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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Jul 13. 2022

응급실 의료진이 불친절해도 이해해 주세요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사람 살리는 일을 행하는 사람들

응급실에서 간호조무사 선생님을 만났다. 탈북하신 분이다. 말투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닮아서 대번에 알아봤다. 무례하게 들릴까 봐 북한 분이냐고 묻지 않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인수인계> 시간을 갖다 보니 그분은 먼저 자신의 신상에 대해 말씀하셨다. 십여 년 전 고생 많이 해서 탈북했고 조무사 일을 한지는 오 년 정도 되었다고. 이제 자리 잡고 산다고. 할머니 잘 챙겨드리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시련을 겪으며 살아온 삶이라 그런지 얼굴에 고생의 흔적이 다글다글 했다. 그러나 투박한 북한 사투리에 담긴 다정함은 이내 경계심 가득하던 내 마음을 녹였다. 할머니에겐 복이었다.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해보다가 지금의 요양원을 직장 삼아 이제야 남한 사람으로 정착하고 산다고 했다. 그만큼 소중한 직장이었기에 책임감도 강하신 것 같았다. 응급차를 부르고 맥박이 30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살뜰히 옷가지를 챙겨 와 내게 건네주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온 분이라 고향이 북한이다. 이를테면 할아버지는 실향민이고 나는 실향민의 자손이다. 조무사 선생님은 내가 살면서 처음 만난 북한이탈주민이었는데 친근하고 따뜻했다.

할머니는 응급실 집중치료실로 옮겨 네다섯 시간 동안 각종 검사와 혈관주사를 맞는 등 처치를 했다. 92세면 노인도 보통 노인이 아니라 작은 충격에도 쇼크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정확히 의학적 용어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뜻 이해하기로는 <고 칼륨 혈중>이라고 했다. 맥박은 26까지 떨어졌고 의식이 왔다 갔다 한다는데 의사는 집중치료실 안에 있고 나는 출입이 통제되어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아빠는 가평에서 차편도 없지 술은 취해 깨지를 않지 답답해하며 내게 계속 전화를 했다.


"네가 고생 좀 해라."


살다 보니 아빠한테 고생했다는 소리를 다 들어보는구나 무더위에 불 앞에서 삼시세끼 차려내도 맛없다 맛있다 타박만 하던 아빠가 웬일이지. 낯설었다. 난생처음 아빠가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가 죽었을 때도 아빠는 태연하게 경찰 조사를 받고 행정처리를 하던 사람이었다. 밤새 잠을 못 자고 괴로워 뒤척이면서도 내게 기대지 않았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하며 기절초풍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까 봐 차분하게 주시하던 사람이었다. 원래부터 감정 변화를 잘 드러내지 않는 데다 야단법석 떨지 않고 조용히 일을 매듭짓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아빠의 울타리가 든든했다. 이 나이 먹도록 무슨 일이 생기면 아빠한테 말하고 보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아빠랑 얘기하고 나면 가슴속에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듯 시원했다. 그런 아빠는 술이 취해 감정이 연약해져 있을 때여서였는지 하나뿐인 혈육(형제자매와 절연했다)이 위독하다는 사실이 끔찍해서였는지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아빠, 거기서(가평) 올라온다고 난리 치다 사고 나지 말고 있어. 내가 당장 가볼게. 내가 어린 애인가. 가서 의사선생님 만나보고 검사하라는 거 하고 상태 계속 확인해서 알려줄 테니까 그냥 있어요."


"유사시에 바로 택시 타고 올라간다. 상태 보고 연락바람."


응급실 집중치료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기이익 기계 옮기는 소리와 다급한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저게 지금 할머니 상황이라 그런 건지 다른 사람 상황인지 무척 궁금했다. 집중치료실 의사를 만나려면 대기실 앞의 시큐리티가 불러주어야 했는데 호출한 지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대기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중년의 여자는 비통한 표정으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한 여학생은 곡을 하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점심부터 먹은 것 없이 와 있던 나는 배가 너무 고팠다. 구석에서 초코파이를 씹어먹었다. 그러는 사이 피투성이의 남자가 실려 들어왔다.


엄마가 죽은 날 장례식장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고등학생들이 떠올랐다. 만개한 벚꽃 속에서 까만 상복을 입고 오열하는 내 옆을 거리낌 없이 지나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모습이 할머니가 위독한 중에도 초코파이를 씹어먹는 나와 오버랩되며 묘한 기분이 되었다.


의사가 나왔다. ○○○씨 보호자분, 하고 외치기에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뭔가 주절주절 계속 말을 했다. 가뜩이나 긴장했는데 의학적 용어가 계속 쏟아져 나오니 열이 받았다.


"선생님 좀 천천히 말씀해주세요. 제가 받아쓸 테니까요. 응급실도 처음 와보고 환자 병력도 잘 몰라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이번엔 의사가 좀 화가 났는지 씰룩 한 표정을 지었다. 좀 전에 했던 얘기를 반복해서 읊조렸다. 어조 없이 속사포처럼 내뱉는 말 끝에 물음표가 있었다. 대충 무슨무슨 증상이라 #%@& 처치를 해야 하는데 노인이라 혈관이 잡히지가 않는다. 목을 뚫어서 관을 삽입한 뒤에 처치를 해야 하는데 #&@ 부작용으로 쇼크가 올 수 있다. 어쩌시겠냐. 결정을 하라는 것이다. 동의서에 당장 서명을 하라고 한다.


"잠시만요."


나는 아빠에게 결정을 받아야 했다. 의사는 전화기를 꺼내 드는 나를 보자마자 바람같이 사라졌다. 내가 보호자라고 와있으면서 말귀도 못 알아듣고 허우적거리니 무척 답답한 것 같았다.


"아빠, 이러저러해서 관을 삽입하고 이러저러한다는데, 동의서를 쓰래. 쇼크로 죽을 수도 있대. 근데 다른 방법이 없대. 어떻게 해?"


대낮부터 가평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물놀이하고 취기가 잔뜩 올라있던 아빠는 횡설수설했다. 딸의 두서없는 얘기를 듣고 사람 목숨이 달린 결정을 내려야 하니 미칠 노릇이었던 것 같다. 목소리가 계속 높아졌다. 그러다 내 불완전한 설명이 못 미더워 결국 의사를 바꿔보라고 했다. 그러나 의사는 호출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 그 방법밖에는 없대? 그러면 그렇게 해달라고 해."


보호자 이름에 내 이름을 쓰고 다시 호출을 했다. 동의서 서명했으니 가지고 가시라고 전달해 달라고 했다. 비쩍 마른 간호사가 종종걸음으로 나와 동의서를 홱 낚아채갔다. 원래 병원이라는 곳이 이렇게 불친절한 것인지 내 어리버리함을 얕잡아보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의료진은 전문지식을 보유한 사람들이고 나는 문외한이라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것들을 따르는 수밖에. 이 상황이 갑갑했다. 기분이 나빠도 따질 수 없었다. 의사나 간호사가 기분 상한다는 이유로 할머니를 방치할까 봐.


세 시간쯤 흘렀을까. 할머니 담당 의사 선생님이 나왔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의식이 있다 없다 하셨지만 지금은 안정화된 것 같으니 한 시름 놓으시라며. 맥박은 아직도 보통 사람만큼 돌아오지 않았지만 위급한 단계는 넘겼다고.


"그러면, 이제 퇴원하고 요양원으로 가도 되나요?"


내 또래로 보이는 의사.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나를 보며 웃는다. 좀 전까지 그의 불친절함을 곱씹으며 분노했었는데 괜찮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불쾌감이 사라졌다. 의사를 따라 나도 웃었다. 그제야 그의 피곤에 절어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못생긴 까만 얼굴. 한시름 놓고 나니 그런 것들이 보였다. 아까도 봤는데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옆에 있는 여학생은 여전히 오열하며 쓰러져있었다. 비통한 표정의 아주머니 역시 흑빛의 얼굴로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그 밖에도 몇몇의 사람들이 슬픔과 흥분 상태에 빠져 울거나 화내고 있거나. 전화기를 들고 끊임없이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이도 있었다.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이 목전에 와있음을 알리며. 그들 중 유일하게 구원받은 나. 할머니가 살아서 다행인데 그 와중에 불쑥 떠오르는 엄마 생각. 그들의 절박함 속에서 나는 과거의 나를 보았다.


"엄마가 죽은 것 같다. 119에 실려갔다는데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 확인이 안 된다."


아빠에게 전화를 받은 그날. <죽었다>가 아니라 <죽은 것 같다>는 말에 희망을 걸고 나는 일산 소재 모든 대학병원에 전화를 했었다. 응급실에서는 통상 환자의 신원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기계적인 응대에 남일이라고 그러시면 안 되죠 하며 꽥꽥 소리를 질렀다.


"아니, 제가 지금 엄마가 죽은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고요, 어느 병원인지 확인이 안 되고요, 환자 이름 알려달라는 게 아니라요, 혹시 한두 시간 전에 추락했다고 119에 실려온 여자 없었는지 그것만 알려달라고요!!!!!!"


"....... 이미 사망한 상태로 오신 여자분 한분 계셨는데 저희 병원에 베드가 없어서 다른 병원 가셨어요."


"어디로 가셨는지는 들은 거 없으세요?"


"저희는 몰라요. 지금 응급환자 들어와서 끊을게요."


지금 근무하는 저 간호사였을지도 모를 그 여자. 정신이 나간 내게 차갑게 답하던 응급실 간호사. 그때 그 간호사에게는 죽어버린 엄마보다 살아있는 누군가가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죽은 시각에 누군가는 현대의학의 힘으로 살아났길 바라며. 응급실 의료진의 불친절함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 이길 바라며.


생명은 유한하다. 죽음 자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어린애들 조차도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불공평한 부분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미련 없이 늙어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엄마처럼 말도 없이 돌연사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경우든 죽음과 가장 밀접한 거리에 머무는 사람은 의료진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이미 죽었으니 의술이든 마술이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명줄은 분명 의사가 쥐고 있었고 유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기실을 지키는 것뿐이었지만 그는 뭐라도 할 능력이 있었다. 아빠가 사랑하는 아빠의 어머니를 살려냈으니 불친절해도 되고 못생겨도 된다.


"아빠, 할머니 의식 돌아왔어. 지금 링거 남은 거 맞고 있어. 월요일에 투석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대. 걱정 말고 내일 천천히 올라와."


아빠는 몇 시간 사이에 술이 싹 깼다. 내 전화를 기다리며 얼마나 무서웠을까.


"알았다."


한마디. 안도가 담긴 짧고 굵은 말.


할머니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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