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

by 이새하



'폴리네시아 삼각형(Polynesian Triangle)'은 북쪽의 하와이, 남서쪽의 뉴질랜드, 동쪽의 이스터섬을 각 꼭지점으로 하는 태평양의 거대한 문화권이다. 여기에는 타히티, 사모아, 통가, 보라보라와 같은 수많은 섬들이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이 바다이며, 서로 수천 km 이상 떨어진 이 지역들이 어떻게 비슷한 언어와 공통된 신화를 가지고 발전할 수 있었는지는 초기 서양 인류학의 오랜 미스터리였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우연히 표류한 것이 아니라 나침반이나 지도와 같은 현대 장비 없이도 외딴섬들까지 왕복하거나 물자를 교역했다는 흔적이 발견돼 더욱 신비하게 느껴진다.


과거 이 지역의 사람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놀라운 자연 항법 체계를 고유한 전통으로 발전시켜 왔음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였다. 원주민들의 언어로 'Etak’이라고 하는 이 항해술은 체계적인 감각 훈련과 기억 체계, 문화적 정체성이 결합된 살아있는 지식이었다.


그들은 낮에는 매 순간 미세하게 달라지는 파도의 방향과 리듬, 계절에 따른 바람의 변화를 읽고 밤이 되면 별이 뜨고 지는 경로를 따라가며 현재 위치를 가늠했다. 이러한 항해의 기술들은 문자가 아닌 노래와 이야기의 형태로 세대를 넘어 전수되었다. 수년에 걸친 학습과 실제 항해를 통해 지식은 총체적으로 체화되고 그 사람의 ‘내부에’ 살아 있는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이처럼 공동체 속에서 이론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이 역동적이고 상호보완적으로 끊임없이 재구조화되는 총체적 학습 과정을 교육학적 관점에서 하나의 실천전통이라 부를 수 있다.


항해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닌 문화적 수행이 되어야 했던 것은 과거 폴리네시아인들이 처한 근본적인 삶의 구조와 깊이 맞물려 있다. 산호초에 둘러싸인 지역인 에메랄드빛의 라군은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 어업과 정착 생활의 중심이자, 위험의 요소가 없는 안전한 보금자리다. 하지만 식수와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섬의 지리적 환경에서 공동체의 규모가 일정 크기를 넘어서면, 새로운 공간으로의 탐험과 이주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 된다. 그러나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정치와 사회 구조가 변화하고 정착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섬 사람들은 더 이상 장거리 항해를 위해 배를 타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천전통의 명맥이 유실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고도로 전문화된 소수의 전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들어 ‘마우 피아이루그’를 포함해 구전과 실천으로만 전해지던 항해술을 온전히 계승한 마지막 세대는 전통 방식과 선박을 재현해 하와이-타히티 항해에 성공하게 된다. 그들은 단순한 항해 기술자가 아니라 바다 건너 보이지 않는 영토를 상상하고, 그곳으로의 도달 가능성을 믿은 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세계관 속에는 지적 탁월함과 더불어 품성적 탁월함에 대한 준거도 함께 용해되어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섬을 찾는 신화와 전설, 노래, 춤, 의례를 통해 항해와 관련된 지식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정서·신념·의지·태도를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지식 그 자체의 내용보다도, 지식이 몸에 새겨지고 다시 실제의 삶에서 작동하게끔 하는 원리와 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시대의 교육자들이 실천전통을 담지한 항해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함은 일견 분명하다. 그러나 갈수록 고도로 전문화·파편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론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을 총체성이라는 하나의 그물로 낚아 올리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그물코를 채울 방법을 나의 성긴 지혜로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미력하나마 그 앎을 살기 위해 노를 저어갈 뿐이다.

그리고 우리를 매혹시키는 미지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산호초 너머에 있다. 원주민들이 먼 바다, '모아나'라고 부르는 그곳에.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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