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이

세뇌와 지배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선한 아이의 생명력

by 산들

*모드 쥘리앵 작가의 책 '완벽한 아이'와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2019)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세기 프랑스 북부 시골에 거대한 저택. 두터운 철책문을 넘어서면 끝없는 정원이 있는 거대한 저택에 네 살짜리 어린 여자아이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 '디디에 선생'은 자신이 34살일 때 6살짜리 광부의 딸, '자닌'을 데리고 와 대학까지 교육을 시키며 본인의 아내로 맞이한다. 디디에 선생은 자신처럼 '선택받고' '인류를 일으켜 세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찌감치 그의 아내를 골랐고, 그녀를 억압하여 감히 자신에게 반항하지 못하게 세뇌시킨다. 그리고 그의 계획대로 자닌은 그의 딸 '모드'를 출산한다. 어린 소녀 모드는 자신을 완벽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 정서적, 육체적 학대를 일삼는 부모 밑에서 18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다.


아이로서 부모에게 기대했을 따스함은커녕 정서적, 육체적 학대가 이어지던 세월이었다. 아이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어줘야 했을 부모는, 모드를 양 떼처럼 흔들리는 군중이 아닌 훌륭한 선각자로 키운다는 망상 아래 외부와 차단된 저택 안에 모드를 가둬놓고 본인들이 믿는 대로 혹독하게 학대한다. 정신력을 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쥐가 들끓는 더러운 지하실에 불을 꺼둔 채 가두고, 강인한 육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맨손으로 정원의 엉겅퀴를 뜯게 만들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며 절벽으로 아이를 떠민다.


도축업자를 저택으로 불러 살아있는 소를 잡을 때는, 부드러운 고기를 얻기 위해 송아지를 죽이기 직전까지 모드가 송아지를 쓰다듬고 달래게 한 후, 갑자기 송아지에게 총을 쏴 도살하기도 했다. 동물을 달래는 데는 어린 여자아이가 제격이라는 어른들의 못된 생각 때문이었다. 도축이 이뤄질 때마다 모드는 자신에게 기대어 쉬다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는 송아지들의 '왜?'냐고 묻는 듯한 마지막 눈을 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아버지는 항상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지켜보고 있다고 모드를 세뇌시켜 반항할 일말의 의지조차 억누르게 한다. 모드는 두려움에 떨며 지내지만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보통 아이였다면 진작에 미쳐버렸을 상황에서 모드를 견디게 한 것은 개, 말, 오리, 비둘기 같은 동물들과 한 줌의 햇살, 바깥의 공기 냄새, 음악 그리고 책이었다. 모드는 자신에게 매몰찬 언어폭력과 신체적 학대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그 폭력을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대물림하지 않는 선한 영혼을 지녔다. 본인은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옴짝달싹 못하면서도 정원 한 구석에 갇혀 있는 개 '린다'가 더 오래 마음껏 뛸 수 있게 해주지 못해 슬퍼하고, 그녀 스스로도 어머니의 따뜻한 포옹을 받아본 적 없었으면서 몸이 약한 비둘기 새끼를 안타까워하며 보살핀다.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모드를 책 속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아버지가 만든 혹독한 학습 시간 사이에도 틈만 나면 몰래 책을 읽었고 상상을 하고 이야기를 써 내렸다. 몰랭 선생과 같은 조력자도 있었다. 모드에게 엄격하게 대할수록 그 선생을 신뢰하게 되는 아버지의 특성을 파악해서, 몰랭 선생은 일부러 아버지가 볼 때 모드를 야단쳐서 아버지의 마음에 들게 된다. 결국 몰랭 선생은 그의 계획대로 모드를 됭케르크로 데려와 음악을 가르치면서 모드의 세계를 저택 밖으로 확장시켜준다.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괴로워하며 익혔던 악기들이지만 몰랭 선생,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모드는 더 없는 기쁨을 맛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들은 용기가 되어 모드는 마침내 평생 그녀를 억눌러 왔던 아버지라는 그늘에서 벗어난다. '그런다고 벗어날 것 같으냐, 넌 날 못 이긴다'며 그녀에게 저주를 퍼붓던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이 책은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초반 린다 에피소드를 읽고 나서 책을 덮었다.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고백한 이 책의 극히 일부만 봤을 뿐인데도 그 잔혹한 부모의 모습에 분노가 훅 치밀어 눈물이 났다. 책을 다시 펴 들기 위해서는 하룻밤의 시간과 따뜻한 밀크티 한 잔이 필요했다. 모드는 강인했다. 그 조그마한 여자아이는 그녀의 여린 영혼을 잠식하려 드는 아버지의 잔혹한 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부모님 시골 텃밭에 종묘상에서 사 온 모종들을 심을 때, 가끔 유난히 덩치가 작고 시들시들한 모종이 따라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 모종도 포기하지 않고, 잘 다져둔 텃밭에 조심스레 심어 모종 주위로 고랑을 파 물을 조심스레 부어준다. 고랑에 물이 고였다 서서히 흙속으로 스며들면서 모종은 물을 더 천천히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며칠의 시골 햇살과 바람을 주고 나면 바스러질 것처럼 작았던 모종에서도 초록빛 싱그러운 생명력이 뿜어져 나온다. 모종도, 작은 아이도 그 생명력은 의외로 억세서 어른의 그것을 뛰어넘는다. '완벽한 아이'에서 묘사된 폭력과 지배는 비단 부모-아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나와 친구의 관계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나도 모드처럼 나의 인간성과 원칙을 나만의 방식으로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책을 덮으면서 묘하게 '호아킨 피닉스' 배우의 영화 '조커'가 떠올랐다.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 조커의 탄생을 그린 그 영화 속에서 '아서'는 약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입양한 엄마와 그녀의 남자 친구로부터 심한 신체적 학대를 당해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터지는 발작 환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살아보고자 애썼던 그에게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었고, 동료는 배신을 했고, 그가 동경했던 TV쇼 진행자는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참다못한 그가 총을 꺼내 든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그에게 환호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타인과의 일체감. 조커는 악당이 되었다. 누군가 어린 아서의 손 한 번 잡아주었다면. 누군가 맞고 있는 아서를 그 상황에서 구해주었다면. 한 번 안아줬었다면. 고담의 악당 조커는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영화를 보며 조커에 대한 공포나 혐오보다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유년기는 그만큼 중요하다. 모든 아이들이 모드 같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 학대당하는 아이는 없는지, 돌아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영하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에서 해당 책의 소개글을 보고, 가장 빨리 읽어보고 싶어 신청했고 감사하게도 책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책들과 사뭇 다른 세계를 겪어볼 수 있게 해 준 김영하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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