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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13. 2024

갓반인과 오타쿠 사이 애니메이션 추천

 작년까지 일본 드라마나 영화 콘텐츠를 가끔 추천하곤 했는데, 최근 1년 새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어, 재미있게 본 작품들을 추천하고 싶어졌다. 사실 그 중심에는 ‘슬램덩크’와 ‘하이큐’가 있으나 이건 애니메이션 판에서 너무나도 메이저. 일반인이 모를 법 하지만 그렇다고 오타쿠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가볍게 볼 수 있을만한 작품들을  추천한다.


(약스포 있으니 주의)



야무진 고양이는 오늘도 우울 (2023년 작)


사진출처 : dekineko-anime.com


 다소 푼수 같지만 상냥한 직장인 ‘사쿠’와 그녀와 동거하는 유난히도 야무진 고양이 ‘유키치’의 이야기를 그린 일상물. 지금은 전편 업로드 되어 있지만 내가 볼 시기에는 완결전이라 왓챠에 매주 월요일 새 에피소드가 업로드 되고 있었기 때문에, 힘든 월요일 퇴근하고 나서 하나씩 꺼내보며 힐링했다.


 유키치는 처음에는 분명 작고 가냘픈 까만 고양이였는데, 이족보행하는 커다란 고양이로 크더니 장 보고 청소 하고 주인 도시락도 싸주고 과음해 들어온 주인 케어까지 해주는 아주 야무진 면모를 보여준다. 거의 엄마이자 아빠이자 집사 같은 느낌. 이쯤 되면 ’나만 고양이 없어‘를 넘어선 격한 상대적 박탈감이 솟아오른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고양이의 습성을 보여주는 순간들이 나오는데 정말 귀엽다.


 주인공인 사쿠는 청소도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 챙기고, 맨날 쫓기듯 출근하고 야근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생활력이 정말 떨어지지만(으이구 이 기지배야 밥 잘 챙겨먹으라고 ㅠ), 마음은 따뜻한 사람인 듯. 한 겨울 거리에서 죽어가는 유키치를 냥줍하는데, 본인은 쓰레기장 같은 곳에서 살고 에너지 드링크로 연명하는 주제에 유키치만큼은 보살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유키치가 주인 뒷바라지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삶의 질이 드라마틱하게 개선된다. 이거야 말로 은혜 갚은 고양이! 판타지인 거 알지만 나도 이런 야무진 고양이를 바라게 된다고, 뿌꾸야 어떻게 좀 안될까.


뿌꾸 : 언니 말 같잖은 소리 그만하고 공이나 던저줘


- 나만 고양이 없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나만 고양이 없어ㅠㅠ



장송의 프리렌 (2023년 작)

사진출처 : anime.eiga.com


 회사 동료로부터 추천받은 작품. 일본에서도 굉장히 인기 있는 만화라고 들었고 마법사 이야기라길래 배틀물인 줄 알았더니 (배틀도 나오긴 하지만) 힐링물이다. 판타지 쪽 애니메이션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던지라, 맛만 볼까 하고 틀었는데, 오프닝 테마곡이 내가 좋아하는 ’요아소비‘의 ’용사‘. 원래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일 줄이야. 좋은데? 하며 보다 보니 끝까지 달리게 되었다.


 주인공 프리렌은 엘프 마법사다. 엘프 프리렌이 드워프 전사 ‘아이젠’, 검사 ‘힘멜’, 성직자 ‘하이터‘와 함께 다니며 마왕을 쓰러뜨리는 업적을 이룬 뒤, 홀로 여행을 떠난다. 50년이 지나 다시 과거의 동료들을 찾아 가는데, 그녀는 천 년을 사는 엘프이기에 50년은 찰나와도 같았지만 그녀의 인간 동료들은 수명이 다해가는 상황. 일행 넷 중 힘멜과 하이터는 인간으로, 작품 초반에 힘멜의 장례식이 나온다. 처음부터 주인공을 죽여서 어쩌자는 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힘멜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프리렌은 자신이 동료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먼 길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행인 마법사 ‘페른’, 전사 ‘슈타르크’, 성직자 ‘자인’을 만나게 되고 다시 함께 싸우게 된다.


 프리렌은 엘프라 그런지 뭔가 무미건조하다. 말투에도 행동에서도 어딘가 달관해 버린 듯한, 버석버석함이  묻어난다. (mbti 검사해 보면 분명 t일 거야..) 천 년을 사는 엘프라 웬만한 일은 새롭지도 감흥이 느껴지지도 않는 듯. 그러나 그녀가 새로운 일행과 함께 하면서 용사 ‘힘멜’을 추억한다든지, 본인의 제자 격인 ‘페른’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든지 조금씩의 생기와 감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데, 아주 대단한 드라마는 없지만,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싸우는 프리렌 일행의 모습, 그리고 프리렌이 모험을 하면서 과거 힘멜 일행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장면들이 감동을 준다. 보통 애니메이션이었다면 하이라이트였을 마왕을 처단하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고, 그 업적을 이룬 이후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참신한 시간선, 그리고 힐링물 분위기 속에서 의외로 힘을 준 멋진 전투씬도 매력적. 참고로 장송의 프리렌에서 ‘장송’은 장송곡 할 때 그 장송이라고 한다. 프리렌은 굉장히 마력이 센데, 보다 보니 프리렌이랑 붙으면 그 싸움터가 상대의 장례식이 된다는 의미인가! 하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틀린 생각은 아닌 듯하다, 무적 프리렌 화이팅!!)


- 프리렌과 페른이 슈타르크 대하는 거 보면 내가 슈타르크 대신 상처받는 듯. 맞는 말이긴 한데, 얘들아, 슈타르크한테 가끔은 좀 다정하게 말해주겠니.


+ ‘용사 힘멜이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요’. 그렇게 정의롭게 살고 싶어 진다. 대단한 일 말고, 소소한 선행이라도.

 

https://youtu.be/QoGM9hCxr4k?si=I4HcXYjbIIRT-LHy

장송의 프리렌 1쿨 오프닝



괴수 8호 (2024년 작)

사진출처 : collabo-cafe.com


 괴수가 나타나 인류를 위협하는 시대가 배경이다. 괴수들을 토벌하는 방위대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히비노 카프카’가 우연히 이상한 괴수를 삼킨 이후, 강력한 괴수로 변신하는 능력이 생긴다. 그가 방위대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것은 어릴 적 소꿉친구였던 ‘아시로 미나‘와 ‘함께 괴수를 전멸시키자’하고 맹세했기 때문. 그랬던 그녀는 커서 방위대 제3 부대 대장이 되었고, 카프카는 번번이 방위대 시험에 떨어져 괴수 전문 청소업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 같은 회사 후배로 들어온 방위대 지망생인 ‘이치카와 레노’로 인해 다시 한번 방위대에 도전하게 된다. 반 인간 반 괴수인 상태로.


 전형적인 스타일을 따르지만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매력적이고, 주인공이 소위 말하는 먼치킨 급 능력을 가졌다는 점, 괴수 때려잡는 카타르시스까지 합쳐져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정의로움과 착한 심성을 가진 주인공, 저는 이런 캐릭터 좋아하지 않는 법을 모릅니다… 중간중간 개그 포인트도 있고, 주인공이 작중 32살로 같은 방위대 동기들에게 아저씨 취급을 받는 설정도 좋았다. 미성년자 주인공이 주변의 압박에 못 이겨 전쟁터로 몰리는 배틀물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나로서는(에반게리온/헌터헌터 보다가 이탈, 귀멸의 칼날/진격의 거인 머리 쥐어뜯고 괴로워하며 봄), 30대의 나이에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싸움터에 뛰어드는 히비노 카프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달까.


 ost를 팝가수가 불렀다는 게 독특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오프닝에 호쾌하게 터지는 j-pop이나 일본 밴드 음악이 상징인데, 괴수 8호는 처음부터 글로벌을 노린 듯 스타일리시한 팝을 골랐더라. 듣기는 좋은데 뭔가 괴수 애니메이션의 특징적인 스타일은 잃은 것 같아 그 부분이 아쉬웠다. 시즌 2를 기다리는 중이다.


- 괴수가 나오는 작품이라 좀 징그러운 느낌이 있다. 처음에 괴수 해체하는 거 보면서 우욱 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오히려 비현실적인 괴수 비주얼에 무감해짐. 그리고 진격의 거인, 주술회전, 귀멸의 칼날에서 이미 조금씩 본듯한 느낌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열혈&바보계 주인공은 응원하고 싶어 진다.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


https://youtu.be/CFjI21M9wZs?si=CQvRxMybxn5r0zM7

괴수 8호 오프닝



약사의 혼잣말 (2023년 작)

사진출처 : anime.eiga.com


 이 작품도 주제가가 좋아서 애니까지 보게 된 케이스. 약사인 아버지로부터 약학을 배워 유곽에서 약사 노릇을 하던 ‘마오마오’가 어느 날 납치되어 후궁에 궁녀로 팔려가게 된다. 그러다 타고난 일머리를 가진 마오가 후궁을 관리하는 고위 환관 ‘진시’에게 발탁되고, 후궁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주요 캐릭터는 마오마오와 진시인데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둘의 관계도 재미있다. 약과 독에 환장하고, 자신의 몸에 약 실험을 해보는 것도 즐기는 괴짜같은 마오마오. 굉장히 머리가 좋고 책임감 있는 성격에, 유곽에서 자란 탓인지 성적인 지식이나 농담에도 능한 것이 반전이었다. 진시는 외모가 아주 뛰어나다는 설정으로 나오는데(작중 남녀 가리지 않고 홀릴 만한 외모라고 마오마오가 감탄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환관인 설정으로 뭔가 비밀이 있는 남자. 마오마오의 특출 난 면모를 단번에 파악한 진시가, 저도 모르게 마오마오에게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지식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일들을 약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결해 나가는 마오마오. 그리고 그녀의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는 과정이 아주 잘 짜여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이것도 알림 해놓고 다음 에피소드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중.


- 황제와 후궁들이 있던 시대 배경이라 가끔 좀 잉? 스러운 장면이 있을 수 있다.


+ 작화가 상당히 미형이라 눈이 즐겁다. 그리고 이 시대 배경의 추리물 귀하다고.


https://youtu.be/ocAndnxRxAQ?si=g4io8EXzEx4nN20W

약사의 혼잣말 1쿨 오프닝



블루록 (2022년 작)

사진출처 : tv.bluelock-pr.com


 스포츠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편이라, 발견하게 된 블루록. 하지만 이 작품은 스포츠 애니의 탈을 쓴 배틀물에 가까운 듯. 공식에서도 ‘배틀 스포츠물’이라고 하는 것 같다.


 축구 포지션 중 스트라이커만 300명을 몰아놓고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서바이벌을 돌리는, 축구판 배틀 로얄 느낌이다. 분명 그라운드에서 공을 차기는 하는데, 갑자기 내 안의 괴물을 소환한다느니 알지 못할 소리를 하고, 좀 각성한 애들은 오오라와 안광이 뿜어져 나온다. 물론 드리블 특화라든지, 트래핑을 잘한다든지, 점프력이 높다는지, 체력이 좋다든지, 패스를 정확히 한다든지 등 현실적인 축구선수들의 강점이 반영된 캐릭터들이 나오긴 하는데. 펼쳐놓고 보면 애들이 축구를 하기는 하는데 초능력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거의 테니스의 왕자 급)


 이기적인 스트라이커를 뽑는다는 명목하에 애들을 모아놓고 평가하고, 등수에 따라 식사의 퀄리티부터 차등을 두는 냉혹한 시스템이다. 여기서 떨어지면 일본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한다는 제한이 있어서, 주인공들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다. (순위가 낮은 애들은 영양 잡힌 식사도 못하는데, 연습하기 위해 잠까지 줄이게 된다고!!) 그런 곳에 갇혀있다보니 애초에 정상적인 애들이 별로 없고, 정상적인 애들도 점점 이상해지는 듯. 약간의 병맛이 느껴지지만, 팀 스포츠물답게 어떻게든 성장과 팀워크의 흔적도 보이기 때문에 끊지 못하고 완주하게 되었다.


- 내 기준에서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헷갈린다. 특히 머리 까맣고 오오라 파란 애들. 아무래도 재탕해봐야 할 듯하다.


+ ‘나, 강림’, ‘나에게 축구는 살인이다’, ‘너희들의 실력, 너무 시시해서 죽고 싶어 졌다.’ 등 주옥같은 (중2병)명대사들이 나온다. 일부는 초월번역되어 더욱 중2병 느낌이 나게 되긴 했지만. 하지만 이런 것에 면역이 충분한, 닳고 닳은 직장인으로서는 ‘어머어머 어떻게 이런말을!ㅋㅋㅋ’ 감탄하면서 볼 수 있는 거예요.



진격! 거인중학교 (2015년 작)


사진출처 : kyojinchu.tv


 올해 3월과 4월, 두 차례 일본 규슈지방 오이타현의 ‘히타’ 지역을 여행했다. 히타가 ‘진격의 거인’ 작가 고향이라고 들었고 여러 가지 오타쿠 스폿이 있다고 해서, 진격거를 보고 가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올 초에 열심히 몰아봤는데, 솔직히 내가 즐기면서 볼 수 있을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잔인하기도 했고, 인류와 거인의 싸움인가 하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민족주의, 이념과 사상 대립 등 철학적인 문제까지 쏟아지면서 머리 쥐어뜯으며 겨우겨우 봤기 때문. 정말 나의 단순한 머리로 감당할 작품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고통을 감내한 덕에 히타 여행은 3배 더 즐거웠다. (리바이 병장님, 사랑합니다..)


 죽은 캐릭터들이 너무 많고, 살아남았어도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서 슬퍼하는 캐릭터들이 많아서 좀 마음 아픈 작품이다(그래서 다시 볼 엄두가 안 남). 그런데 왓챠에서 ‘진격! 거인중학교‘라는 작품을 발견했다. 썸네일의 3등신 캐릭터에서 느껴지듯, 이 작품은 진격거 스핀오프 작품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시리즈다. 진격거의 캐릭터 관계성과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여기는 거인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관이다. 심지어 거인도 중학교를 다니는데 중학교 입구에 거인동, 인간동으로 나뉘어 있는 컨셉.


 물론 여기서도 거인들은 인간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간다.(하지만 적어도 그게 목숨은 아니다) 그리고 에렌은 분개하며 거인을 구축하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미카사는 에렌밖에 모르며, 아르민은 연약하고, 리바이는 청소 광인이다. 원작과 다른 점이라 한다면, 애들이 도시락 메뉴에 목숨을 걸고, 체육대회도 하고, 문화제 하고, 담력체험하고.. 살아있었다면 제 나이대에 어울렸을 법한 것들을 한다는 거. 진격거를 사랑했던 팬들을 위해 바쳐진 발랄한 if 세계관 작품이다. 진격거를 마지막까지 보고 영혼까지 탈곡된 이들을 위해 준비된 순한 맛 개그물.


- ‘아 귀여워’하면서 깔깔 웃으며 봤는데 다 보고 나니, ‘애들이 살아있었다면’, ‘거인 걱정 없이 다들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부모님 도시락 먹으면서 클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더 슬퍼졌다


+ 그렇지만 머리만 큰 진격거 캐릭터들, 너무 귀엽잖아. 다중세계의 에렌, 미카사, 아르민은 이렇게 지냈겠구나 하고 감사하며 봤다. 목숨의 위협 없이 평범한 그 나이대 아이들처럼 클 수 있었다면


https://brunch.co.kr/@saddysb/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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