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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Oct 19. 2021

가족여행(석모도)

가족과 함께 떠난 '펜션' 여행

어머님 댁에서 생일 축하를 받고 다음날은 우리 가족 다 같이 석모도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갑자기 여행 가려니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잠을 며칠째 설쳐서 제정신이 아닌데 춥기까지 하니 약을 먹고 좀 자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제발 잠을 잘 자야 컨디션이 좋아질 텐데 밤새도록 목이타 물 마시고 화장실 들락날락 거리며 쪽잠을 자다 보니 남편도 내가 깰 때마다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은 혼자서 짐을 다 쌌다. 고기 쌈장 같은 요리 재료부터 야무지게 짐을 싸고 나를 기다렸다. 밥할 컨디션이 아닌 나는 아빠가 컵라면을 먹고 남편이 찬밥에 비빔밥을 해 먹는걸 그냥 두었다. 졸려서 하품을 하면서도 뭐에 각성된 듯 잠을 못 자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가족 여행 날이고 내 생일이기도 하여 기분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커피를 연거푸 몇 잔씩 마시고 버텼다.


예전에 인천에서 출발할 때는 가깝다고 느꼈던 석모도가 일산에서 출발할 땐 생각보다 멀었다. 한두 시간 걸렸던 것 같다.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까르를 안고 차 뒷자리에 누워 실려가듯 펜션에 도착했다. 석모도는 참으로 시골이었다. 짐을 풀고 펜션 근처의 닭과 염소에 관심을 보이는 까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외포항과 민머루 해수욕장을 둘러봤는데 우리 까르는 난생처음 밟아보는 바다 모래에 깜짝 놀라서 잔뜩 기가 죽어 벌벌 떨기만 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캠핑족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니 집 떠나 나왔구나 실감이 났다. 남동생 부부가 오기 전까지 컨디션이 좀 나아져야 할 것이라서 얼른 돌아와 짐을 풀고 냉장고 정리도 하고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염소가 무서운 까르. 바다모래가 무서운 우리까르

피곤하기는 남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야간근무를 서고 집에 돌아와 두어 시간 자고 석모도까지 운전해서 왔으니 말이다. 남동생이 잠든 사이에 올케는 내 생일 케이크를 사러 다녀왔다고 한다.


저녁 여섯 시쯤 식구들이 다 모였다. 펜션 주인아주머니께서 숯불을 넣어주셨다. 돼지고기 목살과 삼겹살은 전날 어머님 댁에 갈 때 모래내시장에 들러 공수해왔다. 잘 가는 집이 있는데 고기 질이 좋고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좋다. 숯불에 구워 먹으니 맛이 좋았다. 남동생은 군대 짬밥이 몇 년인지 고기를 참 잘 굽는 놈으로 컸다. 남동생과 같이 이런덴 안 와봐서 처음 보는 모습이라 신기했다. 고기 구울 때 기름을 털면서 구워야 한다는 것도 알고.


"나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새끼들 잘 될까 고민하고 그러고 산다. 자식들 때문에 힘든 집이 얼마나 많은데."


아빠는 술에 취해 말했다. 내 컨디션은 계속 좋지 않았지만 아빠 말만큼은 또렷이 들렸다. 배우자와의 사별은 자식이 부모를 잃은 것보다 더 큰 충격이라는데 아빠는 지금도 행복을 말하고 자식들을 보고 산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며 코끝이 찡했다.


올케가 사 온 케이크는 무척 맛있었다. 삼송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에서 사 온 것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티라미수 케이크이었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 아빠와 남편 남동생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가족들로부터 카드를 써달라고 해서 모아 나에게 주었다. 온 가족이 나에게 행복하기 바란다는 말들을 써주었다. 눈물이 찔끔 났다.


하필이면 펜션의 보일러가 고장 나 펜션은 미친 듯이 추웠다. 잠을 자야겠는데 몸은 힘들지 춥지 잠은 안 오지 모두가 잠든 새벽 늦은 시간까지도 나는 말똥거리는 눈을 끔뻑거리며 닭도 세고 양도 세고 곰도 셌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살금살금 일어나 테라플루를 찬물에 타 먹고 다시 누웠다.


가족 모두가 서로 좀 더 좋아지기를 희망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그 자리에 멈춰있구나 왜 이렇게 나는 다른 가족들보다 오랜 시간 정신을 못 차리지 자책하며 누워있었다. 그러다 아침이 다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애도라는 것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정형화되어있는 것이 아니라서 누구도 내가 사는 지옥에서 언제쯤 빠져나올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이 밝지 못해 자꾸만 몸이 아픈데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그저 믿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아빠는 남은 가족과 아빠 자신을 추스리기 위해 가족모임을 좀 더 자주 만들고 있다.


가족끼리 펜션으로 여행을 떠나온 것은 처음이다. 엄마 아빠랑 같이 여행은 몇 번 다녔는데 남동생 부부랑 같이 여행 온 것도 처음이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좀 더 웃으며 가족여행 겸 생일을 즐기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다 같이 있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마음은 좋았다.


엄마라면 펜션 여행을 좋아했을까? 아마 엄마는 나랑 똑같아서 추워 죽겠다 잠을 못 자겠다 투덜투덜 했을 것 같다.


P.S. 펜션 주인 아주머니가 보일러없이 춥게 죄송하다며 다음번 숙박은 무료로 제공해 주시겠노라 약속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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