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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디 Dec 05. 2024

08. 항암과 음식 스트레스

음식과의 전쟁이 시작되다

먹는 것과 관련해 세상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과 먹기 위해 사는 사람... 한마디로 음식을 먹으며 큰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과 꼭 그렇지만은 않은 사람이 있다. 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큰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만큼 음식이 중요하고, 먹고 싶은 음식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조만간 그것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건 꼭 아빠의 유전자를 닮았다. 아빠가 돼지 족발을 삶아 발골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족발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군침이 돈다. 감자탕도 잘 끓이신다. 감자탕의 돼지뼈를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어릴 때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도 감자탕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주말엔 가끔 "짜장면 먹을 사람?~~" 하시며 국수를 삶아 짜장면을 만들어 주셨는데 중국집에서 파는 짜장면이랑 맛이 비슷했다. 그 비결이 아빠가 친척이 하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드시고 짜장 소스를 얻어와 본인이 만든 짜장소스와 섞어서 주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아빠도 나도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이런 내가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니 먹는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다. 음식과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난 생각보다 내가 음식과 관련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암 진단을 받고 나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00가 암 환자에게 좋대" "00는 암 환자들이 먹으면 안 된대" 하는 말이다. 암 환자가 된 순간 이제부터 나에게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모든 질병이 식습관에서 기인하고 특히 암환자들은 식습관에 따라 암의 재발률이 달라진다는 것을 수많은 의사, 약사, 암을 정복한 사람들이 강조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헷갈릴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먹어도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먹으면 안 된다고 하니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은 나만의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음식을 먹을지 안 먹을지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과 관련해 나에게 두 가지 숙제가 주어졌다.

음식에 대한 나만의 기준과 원칙을 정하기! 그리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 재료로 최대한 내 입맛에 맞는 레시피 찾기! 이 두 가지 숙제를 하지 않으면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가 앞으로 더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거나 혼란을 느끼게 될 것 같았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릴 땐 부모에 의해, 믿고 따를만한 주변의 어른들에 의해 내 선택과 결정이 좌지우지되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남들의 말에 휘둘리며 사는 나이가 아니다. 사람은 다 다르고 다른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 나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는 문제가 나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내 상황과 환경에 따른 나만의 기준과 원칙이 없으면 쉽게 휘둘리거나 낭패를 보게 될 수도 있다.


한 가지만 예로 들면, 암 환자는 백미밥이 아니라 현미밥 혹은 잡곡밥을 먹으라고 한다. 이유는 혈당을 빠르게 올리게 되면 암이 좋아하는 포도당을 제공하여 암을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 환자의 식단은 당뇨환자의 식단과 같게 유지하라고 한다.

또한 과일야채주스를 만들어 먹는 것 역시 많은 암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루틴 중 하나다. 양배추, 사과, 당근 등등의 여러 야채와 과일을 갈아서 매일 마신다.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계속 설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항암제의 부작용 중 하나가 변비 혹은 설사다. 나 같은 경우 항암을 하고 돌아오면 이틀은 변비가 오고 그 뒤로는 설사가 시작된다. 음식이 들어가기만 하면 주룩주룩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계속 현미밥을 먹고 과일야채주스를 마셔야 할까? 말하지 않아도 정답은 뻔하다. 설사를 계속하는 나에게는 설사를 멈추게 하는 식단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룩주룩 설사를 하면서도 암환자는 백미 먹으면 안 돼, 과일야채주스는 꼭 먹어야 돼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면 오히려 그런 행동이 나에게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봐도 몸에 안 좋을 것 같은 음식... 가공육, 인스턴트, 튀긴 음식과 탄 음식, 액당 과당음료와 같은 것들은 먹지 말아야 할 것으로 명확하게 구분이 되지만 밀가루, 커피, 붉은고기와 같은 것들은 먹지 마라 먹어도 된다 말도 많고 애매하다. 그래서 난 음식의 기준을 이렇게 정했다. 1. 먹으면 좋은 음식 (자연식) 2. 제한해야 할 음식=가끔 섭취하고 소량만 먹어야 하는 음식 3. 먹지 말아야 할 음식. 항상 2번이 문제가 되는데 사람마다 말이 다 달라서 이건 내가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다. 난 밀가루 음식 중 빵은 안 먹어도 상관없지만 면종류는 너무너무 먹고 싶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면요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가루는 2번으로 분류하고 먹을 때 아주 소량만 먹기로 했다. 밀가루 자체가 발암물질은 아니지만 빠르게 혈당을 올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많이 자주 먹는 것이 문제) 가끔씩 소량은 먹어도 된다고 판단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사실 평소 그렇게 자주 먹지는 않았기에 안 먹어도 상관은 없지만 먹지 말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나 큰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2번으로 분류했다. (2번으로 분류했으나 자주 먹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앞으로 음식에 대해 더 공부를 하면서 리스트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라따뚜이"가 있다. 가지, 애호박, 토마토, 양파, 파프리카가 들어가는데 예전에는 시중에 파는 스파게티 토마토소스를 썼다면 이제는 내가 토마토소스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예전엔 치즈를 넣었는데 치즈가 유방암 환자에게는 좋지 않다고 해서 넣지 않고 조리를 했더니 확실히 맛이 떨어졌다. 치즈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식품인데 이걸 못 먹으니 너무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치즈도 2번으로 분류했다. 한마디로 2번으로 분류한 식품은 "전적으로 내 기준"이다. 안 먹으면 좋겠지만 아예 내 인생에서 완벽하게 제한해 버리면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 같아서 2번으로 넣은 거다. 만약 안 먹어도 상관없고 크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3번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항암을 하고 있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항암이 끝나고 관리 단계에 들어간 경우는 암의 재발과 전이 방지를 위해 식단 관리를 신경 써서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항암 중에는... 특히나 속이 안 좋고 입맛이 떨어지고 잘 못 먹고 있을 땐 그냥 먹고 싶은 거 먹게 허용하자. 이미 항암제가 들어가 암을 죽이고 있고 열일하고 있으니 너무 못 먹고 있을 땐 먹히는 거라도 최대한 먹게 해 주고, 또 당기는 음식이 생기면 (날마다 먹는 게 아니라면) 먹게 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항암 6차까지 모두 끝난 상태) 지난 항암시기를 되돌아보면 난 정말 음식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아마도 평소 먹는 걸 좋아하고, 잘 먹고,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도 풀고 행복감을 느꼈던 사람이라 더 그런 것 같다.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면 또 그렇게까지 음식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난 그랬다. 음식이 너무나 힘들었다. 살면서 먹방을 이렇게 많이 시청한건 처음이다.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어 항암을 하고 와서 속이 메슥거리고 힘들면 먹방을 미친 듯이 봤다.


11월 12일 마지막 항암을 하고 엊그제 검사를 하고 왔다. 항암 성적표라고 해야 할까? 긴장이 되었다. 고생한 만큼 결과가 좋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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