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를 시작하며 개인적으로 세운 목표가 있었는데, 그건 좋은 ‘체육’ 선생님보다 좋은 체육 ‘선생님’이 되어 보자는 것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균질한 기능 수준에 도달하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속도와 각자의 방향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 나름대로의 작은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더 큰 이야기로 나아가는 과정이 수업이어야 함을 배워가고 있다.
이번 1학기 수업 내용은 배구 기초 기능이다. 대다수가 배구를 처음 접해보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2학기 말 9인제 리그전까지 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기능 수준이 낮은 학생들이 소외되지 않고, 배구를 이미 잘하는 학생들은 지루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각해 낸 것이 ‘개별 미션 진도표’와 ‘도움 점수제’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배구 기초 기능 1단계부터 10단계까지의 미션에 횟수 제한 없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다.
단계가 상승할수록 기술의 복잡성과 자유도가 증가하며, 필요한 구성원의 수가 늘어나기도 한다. 각 단계 사이에는 느슨한 계열성이 있으나, 반드시 앞 단계를 통과해야만 다음 단계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개인 미션을 모두 달성하더라도 다른 친구들의 미션 수행을 도와주지 않으면 도움 점수를 채울 수 없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아이들이 수십 번의 도전 끝에 기어이 성공해 내거나, 이미 배구를 잘하는 학생들도 아직 기량이 부족한 친구들을 돕기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은 반 전체의 환호와 박수를 부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쁜 순간은 초반에 소극적이던 학생이 실력이 성장해 다른 친구들이 미션에 통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때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이 미션 수행 진도와 도움 점수가 수행평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물론 미션에 성실히 참여해 실력이 상승한 학생들은 수행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게 되겠지만, 성적과 직결되지 않는 활동이기 때문에 오히려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순수한 성취감과 친구를 도와주었을 때의 뿌듯함을 그 자체로 온전히 느끼게끔 하려 했다.
적어도 체육수업에서만큼은 공정하고 엄밀하게 학생들의 현재 상태를 판별하는 것만이 최우선 과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체육교과의 본질적 가치는 신체활동에 내재된 인류의 공적 가치를 전수받는 것이므로, 남과 비교하고 줄 세우는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전통으로서의 신체활동문화를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어 나가기, 또한 그 이야기를 타인과 ‘함께’ 만들어 나가기여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좋은 이야기는 설명이 아닌 행동과 사건으로 독자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내가 어떤 스포츠에 처음 빠지던 순간을 돌이켜 보아도, 언제나 이런저런 이유보다는 그날의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아이들에게도 매시간 가장 재밌었거나 인상 깊었던 팀별 에피소드를 하나씩 기억해 수업이 끝나기 전 서로 이야기 나누도록 하는 시간을 짧게나마 가지고 있다. 배구라는 스포츠를 하나의 실천전통이자 문화로 받아들인다면, 이 학생들은 그 길고 오랜 이야기에 이제 막 자신만의 첫 문장을 이어 써나가기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이 배구와 사랑에 빠지는 날은 오늘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를 포함해 모두가 매일 나름의 방식으로 어쩌면 나아지고 있다. 나아지고 있길 바란다.
202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