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일 키운 열무, 결국 너무 짜졌다

열무 수확시기

by 농부아내


열무는 텃밭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작물 중 하나다. 밭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아 짧은 시간 안에 키우는 재미, 수확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봄 재배 기준으로는 기온이 안정되는 시기부터 파종이 가능하며, 보통 파종 후 30일에서 40일 사이면 수확할 수 있다.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조직이 질겨지고 특유의 풋내도 강해지기 때문에, 눈으로 봤을 때 잎이 충분히 커졌다면 망설이지 않고 뽑아주는 편이 낫다.


2026년 봄 열무 재배일지
- 3월 12일 파종
- 4월 1일 솎음
- 4월 22일 수확 (파종 후 42일째)




매년 꾸리던 텃밭의 위치를 하우스 옆으로 옮겼다. 물을 머금는 진흙 같은 땅이라 비가 오고 나니 그대로 굳어 돌처럼 단단해졌다. 이 흙에서 과연 잘 자라줄까, 시작부터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무리하지 않아도 자라줄 작물들이었다. 열무는 그중에서도 가장 믿음직한 선택이었다.


씨앗을 들고 밭에 서면, 사람 마음이 갈대로 변한다.

파종하기 전에는 이번에는 적당히만 심자고 다짐하지만, 막상 씨앗을 손에 쥐면 생각이 바뀐다. 이왕이면 조금 더 심어 김치도 넉넉하게 담고 싶다는 마음이 스며들고, 그렇게 손끝에서 떨어진 씨앗은 어느새 처음보다 훨씬 많아진다. 흙이 단단하게 굳어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비를 맞고 돌처럼 뭉쳐버린 흙을 제대로 부수지 못한 채 씨앗을 심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싹이 나지 않을까봐 한 구멍에 여러 개의 씨앗을 넣었다.


매일 물을 주며 지켜본 지 열흘쯤 되었을 때, 단단한 흙 틈 사이로 기특하게도 작은 잎이 고개를 내밀었다. 며칠 지나자 대부분의 구멍에서 연둣빛이 올라왔다.


솎음 후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불안이 불러온 과한 파종으로 솎음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호박 하우스 일이 한창 바쁠 때라, 밭에 나오는 시간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열무들은 더 촘촘하게 자라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장갑을 끼고 밭에 쪼그려 앉았다.


하나를 남기기 위해 여러 개를 뽑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남겨둘 한 포기의 뿌리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잡아당겼다. 그렇게 한 구멍, 또 한 구멍, 반복하다보니 한숨이 나온다. 다음엔 진짜 적당히 심자. 하지만 그 다짐이 다음 파종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4월 22일


솎음 이후 몇 차례의 비를 맞고 열무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는다. 남겨진 열무가 힘을 받듯 쑥쑥 자라난다. 어느 순간 멀칭 비닐 위가 초록으로 덩어리를 이룬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솎음 할 때의 한숨은 잊혀진다.


'이 맛에 키우는 거지'


이른 시기에 파종한 덕도 있었다. 벌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구멍이 숭숭 뚫린 잎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했다.


수확 시기를 가늠하는 건 늘 비슷하다. 파종 후 35일 정도 되는 날짜를 달력에 미리 적어두고 그 즈음 열무의 상태를 살핀 뒤 수확 시기를 결정한다. 올해는 4월 15일이 수확 예정일이었다. 잎이 충분히 커졌고 ‘이제 뽑아야 한다’는 신호를 열무가 열심히 내게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하우스 일이 바빠 15일에는 수확을 못했다.


겨우 시간을 내어 텃밭을 둘러보니 자리가 비좁아 열무들이 서로 부딪히듯 자라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꽃대가 올라오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는 미룰 수 없었다.



4월 22일 아침, 대야와 칼을 챙겨들고 텃밭으로 갔다. 하나를 뽑아보니 줄기가 단단해져 살짝 부러지듯 뽑혔다. 이른 아침의 기온 때문인지 아니면 수확 시기를 조금 넘겨서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이름처럼 제법 무가 달려 있다.


수확한 열무는 바로 손질해 씻고, 소금을 뿌렸다. 작년에는 레시피를 찾아가며 물김치를 담았지만, 이번에는 그럴 틈이 없었다. 대신 두 번째로 수확한 래디시를 함께 넣어 김치를 담았다. 이것저것 고민할 시간 없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한 것이다.


느므 짜다;;


그런데 일이 바빠 소금에 오랜 시간 절여졌다. 부랴부랴 씻어서 양념을 치댔다. 완성된 김치는 예상보다 짰다. 아삭함과 향은 살아 있었지만, 식탁 위에서 손이 자주 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양이 많지 않아 금방 먹어치울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열무를 키우면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불안해서 많이 심고, 솎으면서 후회하고, 자라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수확하며 뿌듯해하다가 마지막에는 짠 맛까지 보태지며 자책도 함께 했다. 다음 번 파종 때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또 조금 많이 심고, 또 솎으면서 후회하고, 또 자라나는 걸 보며 웃겠지. 그 반복 속에서 계절은 지나가고, 밭은 조금씩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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