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자주 보이던 고양이가 있었다. 귀엽다고 보이기만 하면 졸졸 따라다녔는데 그게 그 녀석한테 굉장히 성가신 일이었나 보다. 서로 마주 앉았을 때 내가 손을 뻗은 순간 새끼손가락을 물었다. 물렸다는 거에도 엄청 놀랐는데 피까지 나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 뒤로 고양이만 봐도 무서워서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한 번 고양이 카페를 간 적이 있다. 언제까지고 고양이를 무서워할 수는 없다며 호기롭게 도전한 것이다. 생각보다 고양이들이 마이웨이라 친구들이 불러도 잘 오지 않았다. 그러다 한 마리가 바로 옆까지 왔는데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아직 고양이를 가까이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덜 됐나 보다.
그러다 다시 한번 고양이와 맞설 일이 생겼다. 평소처럼 출근을 했는데 출근하자마자 동료가 사무실 앞에 있는 컨테이너 밑에 고양이가 있다며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 고양이 볼 생각에 신난 동료 앞에서 고양이가 무서워서 난 못 간다고 말할 수가 없어 같이 갔는데 검은 아기 고양이를 만났다. 큰 고양이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무섭지도 않았고 그저 귀여워서 한참을 쭈그려 앉아 보고 있었다. 그 뒤로 출퇴근 길에 몇 번을 마주쳤지만 어느 순간부터 보이질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던 멀리서 보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그 즐거움이 사라져 아쉬웠다.
그런데 한 달 정도 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사무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걸 봤다. 다 큰 고양이라 설마 그때 그 검은 고양이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발 쪽에만 흰 털이 있는 것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렇고 그 아기 고양이인 것이다. 고양이가 이렇게 빨리 클 거라고 생각 못해서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녀석이 자꾸 밥 달라고 찾아오는 것이다. 밥을 주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밥을 줄 때 갑자기 다가올까 봐 너무 겁이 났다. 그래서 처음에는 녀석이 안 보일 때 그릇에 사료를 담아 자주 먹는 곳에 뒀고 츄르는 도저히 직접 주는 게 힘들어서 동료가 줄 때 곁에서 구경만 했다. 누가 밥을 주는지 아는 건지 언제가부터 회사 사람들이 근처에 있으면 곁에와 애교도 부렸다. 밥은 나도 열심히 주는데 츄르는 안 준다고 애교 피울 대상에서 제외시킨 건지 나한테는 가까이 오지 않아 뭔가 굉장히 서운했다. 그 서운함때문에 고양이에 대한 무서움을 극복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먹었다. 나도 이 녀석이 내 다리에 와서 부비부비 하는 걸 보겠다는 큰 다짐을 했다. 동료 중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똑같이 말하며 이 녀석과 친해질 거라고 큰 소리를 쳤다. 분명 큰 소리를 쳤는데 문제는 가까이 다가가질 못하는 것이다. 사무실 출입구 중 한쪽이 투명이라 고양이가 있는지 없는지 바로 확인이 되는데 가끔 녀석이 그 문 앞에서 식빵을 굽고 있으면 그쪽으로 나가야 하는데도 못 나간 적도 있었고 없는 줄 알고 나갔다가 갑자기 옆에서 툭 튀어나와서 혼자 소리 지른 적도 있었다. 멀리서 고양이 눈을 보고 깜빡깜빡거리면 고양이가 경계심을 좀 푼다는 걸 본 적이 있어 충분한 거리를 유지한 상태로 자주 그러고 주저앉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안 건지 멀리서 지켜보며 카메라로 녀석을 담고 있던 순간 갑자기 내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오는 것이다. 솔직히 그때 너무 무서워서 쭈그려 앉은 상태로 뒷걸음을 치다 완전 가까이 온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내가 겁먹은 걸 안 건지는 몰라도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와 부비부비 거리는 것이다. 엄마, 나 성공했어. 흑. 정말 그날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정신을 차리고 영상을 찍어 여기저기 카톡으로 보내며 고양이랑 친해졌다고 자랑을 했다.
녀석의 애교가 익숙해지고 내가 녀석을 만지는 것도 자연스러워지고 몰래 사무실에 들어오면 번쩍 들어 밖으로 안전하게 모시기도 할 때가 되자 다음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츄르 주기. 사료는 그냥 그릇에 담아 곁에 주면 되는 거지만 츄르는 직접 고양이 입에 가져다줘야 하는 거라 어릴 때 물린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아주 고난도 도전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장갑을 끼고 츄르를 줬다. 하지만 언제나 장갑이 준비되어 있던 건 아니라 맨손으로도 줘야 할 때가 다가왔다. 많이 친해졌으니 안 물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처음으로 맨손으로 츄르를 줬다. 고양이 혀가 까끌까끌한지 몰라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 밥 잘 주는 집으로 소문 나 검은 고양이는 여기저기서 동네 길고양이들을 데리고 왔고 한 고양이가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아 총 7마리의 길고양이들과 함께 즐거운 회사생활을 했다. 검은 고양이와 가까워진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부서 이동으로 고양이들과 헤어졌다. 가끔 그곳에서 여전히 근무하는 동료들이 보내주는 사진을 통해 고양이들의 근황을 들여다본다. 이제는 개보다도 고양이를 더 좋다고 할 정도로 고양이가 귀여워 죽겠다. 평생 고양이와는 멀리하고 살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받는 고양이 애교에 질투가 나 나도 고양이한테 이쁨 받겠다는 엉뚱한 이유로 시작된 고양이 극복기로 세상의 귀여운 존재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