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 EPL Episode 3.
몇 년 전, 네덜란드의 맥주 회사 하이네켄이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었다. 그들은 축구에 열광하는 남자들이 아닌, 그들의 애인을 포섭했다. 애인들이 해야 할 미션은 어느 축구 결승전이 있는 날, 애인에게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한 해 내내 기다렸던 결승전을 보지 못하게 된 남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애인의 손에 이끌려 클래식 공연장을 찾았다. 줄 끊어진 첼로가 낼법한 앓는 소리를 내던 남자들. 그들의 앞으로 멋진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랐고 애인들은 계획대로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남자들은 여전히 앓는 소리만 낼뿐이었다.
조금 뒤,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연주를 준비했다. 그리고 수많은 현악기의 활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남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하이네켄이 준비한 이벤트는 다름 아닌 축구팬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관람하는 이벤트였다. 애인의 손에 이끌려 올해는 결승전 대신 몇백 년 전에 죽은 이가 긁적인 음악을 들어야 했던 이들. 그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음은 당연했다. 하지만 첫 곡으로 흘러나온 음악은 챔피언스리그의 상징과도 같은 오프닝 스코어 ‘Ligue Des Champions’ 였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와 함께 스크린으로 결승전에 오른 두 팀의 선수들이 경기장을 오르고 있었다. 축구팬을 위한 이 완벽한 이벤트에(게다가 그들은 모두 애인이 있는 승리자들이 아닌가!?) 몇몇 팬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대체 이 경기가 무엇이기에. ‘챔피언스리그’가 축구팬에게 어떤 의미였기에 이런 거대한 이벤트가 기획되었고 그들은 눈물을 훔쳤을까?
챔피언스리그는 1955년 시작된 유럽 축구 클럽 대항전이다. 다시 말해 유럽의 축구 클럽 중 왕좌를 차지할 자를 가리는 대회인 것이다. 대회는 매년 열리지만, 연속으로 우승한 팀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가 유일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대회다. 자국의 리그에서 밥 먹듯 우승을 해도 진정한 ‘빅클럽’ 되려면 챔피언스리그의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트로피 ‘빅 이어’를 들어야만 했다.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에서 총 다섯 번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몇 년간 부진했던 리버풀이, 영국 프로 축구가 프리미어리그로 이름을 바꾼 후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한 리버풀이 ‘빅클럽’의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다섯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리버풀보다 더 많이 우승한 팀은 ‘레알 마드리드’와 ‘AC 밀란’이 전부다. ‘바이에른 뮌헨’과 ‘FC 바르셀로나’ 역시 5회의 우승을 했을 뿐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들은 3번의 우승 기억이 전부다.) 특히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2004-2005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치열하게 진행되었고 현재까지도 챔피언스리그 명경기 리스트에 반드시 들어가는 경기이다.
문제는 이스탄불에서의 우승 경험을 끝으로 리버풀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챔피언스리그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09-10시즌 이후로 리버풀은 리그 4위까지 주어지는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손에 쥐지 못했다. (즉 4위 밖이었다) 겨우 다시 진출한 13-14시즌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후 3년 동안 리그 4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함으로써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잊혀져 갔다.
다행인 점은 지난 시즌 가까스로이긴 하지만 그들은 리그 4위의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오랜만에 복귀한 ’빅4’의 공기는 달콤했고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자격까지 얻어냈다. 단, 본선 진출을 위해서는 먼저 플레이오프를 통과해야 했다.
리버풀의 플레이오프 대전 상대는 독일의 ‘호펜하임’이었다. 호펜하임은 리버풀의 피르미누가 뛰던 팀이자, 1987년생인 어린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이 이끄는 팀이었다. 율리안 니겔스만이 감독이 되기 전만 해도 호펜하임은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젊다 못해 어린 감독(리버풀의 선수 제임스 밀너 보다도 어리다) 의 지휘 아래 춤추듯 리그테이블을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그 결과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의 진출 자격까지 얻어낸 것이다. 보통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호펜하임과 같은 돌풍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팀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그랬기에 리버풀로서는 대진에서 반드시 피하고 싶은 팀이었다. 물론 호펜하임을 넘지 못하는 정도로는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버텨낼 수 없다. 그렇기에 플레이오프에서 어떤 팀을 만나든 대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요소였다. 클롭 감독 역시 예전에 자신이 그랬듯 젊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율리안 나겔스만과 한번 붙어보고 싶은 마음이 내심 있었을 것이다.
1차전 경기는 호펜하임의 홈구장 ‘라인 네카어 아레나’였다.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 왓포드 전을 3:3으로 비기고 오른 원정길이었기에 리버풀은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특히나 호펜하임은 리버풀의 최대 약점으로 불리는 세트피스에서 강점을 보이는 팀이었으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토너먼트 경기의 경우 안전한 승리를 위해 포커에서 원 페어를 든 플레이어들 처럼 서로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경기에서 터지는 골은 대부분 세트피스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랬기에 리버풀은 최대한 호펜하임의 세트피스를 대비하고 경기장에 나서야 했다.
경기장에 오른 양 팀의 선수들은 서로의 나이를 자랑하듯 잔디보다 파릇한 젊음을 과시했다. 특히 리버풀의 오른쪽 윙백 아놀드에게는 이 경기가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이었다. 젊음과 젊음의 맞대결이었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세였다. 그 기세를 누가 잡을지는 킥오프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호펜하임은 홈팀이었지만 리버풀의 빠른 공격수들을 의식한 듯 두터운 수비 전술로 나왔다. 이는 리버풀이 가장 어려워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의적풀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유도 전력이 약한 팀은 보통 뒷문을 꽁꽁 잠그고 역습으로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리버풀은 그들의 뒷문을 여는 열쇠를 락커에 두고 오는 실수를 자주 저지르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열쇠를 두고 왔는지 탓할 새도 없이 패스 길은 막혔고 공은 미드필더진을 벗어나질 못했다. 그 사이 호펜하임의 젊은 선수들은 마치 리버풀이 그러듯 사이드를 빠르게 치고 올랐다. 문제는 리버풀의 양쪽 윙백인 모레노와 아놀드였다. 아놀드는 수비에서 필수적인 경험이 부족했고 모레노는 “프리시즌은 프리시즌일 뿐”이라는 명언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극악의 수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사이 호펜하임 선수들은 맘껏 페널티 박스까지 달려들었다. 윙백보다는 믿음직한 중앙 수비 마팁과 로브렌은 달려드는 호펜하임 선수들을 몸으로 막아섰다. 그리고 쓰러졌다. 잔디에 기름이라도 칠해져 있는지 두 중앙 수비는 마무리의 시점에서 발을 잘 못 뻗거나 몸을 이상하게 뉘었다. 특히 로브렌은 느린 와이파이에 연결되었을 때처럼 뇌의 명령이 다리까지 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듯했다. 그렇게 쌓인 실수를 처리한 것은 골키퍼 미뇰렛이었다. 어쩌면 전반전 내내 가장 바쁜 선수가 바로 미뇰렛이었다. 그는 때로는 페널티박스 밖까지 질주해야 했고,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듯 리버풀 골대로 공을 날리는 동료들의 실수를 커버해야 했다.
다행인 점은 미뇰렛이 그렇게 예열을 마친 덕분에 리버풀은 페널티킥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시작은 로브렌이었다. 그는 완벽한 맨 마킹 수비로 위기를 넘길 뻔했으나 공격수는 그의 앞에서 넘어졌고, 심판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미뇰렛은 공을 보고 몸을 날리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런 미뇰렛의 선택은 각종 보호장구를 모두 챙긴 듯 지나치게 안전하고 느린 킥을 찬 호펜하임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의 분위기는 이때를 기점으로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잔뜩 뺀 호펜하임의 골문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리버풀은 자신들의 장기인 전방압박을 택했다. 피르미누와 살라, 마네는 최대한 높은 선에서부터 수비를 시작했다. 젊은 호펜하임 선수들은 전방 압박만 2년째인 압박 마니아 리버풀 선수들의 기세를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실수를 저질렀다. 그들이 공을 놓치는 순간 살라와 마네는 질주했고 그 사이로 피르미누의 패스가 이어졌다. 몇 번의 찬스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다만 왓포드 전에서 보여주었듯 그들의 골 결정력은 아직 부족했다는 점이 호펜하임에게는 행운이었다.
기세를 한 번씩 주고받은 리버풀과 호펜하임. 이 경기가 재밌는 소설이었다면 이쯤 되어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일을 벌여야 했다. 사건은 클수록 좋았고 인물은 예상치 못할수록 좋았다. 행인1 정도면 더할 나위 없었다. 행인1은 리버풀이 얻은 프리킥 찬스 때, 공 근처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원래 리버풀의 프리키커는 쿠티뉴였다. 그의 정확한 킥이 리버풀에게 준 승점은 라틴어로 센다면 다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리버풀에는 쿠티뉴가 없었다. 다시 말해 호펜하임에게는 그다지 위협적인 순간이 아니었다. 호펜하임 선수들은 벽을 세우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누가 차도 벽 아니면 하늘이야. 세컨드 볼이나 잘 걷어내자.”
마찬가지로 리버풀 팬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누가 차도 벽 아니면 하늘이야. 세컨드 볼이나 잡자.”
그렇게 딱히 긴장되지 않는 프리킥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행인1은 프리킥 장소로 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모든 이들은 생각했다.
“설마 행인1이 차는 건 아니지?”
설마는 곧 진실이 되었다. 행인1의 오른발이 공을 강하게 때렸고 공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골대에 빨려 들어갔다. 호펜하임의 골키퍼로서는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슛이었고, 이 골로 행인1은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에서 결승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행인1의 정체는 아놀드였다. 다소 불안한 수비와 정돈되지 않은 드리블. 하지만 크로스는 생각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아놀드를 향한 평가였다. 그는 아직 전문 키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프리킥 찬스 때 그를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게임 전체를 바꾸어내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이 놀라운 반전에 가장 놀란 것은 아놀드 자신이었겠지만 골 결정력에 목말라하던 리버풀 팬들에게, 전문 프리키커를 잃은 리버풀 팬들에게 이 골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예상치 못한 한 방을 얻어맞은 젊은 호펜하임. 그들의 젊음은 이런 상황에서는 악재가 되었다. 그들은 완전히 넘어간 기세를 다시 찾을 방법을 쉽게 찾지 못했다. 다행인 점은 리버풀의 젊은 선수들 역시 기세를 노련하게 운영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후반 들어서도 리버풀은 잦은 실수를 쌓아갔고 실수의 숫자만큼 호펜하임 선수들은 자연스레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세트피스라는 최고의 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리버풀이 가장 경계해야 할 세트피스가 말이다.
리버풀은 1골의 리드를 조금 더 노련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투입된 선수는 바로 제임스 밀너였다. 호펜하임의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 밀너는 언제나 그랬듯 황소 같은 활동력을 보이며 리버풀 선수들 사이에 스멀스멀 오르던 실수의 불길을 진화해 나갔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방. 왼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호펜하임 선수의 몸에 맞으며 꺾이며 행운의 골을 선물했다. 2:0 언제나 그랬듯 골보다 좋은 전략은 없었다. 리버풀은 밀너의 골 덕분에 조금 더 침착히 경기를 운영할 수 있었다. 비록 우트의 완벽한 골에 한 점을 잃었지만 왓포드 전에서 리버풀이 그랬듯 호펜하임에게는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챔피언스리그의 주제곡 ‘Ligue Des Champions’의 가사에는 위대한 정복자들의 위대한 길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리버풀 역시 새로이 그 길을 나섰다. 그들이 정복자의 꼭대기에 서게 될지, 아니면 먼 곳에서 정복자의 추억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남을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객관적이라 불리는 모든 데이터는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만 끝나는 경기라면, 그렇게만 끝나는 이벤트라면 아무도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벤트든 하이네켄이 그러했듯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있어야 사람들은 환호하고 눈물 흘리고 즐길 수 있다. 리버풀의 첫 원정길도 마찬가지였다. 게임을 결정지은 것은 살라와 마네, 피르미누가 아닌 아놀드의 프리킥이었다. 그 골 하나로 리버풀의 팬들은 극적으로 환호할 수 있었고 호펜하임의 팬들은 극적으로 좌절할 수 있었다. 승자든 패자든 분명한 건 우리 모두는 정복자의 이야기를 즐겼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들은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Written by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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