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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ug 29. 2017

⎨PODCAST⎬
이토록 아름다운 엔딩 이라면

BOOKDIO COVER STORY



1. 

 집을 나서며 애플 뮤직의 선곡 리스트를 누른다. 처음 들어보지만 내 귀에 착 달라붙는 밴드의 음악이 들린다. 오늘도 좋은 음악을 소개 받았다는 기쁨에 일부러 스마트폰을 꺼내 노래에 ‘하트’를 누르고 링크를 복사한다. 지하철을 타면 인스타그램에 곧장 공유를 해야 하니까. 


 지하철에 오를때까지 세 곡 정도의 노래가 흘렀다. 그리고 또 한 곡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마음에 드는 스타일의 음악이다. 애플 뮤직은 정말이지 내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친구다. 하지만 나는 그런 좋은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역시 넌!” 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끝없이 흐르는 음악에 끝없이 하트를 누를 뿐이다. 그것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애플 뮤직이 선곡한 노래를 들으며 가끔은 흥을, 또 가끔은 감동을 느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 곧장 샤워를 했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땀을 잔뜩 흘렸지만 물을 마시진 않았다. 그건 샤워 후 맥주를 위해 양보해야만 했다. 


 샤워를 할때도 스마트폰은 곁에 있다. 스테레오 스피커를 내장하고 있고 심지어 방수까지 되는 스마트폰은 이제 샤워 중에도 애플 뮤직이 내게 감동을 선사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애플 뮤직은 퇴근 후 집에서 듣기 좋은 하우스 음악 리스트로 샤워를 도왔다. 개운해진 몸을 2인용 소파에 누이고 손에 든 맥주 한 캔을 땄다. 그리고 들이켰다. 왠지 모르게 하루키가 생각나는 시간이지만 그건 기분 탓일 것이다. 시원하게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스마트폰을 스피커에 연결한다. 일어날 필요는 없다. 스피커에는 블루투스 기능이 내장되어 있으니까. 몇 번의 터치로 스마트폰이 블루투스와 연결되자 하우스 음악은 이제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왔다. 여름의 끝에 느낄 수 있는 나름의 사치에 또 한 번 감동 아닌 감동을 느낀다.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이 음악은 언제 끝나는 걸까?”


 처음에는 단순한 의문이었다. 그러나 의문은 곧 의심으로 변했다. 그러자 심한 갈증이 났다. 음악이 흐르고 끝나고 새로운 음악이 시작될때마다 갈증은 심해졌다. 이 음반이. 아니, 이 리스트가 어서 끝이 나길 바랐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애플 뮤직은 좋은 곡을 끊임없이 선곡해주는 능력은 출중했지만 음악을 멈추는 일에는 서툴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끝’ 그것은 너무나 어색한 단어였다. 



2. 

 “엘피팩토리의 이길용 대표는 2011년 9월 공장 설립 후, 2013년 4월까지 4,500장의 엘피를 생산했고, 그로 인해 벌어들인 수익은, 놀라지 마시라. 자그만치, 200만 원이다. 우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적은 금액이다.”  <메이드 인 공장> 中에서



 김중혁 작가의 공장 탐방 에세이 <메이드 인 공장>의 한 부분이다. 김중혁 작가가 찾은 엘피팩토리는 우리가 아는, 혹은 알기만 하는 LP. 공식적인 용어로는 Vinly(바이닐)이라고 불리는 물건을 만드는 공장이다. 이제는 바이닐을 추억하는 이보다 바이닐을 만져보지도 못한 이가 더 많아졌을 정도로 바이닐은 옛날 물건이 되었다. 그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한국에 유일하게 남은 바이닐 공장은 약 2년의 시간 동안 바이닐 판매로 200만원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다시 한 번 <메이드 인 공장>의 글을 인용하자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적은 금액이다. 


 음악 시장은 다른 어떤 시장보다도 빠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바이닐로 시작된 음반은 CD로, CD는 MP3로, MP3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가파른 발전을 이루었다. 그 결과 커다란 플라스틱 판을 사야만 즐길 수 있었던 (그것도 겨우 40여분이 한계였다) 음악을 용도를 모르던 청바지의 작은 포켓 속에 몇천곡씩 넣고 다닐 수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전 세계의 모든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 과정에서 음악은 스스로의 몸을 불태우고 공기 속을 부유하는 길을 택했다. 공기를 떠돌다 원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귀에 안착하는 방법. 그것은 음악을 사용하는 이들이 간절히 원하던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 결과, 불편하고 한계가 있으며 비싸기까지 한 바이닐과 CD앨범 시장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앨범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던 뮤지션들은 자신의 말을 보기 좋게 뒤집고 싱글이 아닌 한 장의 앨범 형태의 음반 발매를 멈추지 않았다. 뮤지션들이 하나로 묶인 앨범을 발표하자 이를 담을 용기가 필요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기가 아닌 스크래치였다. 뮤지션들은 자신의 음악을 긁기 시작했다. 일부 수집가만이 찾는다 생각했던 바이닐에. 바이닐은 동그란 플라스틱 판에 음악을 직접 긁어 새기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때문에 불량율이 굉장히 높고, 디지털 음원과 달리 일정한 음질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려 기껏 돈을 모아 산 음악을 잃어버리게 된다. 


 바로 여기가 중요하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 그것의 선결조건은 무언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유하기에 잃을 수 있고 잃었기에 소유했던 기억을 간직할 수 있다. 주머니 속에 들어가는 수천 곡의 음악, 공기 속을 떠도는 세상의 모든 음악.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소유라 믿었다. 모든 것을 가진 상태, 그 상태가 진정한 소유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세계가 열리고 주머니 속에 세상 모든 음악을 넣게 되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리고 의심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디지털 기계였다. 그것은 일종의 매개체였다. 음악과 나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매개체 이상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그들의 전원이 꺼지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 것이다. 


 “우린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3. 

 데이비드 색스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은 이러한 사람들의 의심이 가져온 새로운 물결을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손에 넣어본 사람들은 이제 진짜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이닐일 수도 있고 몰스킨 노트일수도 있고, 필름 카메라일수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하나는 불편하다는 점, 또 하나는 비싸고 질이 낮다는 점이다. 



 바이닐만 하더라도 그렇다. 바이닐은 저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고, 습도 등 외부 환경에 의해 음질이 큰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음질이 안좋다는 것이다. 디지털은 물론이고 CD에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바이닐을 한 번이라도 틀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음악을 들을 수 있는지 말이다. 플라스틱 판이 깨지지 않게 커버에서 꺼낸 뒤, 턴 테이블에 조심스레 판을 놓는다. 그리고 바늘을 올려 놓으면(“내가 좋아하는 4번 트랙부터 들어야지!” 하는 마음은 더 큰 섬세함을 요구한다) 엠프를 거쳐 스피커로 좋지 않은 음질의 음악이 흐른다. 몰스킨 노트나 필름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디지털 인쇄에 비해, 혹은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비싸고 편이성이 떨어지며 결과물도 대부분 좋지 않다. 디지털 매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다. 


 그럼에도 그들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을 뒷받침 해주는 데이터는 얼마든지 있다. 아날로그 물건의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있고 도서 시장에서 전자책이 종이책에게 다시 자리를 내준것은 오래된 일이다. 시장 곳곳에는 수제 제품을 파는 매장이 즐비하며 온라인 마켓에 밀리던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 역시 다시금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대체 왜일까? 편하다는 이유로, 빠르고 질이 좋으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찬양했던 온라인과 디지털을 우리는 왜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끝'을 영원히 기다리던 ‘나'의 이야기로. 

 좋은 음악이 끝없이 나오고, 좋은 책을 도서관 만큼 담아 다닐 수 있고, 좋은 제품도 언제든지, 좋은 사진도 언제든지, 좋은 사람과의 대화도 언제든지 가능한 세상. 여기서 말하는 ‘언제든지'는 디지털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디지털을 즐기는 사람. 그들의 몸은 정직해서 때가되면 밥을 먹어야 했고 하루의 끝은 잠으로 맺어야 했다. 그런데 디지털은 도대체가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잠을 잘때도 그들은 돌아가고 있으며 그런 사실을 인식할때면 우리는 불안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잠에 들지 못한다. 스스로 디지털화 되어 살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덜 자고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더 많이 만나려 애쓴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자연스레 잊어간다. ‘끝'을 내는 방법을.  


 ‘끝'을 내는 방법.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아날로그이다. 그들은 물리적 한계 때문에 열 곡의 노래만 몸에 담거나, 백 장의 낙서만 몸에 담을 수 밖에 없다. 24장의 컷과 진열장의 한정된 물건들. 그들은 끝을 드러내는데 두려움이 없다. 아니, 그들은 끝을 어떻게 맺는 것이 아름다운지 알고있다. 그들에게 제한은 아름다운 엔딩을 위한 조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저토록 아름다운 끝이라니.” 


 그리고 사게 된다. 그들의 불편함과 그들의 한계.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끝을 사게 된다. 


Written by 최동민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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