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바다에서는 그 누구도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난 이따금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제목과의 공통점 말고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책을 찾아 읽는다. 예를 들어, 일본 밴드 요루시카의 <사상범>이라는 음악을 듣고 이후 곡의 제목이기도 한 사상범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물론 음악이 담고 있는 분위기와 소설과의 공통점도 있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어본다는 식이다. 저번달 말에 읽었던 《노인과 바다》도 그런 경우였다.
독서 후에 쓰는 감상문인데도 음악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낯설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보겠다. 내게 《노인과 바다》를 읽혔던 노래는 예시로 들기도 했던 밴드 요루시카의 동명의 음악이었다. 청량하면서도 마음 한 편 어딘가가 썰렁한 듯 비어있는 듯, 그러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먼바다로 그저 체력이 다 할 때까지 나가는 이미지를 음악으로 옮긴듯한 가사와 보컬의 멜로디가 너무 좋았다. 얼마나 좋았냐면 하루 종일 <노인과 바다>를 나무위키에 검색하거나 요루시카 팬 커뮤니티에서 막 찾아본 뒤 하염없이 구글링 하곤 그랬는데, 그때 이 노래가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막연하게 음악과 비슷한 느낌이겠지 하며 장바구니에 담았었다. 그러고 시간이 흐르자 장바구니에 넣어놨다던 사실도 까먹고 지내다가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받아 어떤 책을 구매할까 고민할 때 문득 떠올라 바로 주문했던 것이 벌써 세 달이 지났다. 그걸 11월에 겨우겨우 다 읽어내었으니 참 이 모든 여정의 궤적이 너무나도 길었구나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노인과 바다》는 오랜만에 깊게 빠져들어 책과 한 몸이 되어 읽었던 인상 깊은 소설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사실적이면서 객관을 견지하는 듯한 묘사 덕분에 더 생동감 넘치고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이 쉬움과 동시에 이미지 또한 수준급으로 선명하도록 하는 필체가 매력적이었다. 스토리 자체만 두고 보아도 생각 외로 단순했던 소설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제목을 두고 보아도 쉬이 유추할 수 있듯이 소설 분량의 대부분은 노인이 물고기를 낚으려 꽤 먼바다로 나가 겪은 일체의 모든 일들을 그려낸 것이 차지하고 있다. 등장인물이라고 해봤자 노인과 어린 시절 노인과 함께 하며 낚시를 배웠던 한 소년, 그리고 인물이라고 한다면 인물이라고 쳐줄 수도 있는 등장동물인 어떤 물고기가 전부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헤밍웨이 특유의 필체에서 오는 특수성과 함께 헤밍웨이가 작품 전체를 담당한다고 해도 무방한 노인과 바다와 물고기라는 세 요소를 통해 보여주는 인간 찬가와 자연관에서 오는 매력 덕분에 단순한 구성이 오히려 몰입감과 작품성을 배가시키는 시너지를 내었다고 느껴진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특히 노인(산티아고)이라는 인물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인간을 향한 찬사는 이 소설의 상징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은 운이 다 한 늙다리 낚시꾼이라며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젊을 땐 마을 안에서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될 만큼 전설의 낚시꾼이었던 산티아고. 그에겐 여전히 그 시절의 자신감과 용기가 남아있다. 채비만 잘하면 아직도 건장하게 원양을 향해 노를 젓고 어떠한 시련이 닥쳐온다 해도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파멸을 맞이할 때까지 이겨내려는 움직임을 계속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그를 지켜보면 그 어떤 영웅도 산티아고 옆에서는 작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이 시대에 테토남과 같은 산티아고에게도 주변 어떤 사람에게도 나타나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약한 면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홀로 망망대해에 있을 때 자신의 옆에 소년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야속한 회탄을 한다던가, 추억으로 남은 과거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했던 때가 모종의 결핍으로 작용한다던가 하는 모습들 말이다.
또, 낚시에 임할 때 먹이사슬에 속해있는 인간의 입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물고기를 죽여야만 한다는 잔혹할 수밖에 없는 생각도 가지고 있지만, 노인의 상대인 물고기를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보며 경외하기도 존중하기도 하는 모습도 보이는 등 입체적인 인물임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결국 산티아고의 이야기는 단순히 범접하기 어려운 영웅적인 신화라기보다 고령의 나이로 평판이 바랬음에도 여전히 낚시를 잘하는 옆집 할아버지의 비범한 무용담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정말이지 책이 안 잡히고 눈에 안 읽히던 지난달에도 책을 펼치는 순간 손에 땀을 쥐며 읽었었고 노인이 바다에서 닥쳐온 시련을 어떻게 대응할지 또는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궁금해하며 읽었었다. 덧붙여 오히려 노인이 바다와 씨름하고 시간을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며 고민 많았던 지난날들을 위로받은 기분도 들었던 듯싶다. 바다를 자신 있게 헤쳐나가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도, 노인의 고군분투를 지켜보고 싶은 것도, 자연 속에 녹아든 노인과 대화하고 싶은 것도 전부 가능한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소설이 명작인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