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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un 27. 2024

여행하다 죽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7. 몬타뇰라


"이곳이라면 영원히라도 좋을 것만 같아."

여러분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처음 가본 제주의 바다에서, 길을 잃고 들어간 리스본의 언덕에서, 산이 그린 곡선을 마주한 부석사 앞에서…. 우리는 이런 감탄의 언어를 내뱉곤 합니다. 사실 하루의 시간을 살면서 감탄을 입안에 굴리거나 내뱉는 일은 많지 않죠. 그래서 멋진 공간을 보면. 더 자세히 말해, 나와 파장이 잘 맞는 공간에 서면 우리는 아낌없이 감탄을 내뱉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선 이곳에서도 몇몇 분들은 그런 감탄의 소리를 내셨을 것 같은데요. 솜씨 좋은 화가의 터치로 완성된 것 같은 산과, 품 넓은 물결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호수가 있는 곳. 우리는 지금 스위스의 루가노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어떤 이야기도, 역사도, 분주한 계획표도 필요 없는 곳입니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을 즐기면 그만인 곳이죠. 그러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곳이 바로 이곳. 루가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정착해도 좋을 것만 같은 공간이기도 한데요. 이곳에 먼저 도착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를 따라 여행을 떠나볼게요.



그는 왠지 힘이 없어 보입니다. 챙 넓은 중절모로 표정을 감추고 있긴 하지만 그림자가 숨어들 만큼 깊이 팬 주름이 그의 상황을 짐작게 하는 것 같아요. 그는 독일 칼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요. 칼브는 시계 공장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재밌게도 그는 시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규칙이라고 이름 붙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부했고, 반복되는 일상에 쉽게 권태를 느끼는 사람. 천상 예술의 일을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칼브의 잘 제조된 시계처럼 그의 부모님은 규율과 규칙, 정해진 것을 너무나 잘 지키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것은 두고 보지 못했죠. 한 번은 아들에게 규칙을 가르치려 기숙학교에 보내기도 했는데요. 규칙 덩어리인 그 공간에서 아이는 삶의 의욕을 모두 잃어버린 채, 거친 반항의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런 마음의 병은 칼브에서 깊어질 대로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아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했죠. 그에게 진정 필요한 치료는 '자유'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에요. 그런 아픔의 시간을 위로한 것은 서재에 꽂힌 수많은 책이었습니다. 그는 자유가 허용된 시간이면 1분도 낭비하지 않고 책을 읽었고, 그 안에 펼쳐진 무수한 세상을 마주하며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죠.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거야."


목표가 생긴 그는 그곳으로 빠르게 내달렸습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써내게 되는데요. 그 책의 제목은 <페터 카멘친트>였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사람. 그의 이름은 헤르만 헤세입니다.


반듯해 보이는 이미지와 흐트러짐 없을 것 같은 외모. 그리고 교훈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학적이며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작품들. 헤르만 헤세는 그런 이미지 때문에 평탄하게 세상을 살아갔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서 위기가 찾아오지 않는 시기가 없었을 정도로 그는 평생 흔들리며 살아야만 했죠.


지나친 규율에 힘들어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스물여섯의 어린 나이에 작가로서 성공했지만, 거듭된 전쟁에서 독일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 헤르만 헤세. 그는 고국에서 "제 둥지를 헐뜯는 자"라는 별명을 얻은 채 해외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곁에 둔 가족들마저 병마에 시달리면서 헤르만 헤세는 또 다른 위기를 맞습니다. 몇 번의 위기를 극복한 위기 전문가였지만 거듭된 데미지는 그의 무릎을 풀리게 했죠. 그런 헤세에게는 잠시 몸을 기대고 앉을 의자. 그런 편안한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찾은 곳이 바로 이곳인데요. 그와 함께 기차에서 내려보도록 하죠.



헤세가 내린 곳은 루가노 근교에 있는 도시 몬타뇰라입니다. 스위스의 거의 모든 공간이 아름답지만, 이곳은 호수와 산, 그리고 번잡하지 않게 선 마을의 풍경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곳입니다. 헤세는 상처받은 영혼을 이 몬타뇰라의 풍경으로 위로받곤 했는데요. 지금부터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셔야 할 거예요. 아마도 헤세는 집에 가기 전, 아주 긴 산책을 시작할 테니까 말이죠.


헤르만 헤세는 산책을 참 좋아했습니다. 누군들 몬타뇰라를 걷는 산책길을 마다하겠냐마는, 헤세의 경우에는 조금 더 특별했죠. 그는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몬타뇰라 산책길을 개발해 마음이 닿는 곳, 발이 가는 곳으로 매일 걸었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두 시간이 흐르곤 했는데요. 정확한 시간 따위 헤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헤세는 어린 시절에도 지금도, 시계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그의 산책길에 동행을 결심했으니, 우리도 시계는 잠시 넣어두고, 그의 시선을 따라 몬타뇰라의 호수와 산, 그리고 마을을 둘러보도록 하죠.



이 산책길에 끝에는 헤세가 삶의 절반 이상을 보냈고, 삶의 마지막을 맞은 집이 있습니다. 지금은 헤세의 후원자와 아들의 노력으로 그의 박물관이 된 공간. 그곳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헤세의 박물관은 이곳 말고도 그가 태어난 독일의 칼브나 그가 머물렀던 가이엔호펜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헤세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첫손에 꼽는 곳은 바로 이곳 몬타뇰라입니다. 그 이유는 헤세가 가장 오래 산 공간이라는 점을 말할 수 있을 테고, 이곳에서 <데미안>을 비롯한 수없는 명작을 탄생시켰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 그것은 바로 헤세가 이곳에서 진정한 의미의 안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고국에서 버림받고 가족들은 병에 걸리고, 아무리 글을 써도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내지 못한다는 생각. 그런 아픔에 지쳐있던 헤세는 몬타뇰라에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수채화를 그리기도 하고, 매일 정원을 가꾸기도 했죠. 이 세 가지 각기 다른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몬타뇰라는 아주 조용히, 그리고 충분히 헤세를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런 몬타뇰라의 품에 안겨 헤세는 세상에 필요한 예술, 그리고 오롯이 자신에게 필요한 예술을 병행했는데요. 그 결과, 헤세는 이곳에서 조금씩 위기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곳 헤세 박물관에서는 헤세를 그러한 터널에서 빠져나오게 해준 표지. 그의 작품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 헤세는 수채화를 즐겨 그렸습니다. 다른 유화를 그릴 수도 있었겠지만 헤세는 명확한 선보다는 묽게 번지는 그 색채를 좋아했습니다. 몬타뇰라의 자연도 수채화와 더 어울려 보였고요. 그렇게 그려진 작품이 그의 서재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요. 노란빛 페인트로 장식된 벽에 걸린 그의 수채화는 마치 태양이 떠오른 몬타뇰라를 멀리서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이런 수채화 외에도 박물관에는 헤세가 정원사로 살며 썼던 물품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헤세는 실제로 단 한 순간도 정원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는데요. 그는 자연의 창조력을 보면서 그것을 자신의 예술적 파트너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 파트너와 함께 빚어낸 작품은 그의 책상과 서재에서 친필로 만나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그가 썼던 펜이나 타자기도 이곳에서 손쉽게 마주할 수 있는데요. 그것으로 써 내려간 작품을 생각하면 조금 더 그 물건들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집니다. 언젠가 데미안을 포켓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청년들의 마음처럼 말이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외줄처럼 이어진 전쟁터. 그곳에 내몰린 젊은이들은 헤세와 같았습니다. 헤세처럼 불안에 떨어야 했고 헤세처럼 번민했으며 헤세처럼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헤세는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을 닮을 이들을 위해 한 권의 책을 써냅니다. 작품의 제목은 <데미안>이었죠. 흔들리는 세상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법, 자신이 발 디딜 공간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미안>. 이 책은 전쟁터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군복 포켓 주머니에 한 권씩은 꼭 넣고 다녔던 책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전쟁터에까지 그 책을 안고 가게 한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헤세와 그들의 현재가 다르지 않아서였을 것입니다. 한순간에 자신이 알던,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것이 폭격으로 사라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그들은 헤세처럼 방황했을 것이며 간절히 흔들리지 않는 안식의 땅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을 그들처럼 흔들린 헤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데미안>이 가장 성능 좋은 나침반처럼 느껴졌겠죠. 그리고 이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이유로 흔들리는 이들에게도 적용되는데요. 지금까지도 <데미안>이 인쇄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겠죠.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헤세의 책상에 놓인 펜과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리고 책상 앞 큰 창 너머로 펼쳐진 몬타뇰라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부디 저 풍경처럼. 모두가 평화롭기를.



이렇게 오늘은 스위스 몬타뇰라에서 헤르만 헤세와 산책도 하고 그의 집을 구경해보기도 했는데요. 이 여행길이 멀미가 날듯 어지러운 당신의 하루를 위로해 주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한 가이드에 아직도 어지럽다 생각되신다면 걱정 마세요. 당신의 책장 어딘가에 <데미안>이 꽂혀 있을 테니까요. 그럼, 그 책으로 마저 문학 여행을 즐기실 수 있게 저는 물러가도록 할게요.

다음 여행 때,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하죠.


그때까지.

잘 지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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