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수 Oct 09. 2021

작가라는 호칭


 가장 기억에 남는 독립서점은 ‘아. 독. 방’이다. ‘아직 독립 못한 책방’의 줄임말로 정말 특이하게 약국의 한편이 책방인 샵인샵 형태의 독립서점이다. 2018년 겨울,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를 구경하기 위해 2박 3일의 일정으로 서울을 갔다. 독립서점을 알게 된 뒤로는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여행지에 있는 독립서점 한 군데 정도는 꼭 가보는데 그 시작이 아독방이었다. 서울 여행 첫날 사촌동생과 함께 아독방을 방문했다. 아독방에 가기 전 사촌동생에게 독립서점과 아독방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사촌동생도 호기심 가득한 마음이 되어 아독방에 도착했다.


 막상 들어가니 생각보다 작은 공간과 조용한 분위기에 사촌동생과 조용히 책만 구경했다. 가기 전에 구매할 책을 정하고 갔던 터라 금방 책을 골랐고 계산을 하고 얼른 나오려고 했다. 사촌동생이 갑자기 언니가 여기 와보고 싶다고 해서 왔다며 부산에서 왔어요라고 약사님에게 이야길 건넸다. 아독방에 간다고 들뜬 모습을 사촌동생에게 보여줬는데 막상 가서는 얼음이 된 내가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약사님은 방긋 웃으며 추운데 멀리서 찾아와 줘 고맙다며 귤과 마실 것을 주셨다. 아독방은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말에 SNS를 팔로우해 쭉 지켜봐 왔다고 하니 내 SNS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당시 SNS에 동글이라는 캐릭터의 그림을 그려 종종 올리던 때였다. 내 SNS를 구경하시던 약사님이 그림이 따뜻해서 파우치나 에코백에 넣으면 좋겠다며 다음에 연락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는 그저 멀리서 온 손님에게 해주는 고마운 빈말이라고 생각했다. 서툰 그림이라 상품화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빈말인 줄 알았던 말은 새해 첫 주에 새해 선물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들어봤다. 내가 여태 본 그림 작가님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한참 부족한 그림이라 처음에 작가님이라고 불리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림에 비해 호칭이 너무 커 보여 부담감으로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음 들은 작가라는 호칭에 내 그림이 인정받은 느낌이라 기분이 아주 좋았다. 아주 좋은 기분에 빠른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했고 내 그림이 들어간 파우치가 나왔다. 파우치 굿즈가 아독방 계정에 게시물로 올라오고 여럿 댓글이 달렸다. 다 만들고 난 후에도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많은 분들의 긍정적이 반응을 보며 안도했다. 그 댓글 하나하나에 창작자로서의 내 존재가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한동안은 매일매일 새로운 댓글을 보려고 게시물을 클릭했다.


 단 세 글자인 ‘작가님’이라는 호칭은 대단했다. 무게감을 주는 단어이기도 했지만 재능과 존재를 인정받는 느낌을 주는 작지만 큰 힘을 가진 단어다. 그때는 내가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감히 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자격 조건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자격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님이지 않을까, 하물며 내 인생을 내가 만들어가니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창작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삶을 잘 이끌어나가고 있는 당신은 이미 작가님이다.

작가의 이전글 궁금하면 공부하는 모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