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옷이응 Nov 02. 2020

스물셋에게도 추억할 수 있는 권리는 있으니까.  

스물셋에게도 추억은 있다


내 나이보다 더 먹은 서랍장 안에 우리 가족의 시간들이 담긴 앨범들이 놓여있다. 나는 가끔 집에 들를 때 꼭 나의 시간들이 담긴 것들을 모두 살펴보곤 했다. 예를 들면 앨범, 누군가에게 받았던 편지들, 상장들, 학생기록부, 건강검진표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며 문득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고 싶어서? 혹은 그 순간들을 잊지 않고 싶어서 아니면 그 시간 속의 내가 신기해서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끝에 나는 답을 얻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과 기억하는 순간들의 접합점에서 이 두 가지의 시간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각자의 시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이기에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는 것도 나에게는 참 특별하게 여겨졌다. 모두가 그렇듯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아주 성실히 흘러가기 때문에 그 시간들을 붙잡으려고 하는 나의 행동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보편적인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순간들을 거쳐왔는지 확인을 하다 보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넘나들 수 있다. "아, 이땐 그랬지"라고 중얼대며 과거의 나는 지나쳤을 그 찰나들을 이제서야 붙잡고 진정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순간에 나는 이런 표정을 지었구나. 내가 이렇게 웃을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그 과정에서 나를 더 사랑하게 되고 애정 하게 된다.





언젠가 엄마와 함께 앨범을 보다가 남해 갯벌 앞에서 찍었던 사진을 발견한 적이 있다.

만 5살의 나는 엄마가 예쁘게 입혀준 옷을 입고 쏟아지는 햇빛을 이기지 못해 눈을 질끈 감았지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저 순간은 나에게 아주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었지만 사진을 통해 마치 저 순간의 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해의 바람과 햇빛을 느끼며 치마가 혹여나 뒤집어질까 두 손으로 꼭 잡고 눈은 꽉 감았지만 아주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나. 어쩌면 이 모든 느낌과 나의 생각들은 가짜일지도 모른다. 과거는 쉽게 미화되어버리니까. 하지만, 나는 이러한 과정이 기억의 미화가 아닌 '기억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에 대한 나의 감정과 느낌들은 언제나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때마다 쌓여온 나의 감정들도 기억의 일부가 되어 비로소 온전한 나를 만들어낸다. 사진이라는 기억에 나의 감정을 덧씌우는 일은 언제나 소소한 즐거움이자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따뜻한 시선이니까.







나의 10대의 어느 날에 멈춰버린 나의 방은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장소 중 하나다.

2010년, 아마도 3번째 이사를 하며 엄마가 큰마음을 먹고 사줬던 화이트 색상의 큼지막한 책상.

2007년, 피아노 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아빠에게 선물 받았던, 여전히 내 보물 1호인 피아노.

나의 10대가 담긴 기억 상자와 각종 상장들 모음집.

수능을 준비하며 필기하고 정리했던 공책. 10대를 함께해준 4개의 필통. 이외에도 오카리나, 단소, 물감, 팔레트 등 물건에 담겨있는 나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이 공간이 참 든든했다. 이곳에서의 나를 여전히 기억해주며 그때는 미처 알지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에.



그리고 내 방의 한구석을 지키고 있는 갈색 상자. 지나간 순간들을 모조리 붙잡아둔 상자다. 여기에는 주고받은 편지들과 명찰, 사연 많은 물건들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은 편지들. 글로 적힌 그 순간의 나의 모습을 생각하고 상상하다 보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과 달라서 카톡 선물하기 기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꾸미고 열심히 적은 편지로 마음을 전하곤 했다. 이벤트와 새로운 편지에 집착했던 나는 친구들에게 그 당시 유행하던 모든 편지들을 만들어줬었다. 푸흐흐. 아직도 친구들은 그 얘기를 하며 나를 놀리지만 나는 그런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립다. 숨김없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던 15살의 내가.



혹시 이런 느낌을 아는지 묻고 싶다.


언젠가의 편지들 혹은 물건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냄새와 분위기가 가득한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영원히 그 냄새에 취해있고 싶은 기분 말이다.



23살의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될 줄 나는 알고 있었을까? 추억을 가진다는 건 나이가 든 사람의 특권인 줄로만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을 때 추억에 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치로 여겼으니까. 마치 30대에게는 '넌 아직은 일러.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생각해'라고 하며 50대에게는 '넌 이제 추억을 가질 수 있는 나이구나!'라고 하면서 누군가에게 추억할 권리를 쥐어줬던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란 건 기억하려고 하지 않으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다 잊혀진 후에나 뒤늦게 내 추억들을 찾으려 애쓰고 싶지 않다. 지금도 쌓여가는 내 기억들을 온전하게 담아두고 싶은 마음뿐. 내가 나를 추억하는 것에 어떤 권리도, '너는 이제 추억을 가질 수 있어'라는 누군가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


나의 순간들이 모인 내 방의 공간에서 마음껏 나를 추억할 수 있는 의지만이 존재할 뿐이다.

1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애착 인형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의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