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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나는 인프P

나의 흑역사를 기록하다

by 세이디

" 네가 P라고? J 아니고? "

내 MBTI를 들은 주변인들의 반응이다.

" J처럼 보여? 하하 그럼 성공했네. 난 J 가 되고 싶은 P라서... "

그렇다. 난 체계적, 계획적, 조직적인 것과 정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이다.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일을 미루고 미루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행동한다. 계획은 새해 첫날에만 세우는 것이 계획이고, 책도 끝까지 읽지를 못한다. 호기심은 많아서 이것저것 찔러보고 건드려보고 시작은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J라고 착각할 만큼 장족의 발전을 했지만 여전히 MBTI 검사를 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한결같이 난 P다. 이 말은 즉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내 원래의 성향으로 쉽게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 흑역사 1

초등 저학년 시절 엄마가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시면 그때서야 겨우 책을 읽었다. 책과 친하지 않았다. 나의 특이점이 하나 있었는데, 보통의 아이들은 책을 읽으라고 하면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골라서 읽는다. 하지만 나는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20권 정도 한꺼번에 꺼내 옆에 쌓아 두었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책 한 권을 진득하게 읽기가 어려워 금방 싫증이 나니 다른 책으로 바꿔 읽어야 하는데 왔다 갔다 하기 귀찮아 책을 몽땅 빼서 옆에 쌓아두고 몇 페이지 읽다가 책을 바꾸고, 또 바꾸고 했던 것 같다. 난 책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책의 그림에 더 관심이 있었기에 사실 책에 있는 그림들만 골라서 보고 글자는 몇 자 읽지 않았다.

책을 20권씩 고르느라 정신 에너지 소모... 책을 나르느라 체력 소모... 그 많은 책을 뒤적이다 다시 정리하는데 지쳐버린 나는 항상 피곤해 잠이 들었다.


# 흑역사 2

동생과 나는 학년이 올라가자 학습지를 시작하게 되었다. 학습지 선생님이 오는 날이면 밀린 숙제를 하느라 초비상이다. 안 밀려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내 기억 속엔 몰아치기 했던 기억들만 남아있다.

엄마는 미용기술을 배우러 학원에 다니시느라 집에 계시지 않았고, 난 엄마와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 내가 여기에 분명히 놔뒀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어요. " 밀린 학습지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 때문에 난 한 번씩 학습지를 분실했다는 명목으로 위기를 잘 넘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의 모든 거짓말은 이사를 가는 날 들통났다. 냉장고를 옮기자 냉장고 뒤편에서 그동안 내가 냉장고 아래로 슬라이딩해 놨던 학습지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 글을 쓰면서도 참... 부끄럽다 )


# 흑역사 3

중학교 시절 시험을 보는 날이면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 하나 있다.

" 나 어떡해... 시험공부 하나도 안 했어. 이번 시험 망할 것 같아. 시험범위까지 못 끝냈어 "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와서 안 한 것처럼 밑밥을 깐다. 그리고 나중에 성적이 공개되면 성적이 올랐다.

하지만 난 거짓말이 아니었다. 진짜로 공부를 안 했다. 난 왜 시험기간만 되면 다른 것이 하고 싶을까? 갑자기 방 청소가 하고 싶어지고, 엄마 심부름이 하고 싶어지고, 친구한테 편지를 쓰고 싶다. 아니 그냥 공부가 하기 싫었던 거다.


어린 시절 기르지 못했던 집념, 끈기, 노력과 같은 특성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내 삶에 영향을 주었고 이런 나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고 내가 깨달은 건 " 노력도 노력을 해본 사람만이 노력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 노력을 연습하는 것 "이었다.

이전 글에서 변화의 시작은 "간절함"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나? 그렇다. 내가 노력을 연습할 수 있게 해 준 마음의 동력이 바로 간절함이었다. 사람은 단순히 머리로는 움직여지지 않는다. 내 이성과 지성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잘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마음의 동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이를 동기부여라고 할 수도 있겠고, 뚜렷한 목표의식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내 마음의 동력... 강한 동기부여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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