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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Mar 31. 2018

⎨COVER STORY⎬
책의 봄

BOOKDIO COVER STORY

 통영에 다녀왔다. 어디에서나 보이는 바다와 그 바다가 불어내는 짠 바람이 무거운 마음을 조용히 휘감았다.   

 도다리 쑥국은 봄의 맛이었다. 비릿한 바다의 향과 씁쓸한 쑥의 향, 그리고 흰 살 생선의 단맛. 

 미래를 불안해하며 겁에 질려 있던 나에게 약동하는 봄의 맛은 말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다시 걸어가야 한다고. 무너지는 것들 속에서도 봄은 시작된다고.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한 책방을 찾아갔다. 이름에도 ‘봄날’을 새겨넣은 그곳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햇살과 기분 좋은 바람을 내어주고 있었다. 아담한 집 안 곳곳을 책을 위한 방으로 정성들여 꾸미고 각각의 방에는 이름과 색깔을 지어놓았다. 나는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언제까지고 ‘예술가의 방' 소파에 앉아서 윤이상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책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은 쉽게 이렇게 말한다. ‘종이책은 사라질 것이다, 다른 콘텐츠가 책을 대체할 것이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 정말 책의 미래를 생산적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있을까? 변화하는 책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대부분은, 인생의 미래를 막연하게 불안해하며 겁에 질려있는 나처럼, 그저 진부한 걱정의 레퍼토리를 또 한번 반복하며 감정을 소모할 뿐이다.


 그런 가운데 책의 미래를 서울에서 진지하게 찾아보려 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개성 있는 책과 책방을 만들어나가는 이들이다. 처음으로 맥주와 책의 만남을 시도한 ‘B&B 책방'의 경영자이자 북디렉터 ‘우치누마 신타로’, 그리고 ‘아이디어 잉크'라는 독특한 인문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아사히 출판사의 편집자 ‘아야메 요시노부.’ 둘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책을 둘러싼 서울의 새로운 움직임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이라는 무게감 있는 책 한 권을 펴냈다. 


 ‘책의 역습.’ 이 패기 넘치는 말은 우치누마 신타로가 쓰고 아야메 요시노부가 편집했던 책의 제목이다. 그들은 2016년, 이 책의 한국어판을 들고 서울을 찾았다. 그리고 ‘사적인 서점’ 정지혜 대표의 안내를 받아 서울의 책방들을 순례했다. 폭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개성 있는 책방들, 과감한 실험을 시도하는 편집자와 기획자. 그들이 책을 향해 뿜어내는 낯설고 무모한 열정에 이방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 모습은 마치 18도로 설정해놓은 에어컨 같았다고 한다. 무더위를 가라앉히기 위해 가장 강렬한 냉기로 단번에 땀을 식혀버리는 모습 말이다. 둘은 그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고, 최근에 결과물을 들고 다시 서울을 찾았다. 

 그들은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갑작스런 책방 붐 속에서 한국만의 특징을 찾는다. 이미 망했다고들 하기에 오히려 가질 수 있는 패기, 일단 한 번 해보는 태도이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준비하는 시간을 오래 갖지 않았어도, 자신만의 새로운 기획과 방향으로 일단 일을 시작하고, 해보는 과정 속에서 배워나가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접는 모습이다. 물론 이는 장점만은 아니며 긍정적인 미래를 약속하는 것도 아니다. 18도로 설정한 에어컨은 땀을 식히고 나면 금방 꺼져버린다. 책방을 닫아야만 했던 경험을 적은 책도 이미 나오고 있다. 일본의 친구들 역시, 새로운 시도가 들끓고 있는 것은 한국의 책을 둘러싼 환경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언제나 위기였다는 책과 출판, 책방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일을 벌이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책을 중심으로 계속 재미난 사건이 펼쳐지고 있으며, 적지않은 사람들이 그에 호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를 찾아볼 수 있다. 불확실하고 밝지 않은 미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에 발 맞추어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다시 오래된 키워드 하나에 주목하게 된다. 바로 ‘사람’이다. 우치누마 신타로 역시 결국 ‘사람’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매력있는 책과 책방의 열쇠는 그것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의 매력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며, 책을 통해 형성되는 사람들의 관계 또한 책의 미래를 예견하는 중요한 힌트가 될 것이라 말한다.


 굳이 이방인의 시선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책의 새로운 풍경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독립출판이나 작은 책방뿐만이 아니다. 책에 대한 책이나 책방에 대한 책이 다수 출판되고 있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책을 소개하고 권하는 다양한 음성 및 영상 콘텐츠들이 생겨나고 있다. 날마다 시를 소개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고, 마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월 정액으로 전자 책을 볼 수 있는 플랫폼도 생겨났다. 책을 둘러싼 기술과 문화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 중심은 책이다.   


 한편, 책을 매개로 다양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으며 큰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거기에 가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분위기를 쉽게 폄하하는 시선도 있지만, 어떤 비슷한 욕망이 생겨나고 있고 그 욕망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하면 어떨까 싶다. 그것은 책이 상징하는 ‘지적인 것’에 대한 욕망이며,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일 것이다. 이러한 욕망을 잘 품어내는 것 역시, 책의 미래가 나아갈 방향이다. 


 책의 미래는 그저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책은 다양한 매체 중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지식과 정보, 교양과 인문의 총체이다. 그것은 마치 음악, 춤 혹은 그림과 같다. 누구도 음악, 춤, 그림 그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구체적인 형태와 사람들의 일상에서 활용되는 방식이 변해갈 뿐이다. 

 그렇기에 겨울 너머로 봄이 돌아오듯, 책의 미래도 어떻게든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책을 통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계속될 것이다. 

 내가 통영에서 가지고 돌아온 것은 작은 용기였다. 나도 왠지 용감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딱 그만큼의 작은 용기. 


 다시,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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