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깊은 꿈

- 「가지 않은 길 3」 서평 -

by 이새하


일본의 대학에 파견되어 연구생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갑자기 막대한 자유의 상속인이 되었다. 낡고 열악한 기숙사에서 지내며 생활고에 시달릴 때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시간에 있어서만큼은 책임 없는 쾌락의 시기였다.

대형 서점들이 즐비한 도쿄와는 멀리 떨어진 시골이라 한국어로 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그래도 츠쿠바 대학의 중앙도서관은 꽤 큰 규모여서 여러 외국어 서적들 가운데 오래된 북한(!)과 한국 책들이 책장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도서관에 비치된 유일한 한국어 소설이 1987년도에 출간된 우리 시대 우리 작가 전집이었다. 이질적인 언어와 모호한 개념들의 틈바구니에서 모국어의 명징하고 적확한 문장들이 주는 위로는 컸다. 아마 다른 읽을거리가 넘치는 상황이었다면 굳이 집어 들지 않았을 그 옛 소설들이 타국살이의 외로움에 지치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 나의 가장 큰 위안이 되어 준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문학 작품 그 자체는 생의 결핍을 곧바로 메워주거나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상처를 들여다보고 고통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문학에게 있다. 문학이라는 렌즈에 투과시키면 결핍으로 인해 오히려 삶은 이전보다 더 다채로워지기도 한다.

이러한 원리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을 감상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실의 스포츠 상황에서는 전부 드러나지 않는, 혹은 드러낼 수 없는 면면들을 스포츠 문학을 통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러한 틈입이 스포츠에 더욱 깊게 빠져들게 하는 촉매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스포츠가 단순한 모티브나 배경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핵심 주제가 되는 문학 작품이나 다양한 서사 예술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독자에서 스포츠 참여자로 변모하게 되는 계기이자 새로운 유입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뛰어난 스포츠 시·소설·에세이·논픽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소개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체육교사가 스스로 스포츠 서사의 창작자가 되거나 학생들의 창작 활동 역시 독려하는 일도 동일한 무게로 중요하다. 이는 스포츠의 ‘안에서’ 인접 학문과의 교집합을 늘려 가는 시도, 다시 말해 스포츠 개념의 내포를 심화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포츠와 표면적인 관련성이 없더라도 신체·경쟁·연대·폭력·규범과 같은 주제를 모색해 온 문학과 예술, 철학과 사회과학의 시선 역시 스포츠를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스포츠의 ‘바깥에서’ 스포츠를 풍부하게 하는, 즉 외연을 확장하는 작업에 해당한다. ‘동문서답’은 본래 요점에서 벗어난 엉뚱한 대답을 의미하지만, 때로는 동쪽의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서쪽에서 구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결국 스포츠 교육의 발전에는 수렴적 노력과 발산적 의지가 동시에 필요한데, 한 지점에 깊이 천착하는 노력과 전혀 새로운 길을 경유하며 의미를 탐색하려는 의지는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 까닭이다. 학교체육이 더욱 적극적으로 타 교과의 융합을 도모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나의 체육수업 내에서도 신체활동 경험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여러 시도들을 해왔지만 제한된 시수와 환경 속에서 그 의도가 학생들에게 충실히 전달되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교과라는 칸막이를 걷어내고 ‘몸으로 하는 사유’를 중심으로 심화된 내포와 확장된 외연을 아울러 통섭(統攝)하는 것은 체육교사로서 나의 궁극적 이상이다. 반드시 별도의 융합 교육과정을 구성하지 않더라도 학문을 횡단하는 교수·학습 및 실천의 중요성에 대한 교내 학습공동체의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꼭 실현 불가능한 목표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예술은 세계에 고유하게 연루되려는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이 욕망의 원심력과 구심력이 만들어내는 긴장은 도리어 작품을 풍요롭게 한다. 외국의 도서관에서 내가 마주한 1970-80년대 우리 문학이 그토록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이유도, 격동의 시대를 지나며 미적 이상과 현실 고발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짊어지고 치열한 고민으로 제련한 살아있는 글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교육에 있어서도 대안적 신체문화로서의 원심력과 교육과정 내 성취기준이라는 구심력이 병존하고 있다. 이 두 방향의 힘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스포츠 리터러시 교육의 심원한 지평은 더 넓어지고 깊어지리라 믿는다.


202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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