동안
놀러 온 러시아 친구들이 러시아어를 하자
서비스하는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며칠 전에 내가 한국인 후배와 가서
떠듬떠듬 체코어를 했을 때는
계속 미소짓던 친절한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체코어로 말했는데도
프라하 여행 때 체코인들이 자기한테 불친절했다던
러시아인 지인 얘기를 들은 적도 있으니,
러시아인이 러시아어 억양으로
체코어나 영어 하는 것도 안 좋아할 것 같고,
러시아에서 교환학생 끝나고 “가까운” 체코 갔을 때
러시아어 했더니 싫어하더라는
선배들 여행담을 떠올려보면,
러시아인 아닌 사람이 러시아어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하긴 한국에 관광 온 외국인이
다짜고짜 일본어로 길을 묻는다거나,
부유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와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진상을 떨면,
내가 일본어나 중국어를 한다 해도
못 알아듣는 척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내가 이렇게 체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거기 "좀" 살아봤고,
뭘 “좀” 알기 때문이다.
러시아 언어학 전공자인 나는
한국의 대학원 과정에서
제2, 제3, 제4 슬라브어로
폴란드어, 체코어, 불가리아어를 배웠다.
다른 대학원 동료들은
대체로 그중 하나만 듣고 말았는데,
나는 워낙 외국어 배우는 걸 좋아하고,
솔직히 약간의 소질도 있는 데다가,
뭔가 이해득실 계산을 정확히 하는 타입도 아니라,
그런 슬라브어들을
한국에서 쉽게 배울 수 없다는 매우 단순한 생각에,
수업이 개설될 때마다 계속 수강했다.
슬라브어는 서로 많이 비슷해서,
한 언어를 알면 다른 언어는 쉽게 이해하는데,
그래도 또 많이 달라서,
좀 더 잘하는 슬라브어가 자꾸 방해를 하는 통에,
다른 언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건 오히려 어렵다.
그래서 처음엔 쉽게 그리고 빨리 배우지만,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까지
마스터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두 번째 슬라브어까진 좀 괜찮았는데,
그래서 지금도 러시아어, 폴란드어는
오랫동안 안 해도 금방 다시 복원되는데,
세 번째 슬라브어를 배울 때부터는,
세 슬라브어의 단어와 문법이 모두 뒤섞여버렸고,
지금도 나의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슬라브어인
체코어, 불가리아어, 크로아티아어는
어느 정도 말하고 쓸 수 있을 만큼
언어감이 복원되는 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린다.
아무튼 그때 배운 걸 그냥
나만의 지적 허영으로만 몇 년간 그냥 방치했다가,
몇 년 전부터 내 언어학 연구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그런 슬라브어 연구에 쓸 자료도 수집하고,
무뎌진 언어능력도 다시 벼리려고,
내 스타일의 플렉스로,
명품 안 사봐서 잘 모르지만,
아마 명품가방 하나 값도 안 나올 비용으로,
방학을 통째로 사용해서
그 언어 사용 지역들에 가서 생활하며,
현지 도서관과 서점에서 연구자료 수집하고,
중고급 수준의 어학연수도 했는데,
그 처음이
2012년 체코 프라하에서의 5-6주였다.
인터넷 검색하여 어학연수 과정 등록하고,
그 과정과 연계된 기숙사 방도 하나 얻어서,
"Lonely Planet 프라하 편"을 하나 사들고
그렇게 무작정 체코로 갔다.
한국 대학원 3학기 체코어 수업에선
거의 문법만 배웠고,
그후 오랫동안
읽거나 쓰는 연습을 못한 상태였는데,
현지 언어 코스에서 체코어 레벨테스트를 보니,
말하기는 A2(초중급), 문법은 B1(중급)이 나왔다.
그리고 5-6주 동안 1주일에 두 번씩 정규 수업 듣고,
수업 없는 요일엔 보충 개인수업도 받았더니,
새 단어도 많이 충전되고,
말하기 실력도 많이 향상되어,
웬만한 건 영어 사용하지 않고
거의 다 체코어로 떠듬떠듬 말했고,
신문기사랑 논문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체코어를 구사하니,
5-6주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움직임의 폭이 커지고 보다 자유로워지며,
거리의 낯선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니,
길을 걸을 때 불안하지 않고,
길에 쓰인 글씨를 다 이해하니,
관광객들이 보통 그냥 지나치는 것들도 보고,
체코를 좀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때 그 처음 해본 그 시도가
여러모로 너무 만족스러워서,
나머지 슬라브어들도 여건이 되는 대로
그렇게 방학을 활용해서 현지에서 리뷰했다.
2013년, 2016년 여름방학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어 공부하고, 폴란드 자료 찾으면서,
폴란드 구석구석을 여행했고,
2014년 겨울방학엔 불가리아 소피아에 머물면서,
불가리아어 공부하고, 자료 찾으면서,
불가리아와 가까운 그리스를 여행했다.
2018년 상반기에는
아예 한 학기 강의를 쉬고 크로아티아에 가서,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크로아티아어를 배우면서,
크로아티아와 주변 국가들을 여행했다.
이 모든 다른 슬라브어도
현지에선 B1-B2(중급-중고급) 수준까지 올랐는데,
한국에 오는 순간
또 여러 슬라브어들이 섞여버려,
한 언어를 말할 때 다른 언어 단어가 대신 떠 올라서,
표현하는 수준은 아주 많이 떨어지지만,
(현지 친구들하고 문자나 이메일 할 땐
혹시 몰라 사전을 찾아 단어를 확인한다.)
그래도 신문이나 논문 이해하는 능력은 유지된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도 인터넷에서 검색한
폴란드어, 체코어, 불가리아어, 크로아티아어 논문이나 기사를 읽고,
그걸 수업이나 내 연구에 활용하는데,
사실 학술연구자인 나한테 필요한 언어 능력은
그거면 충분하다.
아무튼 이 모든 시작이
2012년 체코 프라하부터였다.
2008년 러시아 모스크바 있는 동안
가까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5주 연수한 적 있지만,
두 번째 슬라브어인 폴란드어는
말도 좀 하고 쓰고 이해할 줄도 아는 상태에서,
러시아에서 “가까운” 이웃나라 놀러 간 거였고,
2012년 체코는
체코어 연수와 자료 수집을 주목적으로,
하지만 당시 내 체코어 실력에도 확신 없고,
단기 연수로 그게 향상되리라는 확신은
더더욱 없는 상태로,
그래도 최소한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연구자료는 수집할 수 있을 거니까,
학술연구자에겐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먼 길 떠난 거였다.
그 “거의 다 까먹은” 체코어를
2012년 방학 때 그렇게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 안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누군가는 나이와 상관없이 외국어를 쉽게 배울 수도 있다는 걸 평생 모른 채 살았을 거다.
체코에서 그런 나를 발견하고 자신감을 얻어,
그다음에 다른 슬라브 국가도
1-2달 단기 언어연수만을 위해 떠날
용기와 욕심을 낼 수 있었고,
또 부차적으로
“현지어를 알아들으면서 하는”
좀 더 촘촘한 현지 여행도 구석구석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9-2020년 겨울방학
7년 만에 다시 체코에 가게 되었다.
이제 딱히 더 이상 새 언어를 배우거나
옛 언어를 현지에서 리뷰할 계획이 없었는데,
항공사 마일리지를 쓸 수 있게 되어 떠난 거다.
이제 나는
“그냥 여행만 하는 건 허전한” 사람이 된 탓에,
또 체코어 단기 연수를,
이번에는 느슨하게 일주일에 두 번만 했는데,
7년 동안 한국에서
체코어를 전혀 말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반배정 레벨테스트에서는
문법, 말하기 모두 B2(중고급)가 나왔다.
다 까먹고, 다른 언어가 뒤섞였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기만 한 건 아닌가 보다.
아님 한국 모범생들이 흔히 그렇듯,
그냥 시험만 좀 잘 봤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젠 좀 더 나은 체코어를 구사하면서,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좀 더 넓은 행동반경으로
유럽 중심의 체코 여기저기와
그 동쪽과 남쪽의 이웃 나라들도 돌아다녔고,
그렇게
좀 더 체코를 많이 보고,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무사히 연수와 체류와 여행을 마치고
체코에서 귀국한 2-3주 후,
체코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그 이후 모두 다 아는 바와 같이
전 세계가 팬데믹의 영향 하에 들어가게 되어서
당분간 이런 특별한 방식이든,
아님 보통의 방식이든
국외 여행은 당분간 쉽지 않게 되었다.
정작 나 자신은 소심하게 시작했지만,
남들이 보기엔 지극히 야심만만해 보였던
그 “현지어 공부하며 여행하기”를 그렇게
체코로 시작하고 체코로 일단락 맺었다.
그리고 이 “브런치 매거진"에서는 이제부터
2012년 겨울에 5-6주,
2019-2020년 겨울에 9-10주 동안
체코어를 배우면서 머문,
프라하와 체코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