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die Nov 09. 2023

엿이나 드세요. 세상아!

엿은 어떤 사람이 먹느냐에 따라 씁쓸하기도, 달기도 하다. 인생처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민한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

집안에서 나는 시큼, 퀴퀴한 냄새부터, 아빠 재킷에서 나는 꼬릿꼬릿한 냄새. 친오빠 운동복에 보이지 않는 정말 미세한 구멍까지. 나의 남다른 예민함은 어렸을 적 꽤나 어른들한테 혼이 나기 좋은 건덕지였다.


백화점 근처에서 20여 년 동안 수선집을 하고 있는 우리 아빠. 아빠는  매주 화요일마다 휴무였는데 내가 어렸을 적부터 아빠는 3남매 중 막내인 나를 유독 이뻐라 했고, 아빠는 화요일마다 항상 나를 데리고 중앙시장에 갔었다. 그때마다 아빠는 엿장사꾼이 보이면 하나에 약 4000원 정도 하는 엿뭉텅이를 구매한 후 집 가는 버스에서 엿 하나를 꺼내어 내게 먹어보라곤 했었다.


그 당시 내가 기대했던 엿의 맛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 이였지만 그때 내가 먹었던 엿의 맛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씁쓸하고 텁텁했다.

불평불만 가득했던 나는 엿을 한입 베어 물곤 아빠에게, '우웩! 엿이 왜 이렇게 써! 안 먹을래!' 라며  내가 들고 있던 엿을 아빠에게 줬다.


아빠는 내가 먹던 엿을 한 입 베어 물더니 '쓰긴 뭐가 써. 달기만 하구먼' 라며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봉투에 담긴 엿을 다 먹었다.


아빠와 나는 분명히 같은 엿을 먹었는데 왜 우리는 서로 다른 맛이 느껴진 걸까? 그것은 어쩌면 아빠와 내가 세상을 다르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나는 미국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오페어를 준비하던 중 비상금이나 마련할 겸 친구의 소개로 일용직 야간 근무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근무지는 내가 사는 지역이랑 약 1시간 반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다행히도 회사 측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해 준다고 했다. 나는 출근을 위해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지만 10분이 넘게 버스는 오지 않았고, 회사에 전화를 해보니 버스 노선에 갑자기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택시를 타고 오면 회사 측에서 택시비를 줄 거라고 했다.


나는 비가 와서 택시까지 타고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이왕 나온 거 집에 다시 가는 것도 거리가 있었기에 나는 그냥 택시를 타고 출근을 했다.


나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택시 영수증을 보여주고 관리자 분께서는 내게 곧 계좌로 돈이 입금이 될 거라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는 약 8시간 정도 근무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고, 녹초가 된 나는 버스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휴대폰에는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셔틀버스 기사님이었고 내가 '그' 택시를 타고 온 본인이 맞는지 확인할 겸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나는 기사님께 '맞는데, 무슨 일 이시죠?'라고 여쭈었고, 기사님은 내가 택시를 타고 온 것이 화가 나셨는지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왜 택시를 탔냐며, 분명 아까 버스에서 타라고 소리쳤는데 왜 안 탔냐고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도 황당했다. 분명 아까 회사에서는 잘 해결된 것처럼 말씀해 주셨는데 말이다.


나는 순간 황당하면서도 화가 났지만 그래도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히 기사님께 상황을 설명하며 지금은 전화하기가 그러니 내려서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과거 나는 이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다 다했었고 흥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문제해결에 있어서 큰 곤란을 겪은 적이 많았었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 된 이후 나의 안 좋은 습관들을 하나씩 고쳐나가기 위해 나의 감정들을 매일 체크해 가며 현실을 마주하려고 노력했고, 만일 내가 이번에 이성을 잃어버린다면 지난 시간 동안 내가 노력해 온 것들이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것이었기에 나는 어떻게 서든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버티고 또 버텼다.


나는 버스를 하차한  후,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차피 기사님한테 전화를 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았고, 나의 목적은 못 받은 '돈'을 되돌려 받는 것이었기에, 차라리 회사끼리 해결하도록 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집에 도착해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잠을 잤고, 약 3시간 뒤 나는 잠에서 일어나 회사 측에 상황설명과 함께 현재 나에게 처한 문제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다행히도 회사 측에서는 버스노선에 문제가 있었다며 정말 죄송하다며 택시비를 바로 입금해 주셨고,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상황을 잘 마무리했다. 


나는 이 황당했던 경험을 겪은 후 한 가지 질문이 들었다.


'과거의 나였더라면 이번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었을까?'


과거의 나였더라면 아마도 내가 아빠와 엿을 먹으며 아빠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나의 인생은 너무나도 씁쓸하고 불행하다고. 왜 나만 인생의 단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며 한탄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


전체적인 나의 인생을 보았을 때 아직 내가 겪어야 할 일들은 너무나도 많고 이번 일은 어쩌면 나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발톱의 때 정도의 일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빠가 느꼈던 엿의 단맛을 조금씩 느끼는 중이다. 이번 일은 내게 있어서 나의 문제해결 능력을 테스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고,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과거에는 보지 못한 또 다른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살다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생이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엿 같을 때가 있다. 특히나 뭐 하나 예측할 수 없는 인간과 잘못 꼬여버린다면 그것은 그냥 말대로 생지옥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때 내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자칫 우울이라는 늪에 빠져버린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일을 겪고 또 겪으며 인생의 ‘쓴’ 맛만 느끼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내게 전화를 건 기사님도 지금 생지옥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 책임감에 대해 너무 목숨 걸 필요는 없다. 적당한 책임감을 가지되 나 50, 그리고 세상 50이라고 생각해야 우리는 그 부담감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우리에게 원치 않는 상황이 일어났을 때에는 나 자신이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을 마주하고, 느끼고, 기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나는 여기서 벗어날 거야. 내가 원하는 인생은 단맛이니깐’이라는 생각을 하며 인생을 ‘자신’에게 초점을 둔다면 삶의 이치대로 우리는 그 상황에서 천천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


세상이 너무 엿같다고 느껴진다면, 시원하게 밖에서든 방에서든 '이 엿같은 세상아!'라고 크게 외쳐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내가 원하는 단맛을 느낄 수 있도록 나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 쪽으로 움직여보자.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속 같은 인생을 사는 것보단 훨씬 좋은 것이다.



오늘의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