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연휴에는 부모님을 만났다. 이제는 세돌이 넘은 아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날 쯤에 우리 집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자고 가는 게 부모님과 우리의 패턴이 되었다. 아이가 밤잠을 자고 나면 엄마 남편(언젠가부터 아버지를 속으로 이렇게 부른다.)도 잠을 청하고 오늘의 행사를 치러내느라 고생한 남편도 얼른 방으로 들여보낸다. 그러고 나면 나와 엄마만 식탁에 앉는다.
이날은 묵은 이야기를 꺼냈다. 시작은 친척 동생의 진학 소식이었다. 원하는 곳으로 진학한 친척 동생의 이야기는 옛날의 우리 집 이야기와 같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이 닮아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엔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밑작업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말은 하지만 결국 핵심은 말하지 않고 어려워하는 엄마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내가 먼저 이야기했다.
나는 억압받은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고 이렇지 않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종종 한다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내 삶의 많은 방향을 한 방향으로만 끌고 간 엄마에 대해서 특별히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것도 있지만 나는 나의 삶에서 내가 잘 살 수 있는 방향을 고민했고 나름 잘 살고 있으니 아쉬움과는 별개로 지금의 삶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도 이야기했다. 그때 믿었던 것대로 나에게 했던 것들이 나의 삶을 행복하게 했던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그대로 답습하던 대로 나를 억압했던 것, 본인의 배우자에 대한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되었던 것, 나의 삶은 나의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났고 지난 문제들을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순간이 내게 아주 필요한 순간이었구나 싶었다. 나는 이런 엄마의 이야기를 엄마의 목소리로 듣고 싶었구나. 그리고 엄마는 딸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었구나. 이것으로 엄마에게 응어리를 가지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했다. 삶은 살아갈만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내 울분에 쌓인 감정을 그대로 써왔던 브런치 글을 삭제할까 하다가, 이것도 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겠지 싶어서 다시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