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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Nov 07. 2017

⎨COVER STORY⎬
"상실의 시대"

BOOKDIO COVER STORY


1.

 1920년. 첫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화려한 불꽃의 끝에서 파티를 여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바닥을 뒹구는 시체와 시체를 이고 언덕을 넘는 이들의 발걸음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갖은 색으로 치장된 화려한 불빛과 멈출 줄 모르고 토해내던 지폐뿐이었다. 그들은 파트너가 토해낸 지폐를 손에 쥔 채 몸을 흔들었고 스텝으로 마룻바닥을 무너뜨릴 듯 밟았다. 그리고 자신도 토했다. 


 시체가 눈에 띌 아침이 되기 전, 그들은 아무렇게나 짐을 놓고 파티장을 빠져나갔다. 대부분은 자신의 방인지 남의 방인지 모를 호텔의 침대에 나뒹굴었지만 한 사람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계획적인 방탕의 걸음으로 서재 앞에 도착했고, 작은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책과 종잇조각들은 한 번에 밀쳐 놓았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이 초기화된 아주 깨끗한 책상이었다. 


 책상에 펜과 종이 몇 장만을 남겨놓은 그는 일을 시작했다. 아직 술은 깨지 않았으며 밤새워 놀아 무거워진 눈꺼풀은 다음 파티를 위해 휴식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눈을 부릅뜬 채 중얼거렸다.


 "단편소설 따위 단숨에 써낼 수 있어."


 그의 말이 마법사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펜을 든 손은 바삐 움직였고 쌓아놓은 종이에는 문장이 가득 담겼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밤새 스텝을 밟고도 지치지 않았던 그의 몸뚱이는 비로소 모든 것을 소진한 듯 축 늘어졌다. 다만, 그의 입꼬리는 조금 올라가 있었는데 아마도 책상 위에 쌓인 종이가 수표로 돌아올 것을 상상했기 때문이리라. 


 해가 지자 그는 눈을 떴다. 벌써 해가 진 것에 놀랄 법도 했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파티에 늦지 않으리라는 것을. 왜냐하면, 그는 어제 입은 파티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아침에 쓴 소설은 출판사에서 보낸 수표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양말을 갈아신고 수표를 지갑에 넣으면 파티 준비는 끝이었다. 오늘도 파티장은 그의 방문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시대의 아이콘이자 부유한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였으니까. 



2.

 언제 책상 앞에 앉았냐는 듯 파티장을 향해 멋진 검은 차를 타고 달리는 스콧 피츠제럴드. 그의 옆에는 파티가 시작되기도 전에 술에 취했는지 게슴츠레 눈을 뜨고 흐르지도 않는 리듬에 몸을 흔드는 젤다 피츠제럴드가 있었다. 두 사람의 차가 클럽을 지날 때마다 클럽 안에서는 오늘 당신의 자리는 여기라는 듯 환호성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달빛이 적당히 익을 때쯤 차를 멈췄다. 클럽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었다. 휴일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재즈 시대에 그런 걱정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예상대로 클럽 안은 이미 조명과 재즈 선율로 가득했다. 즉흥적으로 몸을 흔들어대는 사람들 사이에 두 사람의 자리는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아갔다. 설령 그것이 남의 자리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티 내지 않았으리라. 왜냐하면 사람들은 두 사람을 좋아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의 지갑만큼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다음 날 아침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피츠제럴드는 쉽게 단편 소설을 완성해냈고 그것 한 편이면 한 달은 편히 즐길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재능 때문이기도 했지만, 시대가 가진 넘치는 돈 때문이기도 했다. 세계대전의 끝. 먼 곳에서 승리를 거머쥔 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넘치는 수요였다. 끝을 알 수 없는 우물을 메우는 것처럼 무한한 공급을 해도 다음 날이면 우물은 깊은 구멍을 드러냈다. 우물 사이로 돈이 흘러들기 시작했고 즐거움을 주는 모든 것들. 음악, 술, 마약…. 모든 것이 값싸게 제공되었다. 단지 그것만이 필요했던 이들에게 이 시대는 그야말로 황금시대였다. 짧은 시간에 돈을 벌 수 있는 재능을 가진 피츠제럴드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그에게 수표란 절대 소멸하지 않을 거대한 다이아몬드였다. 



 거대한 다이아몬드. 그는 그것을 꿈꿨다. 어린 시절 해고당한 아버지 덕에 중산층의 삶에서 빈곤한 삶으로 떨어져 본 그에게 계급은 절대 놓쳐선 안 될 어떤 것이었다. 게다가 그 하찮은 계급의 문제로 사랑하는 이에게 두 번이나 차여본 그였기에 상류사회의 파티장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문제는 계급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이전의 시대였다면 명예나 핏줄이 그것을 담보해주었겠지만 재즈의 시대는 달랐다. 그가 사는 시대에 계급을 유지해줄 것은 단 하나, 다이아몬드의 크기 뿐이었다. 집안 어디를 뒤져봐도 다이아몬드를 찾을 수 없었던 피츠제럴드는 직접 그것을 캐기로 마음먹었다. 채광의 도구는 펜이면 충분했다.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고 시대의 양식에 맞게 행동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시대에는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이상 피츠제럴드는 그것을 좇지 않을 수 없었다. 긁어 부서지고 흠이 난 다이아몬드가 아닌 하나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피츠제럴드는 그 정상에서 재즈를 듣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변주가 나오더라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넓고 단단한 다이아몬드 위에서 말이다. 


 하지만 피츠제럴드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를 지닌 이에게도 그만한 크기의 주머니는 없었다는 점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피츠제럴드는 그것을 글로 썼다.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를 가진 사람. 그가 다이아몬드 크기만 한 그림자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 가는 이야기. 그것은 피츠제럴드 자신의 이야기였고, 재즈 시대의 이야기였으며 상실을 겪는 모든 세대의 이야기였다. 



3.

 피츠제럴드의 소설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이 작품의 표면에는 제목처럼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1차 세계대전을 담보로 찾아온 재즈 시대의 모든 것이었다. 돈은 그것을 아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허락될 만큼 충분했고 대지는 그토록 흔들어대는데도 꺼질 줄 몰랐다. 적당히 일하는 사람에게도 그 이상의 보수가 주어지는 시기였으니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도 꿈으로 단정 지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만약 그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그만큼의 수표를 가지고 있는 이라도 분명 있을 것만 같은 시대였다. 그것은 피츠제럴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지고 있는 돈의 높이. 그것으로 결정될 계급의 높이에 천착했던 피츠제럴드. 그는 스스로 번 거대한 부를 그림자를 늘려 붙이는 데 사용했다. 매일 파티와 술에 돈을 써도 그만큼 다시 쌓였으니 누군들 그러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알아야 했다. 풍요의 시기에는 곳간에서 곡식이 몇 톨 사라졌는지 쉽게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곳간이 비어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미 시대는 저물었다는 사실을.


 피츠제럴드처럼 짧은 재즈 시대 동안 빈 곳간, 혹은 사라진 다이아몬드를 경험하는 이는 수없이 많았다. 피츠제럴드는 그 경험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 ‘상실’이라 이름 붙였다. 문제는 그들이 잃은 것이 단순한 수표나 다이아몬드, 빈 술병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상실한 것은 시간과 시대였다. 다시 돌릴 수도 채울 수도 없는 그것 말이다. 피츠제럴드가 자신이 잃은 것을 이처럼 작품으로 남기자 같은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연히 열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실감이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에 안도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 시대의 잘못이라는 것. 시대라는 녀석의 잘못된 안내와 거대한 만큼 허황한 다이아몬드가 그려진 펨플릿. 그것 때문에 나 혼자가 아닌 모두가 같은 상실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것은 시대에 핑계를 돌릴 수 있는 좋은 요소였으며 시대와 아픔을 공유한다는 겁쟁이들의 한숨이었다. 일찍이 피츠제럴드가 내쉬었던 바로 그 한숨 말이다. 



4. 

 대공황은 멀지 않아 찾아왔다. 그것은 실상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를 가진 자의 영광보다도 짧은 시간이었다. 이로써 상실의 시대도 끝이 나버렸다. 더는 상실을 말할 시대가 아니었다. 내가 잃어버린 어떤 것을 찾는 것은 좁쌀만 한 다이아몬드를 지닌 이들의 사치였고, 살아남으려면 남들이 잃어버린 것을 모조리 주워 모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 시대에 피츠제럴드가 그린 상실의 이야기는 불 꺼진 클럽처럼 쓸쓸해졌다. 그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주하던 때에도 맥주는 음료라며 마셨던 그에게 허락된 술병과 시간은 한계의 때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기억해줄 이들은 그의 책을 내던진 채 한계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잘하면 뛰어넘을지도 몰랐다. 빠른 속도로 도움닫기를 한다면 새로운 시대로 도약할 수 있을지 몰랐다. 아니, 도약해야만 했다. 다시금 ‘상실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피츠제럴드처럼 노래만 하는 이의 음률에 귀 기울여선 안되었다. 상실을 노래하는 이들의 마지막은 추락. 그리고 잊혀짐 뿐이었다. 그 결과를 누가 선고했는지는 아무에게도 중요하지 않았다.


Written by 최동민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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