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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Dec 30. 2016

2016년의 시간을

Essay Special


Essay Special

2016년의 시간을




한 해의 달력이 이토록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무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난 2016. 그해의 시간도 어느덧 마지막 숫자 앞에 다달았다. 개인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절망했고 허탈했던 한 해. 그런 절망의 간격을 채워주는 것은 개인적이며 소소한 일들의 시간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 작은 시간들이 없었으면 견디지 못했을 한 해. 그 한 해를 잠시 돌아보며 2016년의 블로그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로맹, 에밀

3월 6일.

비가 몹시 오는 날이었다. 이제 1년을 채 살지 않은 우리의 집에 아이들이 이사를 왔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태어났고 초등학생들의 천진한 잔인함에 상처입었다. 덩치 큰 다른 고양이들은 자연의 섭리를 핑계로 아이들을 내몰았고 길거리, 아주 좁은 길거리의 끝자락에서 시설을 통해 구조 받았다.


아이들이 상처 입는 시간에 우리는 따뜻한 집 안에서 준비를 했다. 인연을 받아들일 준비. 그것은 쉬워서는 안되는 일이었기에 조금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에 손을 잡지 못한 인연이 지나갔고 연결되어야 할 인연인 아이들이 찾아왔다. 이름은 로맹, 에밀로 지었다.



휴머니스트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를 하다가 <빨간책방>을 하게 되었고 <빨간책방>은 <미생 라디오>와 연결이 되었다. <미생 라디오>는 <한겨레 팟캐스트 칼럼>과 이어졌고 <한겨레 팟캐스트 칼럼>은 휴머니스트 팟캐스트 <독자적인 책수다>와 연결되었다.


<독자적인 책수다>는 작년 말쯤에 의견을 나누고 올해 3월에 새로 시작한 팟캐스트다. <책 읽는 라디오>가 <빨간책방>과 다르듯이 <독자적인 책수다>는 저자가 직접 전하는 강의라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올 한 해 동안 정재찬 저자님, 이진우 저자님, 안대회 저자님, 김연철 저자님, 신정근 저자님, 강명관 저자님까지… 대학시절보다 많은 교수님들의 깊이 있는 강의를 제일 처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 작업이기도 했다.


만나 뵌 모든 저자님이 각기 다른 스타일과 콘텐츠를 전해주었기에 지루함없이 작업을 할수 있었고 특히 이진우 교수님과의 시간은 ’신사’의 정의를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좋은 교수님에게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깨달음과 동시에 고등학생 시절 놀고 먹던 시간들을 후회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강의와 콘텐츠의 본문이 좋아서 인지 팟캐스트로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뚜렷이 찾지 못했다. PD로서 해야할 일임에 분명하기에 내년에는 좋은 콘텐츠의 뼈대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책읽는라디오 3.0

2010년 7월 28일에 시작한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가 어느덧 7년째 시간을 맞게 되었다. 7년이라는 시간은 제작진 모두에게도 공평히 전달되었다. 그로인한 변화는 일종의 흐름을 만들었고 그것을 거부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찾지 않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삶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개인의 변화라는 흐름에 맞춰 <책 읽는 라디오>의 배를 다시금 띄워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책 읽는 라디오>의 3.0 시대. 3개월의 개편주기, 주 5회의 방송 같은 정해진 틀은 모두 지워버렸다. 그리고 <책 읽는 라디오>는 일종의 채널이 되어 그 안에 프로그램들을 신설하기 시작했다. <책 읽는 라디오>안의 코너로써 묶이는 것이 아닌, <책 읽는 라디오>라는 채널 안에 각기 다른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주간, 격주간, 월간. 분량의 자유로움, 구성의 자유로움,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인의 역량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던 결론이 바로 3.0이었다. 이제 시작인지라 만드는 이와 듣는 이 모두의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시스템이지만 내년이 지나고 또 내년이 지나고, 또 내년이 지나면… 그렇게 오랜 시간 계속 <책 읽는 라디오>라는 채널이 이어질 수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만드는 것도 듣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3.9 이라는 생소한 시스템 안에서 각기 자유로운 목소리 나눠준 제작진 분들과 변화의 흔들림에도 귀 기울여주고 계시는 청취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오키나와 여행

어느 날 진영이 말했다. “연차를 내서 부모님과 외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 오자.”

큰 결심 아래 부모님은 생전 처음 여권을 만들었다. 부모님과 가는 것이니 기왕이면 가까운 곳, 기왕이면 정돈된 곳을 염두에 두고 여행지를 골랐다. 여러 곳이 후보로 올랐지만 최종 결정을 한 곳은 오키나와 였다. 일본의 깔끔한 식문화나 렌트를 하고 다니기 용이하다는 점, 그리고 관광지와 자연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으며 크기 또한 작다는 점.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고른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가족여행이라고는 진해 정도 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여행을 다니지 않았기에 부모님이 무엇을 좋아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츄마우리 수족관을 가면 좋아하실까? 아메리칸 빌리지를 가면 좋아하실까? 만좌모에 가면, 민속촌에 가면… 과연 좋아하실까? 아무리 물어도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 갔다. 별 것 아닐지도 모를 수족관 속 물고기와 아메리칸 빌리지의 관람차, 수제 공예 가게와 남국의 문화들. 부모님은 모든 장면에 핸드폰 카메라를 눌렀고 다양한 문장부호를 쏟아 내셨다.


분명 각자의 이유로 힘이 들고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팀플레이는 원래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껏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복정의 늦봄

겷혼을 하고 집들이를 비롯해 몇 번의 모임을 집에서 가졌다. 그때마다 좁은 집임에도 불편한 기색없이 찾아와주는 지인들과 집에서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즐기곤 했다. 올해에는 계절 몽미을 가져보자 생각하며 늦봄의 모임을 잡았다. 모임에 빠질 수 없는 술에는 각별히 신경을 썼다. 여름이 맞이하며 일종의 액땜을 하듯 즐길 수 있는 술이엇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른 술이 바로 ‘하이 볼’


즐겨보는 일본 드라마 <심야 식당>에서 처음 본 술이다. 특별할 것은 없는 것이 얼음이 가득 든 잔에 탄산수에 레몬즙과 위스키를 섞어 마시면 되는 술이다. 모임 전에 진영과 미리 마셔보고는 바로 “이거다!” 싶을 정도로 여름을 맞이하기에 좋은 술이었다. 얼음이 주는 차가움과 탄산의 시원함, 그리고 기분좋은 높이로 우리를 올려주는 레몬즙과 적당한 취기를 도와주는 위스키까지. 정말이지 늦봄의 모임에 딱 맞는 술이었다.


술과 안주를 준비한 후에는 포스터 작업을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술모임일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함께하는 시간에 특별함이 더해지기를 바랐다. 마치 예약한 공연이나 파티에 오는 것처럼. 그러기 위해서는 포스터가 필수였다. 그래서 적당히 포스터를 만들고 1,000원이나 들여서 출력을 하고 문 앞에 붙여 두었다. (과연 얼만큼 특별해졌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PS. 원래는 계절모임이었는데 어영부영 한 해가 다 가버렸다. 내년 봄 모임을 서둘러 준비해야 겠다.



이소라 소극장 콘서트

꼭 가야하는 공연이 있다. 진영과 나에게 이소라 공연이 그렇다. 이번에는 민영 누나도 함께였다. 2014년에 봤던 이소라 콘서트와 플레이 리스트나 무대 구성은 비슷했다. 하지만 2년의 시간동안 듣는 우리의 감정과 부르는 이소라의 감정은 미묘하게 달라져있었다. 그때 들은 <바람이 분다>와 지금 듣는 <바람이 분다> 그때듣는 <난 별>과 지금 듣는 <난 별>은 완전히 달랐다.


이번 콘서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바람이 분다>였다. 너무 흔해진 노래고 너무 소모해버린 노래이기에 특별한 검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 이유를 찾으려 고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말고도 설명해야 하는 것은 너무 많으니까 노래 한 곡 정도는 오롯이 감정에 맡겨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상하이 여행

정말이지 지독한 여름이었다. 공기는 숨을 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고 어디서건 몸을 뒤척이게 했다. 여행을 간다한들 나아질 것은 없어 보였지만 기회가 있다면 떠나는 것이 우리의 디폴트 값이었다. 그렇다고 멀리가지는 못하고 고작 정한 것이 상하이. 여름이되면 한국보다 덥고 습하다 소문난 그곳에 겁도 없이 날아갔다.


첫 날은 소문대로 더웠다. 게다가 거리는 어찌나 넓고 건물은 어찌나 큰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가는 것만해도 큰 곤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첫날 밤, 상하이에 비가 내렸다. 다음 날, 여름에 비가 오면 마땅히 더 덥고 습해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비는 그치고 구름은 아직 조금 남아있고 온도는 거짓말처럼 내려가 있었다. 습하지도 덥지도 않은 걷기 좋은 날씨가 된 것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첫 날보다 더 많은 걸음수를 자랑하며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상하이는 넓었고 건물의 출구를 찾는데만도 체력이 필요했다. 결국 우린 지쳤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양고기(내가 먹은 것중에)를 먹었으며 태어나서 만날 모든 중국사람을 만난것만 같았다.



작가를 짓다 계약

작년 <책 읽는 라디오>코너로 방송을 하고 휘발되는 것이 아까워 블로그, 브런치에 글을 써서 올린 것이 운 좋게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당선되었다. 대상은 곧장 출간이었지만 나는 금상이어서 출간은 생각하지 않았는데 또 한 번 운이 좋게도 출판사 편집자 분의 눈에 띄어 출간 계약을 하게 되었다. 단독 계약은 처음 겪는 일이라 말도 못하게 기뻤다.


다만 기쁜 마음이 너무 지나쳤는지 초고를 쓰는 과정(아직도 많이 남은…)은 큰 부담이 되어 빠르게 문장이 이어지질 못했다. 한 번 쓰면 몇 번을 고쳐야 했고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수정 하며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그러다보니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고 문장도 무거워지고 있는 것 같아 마감은 멀어만 지고 있다.


이런 초보 저자를 나무라지도 않고 격려해주는 편집자 분께 감사를 드리며… 책을 받아볼 그날만 상상하며 조금 더 집중해야 겠다. (내년에 반드시 출간을….)



지인의 결혼

올해는 유독 지인의 결혼이 많았다. 함께 작업을 하던 동료들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지인들이 연이어 결혼을 했고 몇몇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몇몇의 결혼식에는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결혼의 표정은 다양하면서도 한결같았다. 각자의 성격과 개성에 따라 다양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고 인사를 하고 축하를 받으면서도 한결같이 상기되어있고 한결같이 미소를 품고 있다. 준비와 식에 지쳐 간혹 숨을 고를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 순간일 뿐이다. 그런 결혼하는 일들의 표정을 보고 있자면 이규리 시인의 시집 제목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황산 여행

레져와 운동을 좋아하는 아버님은 등산도 즐기신다. 그런 아버님을 따라 치악산을 올라가다 진영과 난 저승꽃을 잠시 보았는데 그것은 예행연습에 불과했다. 아버님은 예전부터 황산에 가보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추진력이 붙지 못해 가지 못하시곤 하셔서 이번에 진여오가 내가 스스로 추진력이 되었다. 아버님을 모시고 황산에 다녀온 것이다.


패키지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중극이고 황산이고 아버님과 함께하는 여행이고 우리는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기 때문에 패키지 여행을 선택했다. 항주 - 황산 코스의 패키지였기에 처음에는 항주에서 서호유람을 하고 다음 날 황산을 올랐다. 비가 계속 오는 바람에 우의를 입고 산을 오르는데 다행히 황산은 등산로를 만들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라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이제 문제는 황산의 절경을 볼 수 있느냐 마느냐 였다. 황산은 거의 매일 구름이나 안개가 끼어 절경을 다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는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몽필송생 등 황산의 주요 절경을 다수 구경할 수 있었다. 딱히 산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보아도 그림 같은 풍경이었기에 아버님은 더욱 좋아하셨던 것 같다.


PS. 다음은 호주 캠핑카 여행에 추진력을 붙여야 할것같다.



파리 여행

이런저런 운이 좋아서 파리에 다녀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도시에 가면 살고 싶은 도시와 구경하기 좋은 도시로 구분을 짓곤 하는데 파리는 단연 전자였다.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쓸모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파리에는 밥을 먹여주지 않는 미술품도 많고, 서점도 많다. 노천카페의 의자와 테이블, 다리 위의 예술가들, 그리고 자전거가 많다. 공원과 낮은 건물이 많고, 고성과 미술관이 많다.


이렇듯 쓸모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도시. 그래서 너무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에 안고 파리를 다녀왔다.



촛불시위

“그들은 저급하게 가더라도 우리는 품위있게 가자.”


미셸 오바마의 연설 중 나온 문장이며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가 읊조린 문장이다. 2016년의 촛불. 그것은 유신과 친일, 그리고 민주주의를 천천히 들여다보게 해준 빛이었다. 31일 마지막 집회를 마치면 천만명의 사람이 촛불시위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 숫자에 참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년은 보다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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