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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Mar 29. 2017

상상


어린 시절 저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흥미도 소질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죠. 저처럼 그림에 소질이 없는 아이들은 많았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머릿속에서는 피카소가 두어 명 다과회를 하고 있는데 손이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머릿속에 블랙홀 두어 개가 서로 집어 먹으려 안달인 경우였죠. 저의 경우는 운이 좋게도 첫 번째 분류였습니다. 피카소까지는 아니었지만 저는 궁금한 것이 꽤나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래서였는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거리에 비해 오래 걸렸던 기억입니다. 길 주변에 꽃이 피면 꽃을 보고,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쓰레기를 보는 걸 즐겼습니다. (왜 줍지는 않았을까요? 그것 역시 피카소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일 걷는 거리가 딱히 신기하거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묻고 싶은 것은 많았죠. 꽃이 피면 3월 초에도 꽃이 피는지, 왜 이 나무에는 꽃이 피고 저 나무에는 앙상한 가지만 있는지…. 그런 질문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상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꽃이 핀 나무처럼 모든 나무에 꽃이 만개하면 어떤 모습일까? (사실 이런 낭만적인 상상을 한 적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일 년 내내 이 나무에만 꽃이 피어 있다면 어떨까? (대부분이 이런 냉소적인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질문을 떠올리면 다음은 다과회 중인 피카소가 일할 차례였습니다. 그들은 눈앞에 없는 현실을 그리려 무진 애를 썼죠. 예술가들의 창작 욕구를 막을 수 없던 저는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걸음은 느려지고 거리는 일종의 정지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 경험은 어린아이에게는 조금 어색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여유’ 가 만들어내는 행복감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자신이 본 최고의 야경을 떠올려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어른거리는 불빛이 친 거미줄에 걸려버린 ‘시간’이 그려내는 야경을 말이죠. 그런 야경에는 분명 여유가 있습니다. 


야경의 이야기를 길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니 다시 피카소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현실의 피카소와 달리 제 머릿속 피카소는 데생 실력이 상당히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데생을 못 하는 주제에 추상을 하고 예술을 하려니 그들도 곤혹스러웠을 것입니다. 물론 더 곤란했던 것은 저였죠. 말도 안 되는 그림을 완성하고자 늦게 들어가 혼이 나는 것은 어쨋든 저였으니까요. 지금도 떠올려보면 그때 그린 그림의 대부분은 선의 조합이라기보다는 색의 나열 정도로 보면 맞을 것입니다. 제 질문에 대한 제 상상의 그림은 색만 번지듯 보였었으니까요. 그것은 부족했던 손재주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표현해내지 못할 것이니 정교할 필요가 없다고 머리가 미리 판단을 내려버린 것이죠.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없는 것을 보는 체험이었으니까요. 


최근 상상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각자의 유토피아를 그려보는 책이었죠. 책 속의 저자들은 손재주도 좋은지 대부분이 구체적이고 선명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책을 모두 읽고 저 역시 한 번 상상해보았습니다. 유토피아라는 것을 말이죠. 어린 시절의 그때보다는 손재주가 나아졌을 테니 그때보다는 선명한 색, 혹은 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결과를 궁금해하실지 몰라 조금이나마 표현을 해보자면 제가 상상한 것은 노란색이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저 미묘한 경계선 안으로 노란 색 뭉치가 몽실 거리고 있었죠. 그게 뭐냐고 묻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같은 마음이니까요. 하지만 바쁜 일을 아주 잠시만 내려놓고 생각해 봅시다. 마치 그 시절, 거리가 정지상태로 변해버렸던 그 찰나의 순간처럼 말이죠. 


이제 어떤가요? 

답을 내놓으라 칭얼댈 필요가 없어지지 않았나요? 


Written by Dalmoon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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