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책을 들다」 서평 -
"선생님, 오늘은 제발 자유시간 주시면 안 돼요?"
듣는 순간 나를 비롯해 수많은 체육교사들의 머리에 뿔이 돋게 하는 발언이다. 하루쯤은 팀 미션과 개인평가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놀고 싶은 심정이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국영수 시간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텐데 체육은 그래도 괜찮은 시간쯤으로 아는 것은 아닐까라는 단단히 꼬인 생각이 먼저 고개를 치켜든다.
용기구와 공간이 한정된 수업 환경에서 방임에 가까운 자유를 허용하면 활동 경험의 기회가 편중되는 현상은 불가피하다. 설령 학생 각자의 신체활동시간이 충분히 확보된다 하더라도 통상적 의미의 '자유시간'에 내가 회의적인 이유는 학생들 사이의 의사소통 방향과 범위가 국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체육교사 생활 십 년이 넘었으니, 강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업 방식에 있어 변화를 시도해보자는 생각으로 지난 학기 처음 '자율 훈련 시간'을 조건부 도입했다. 학생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1) 공동의 목표와 이를 위한 공감대가 구성원들 간에 형성되어 있을 것.
2) 학생들에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과 사전 지식이 있을 것.
3) 교사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필요시 개입을 허용할 것.
우려 속에 진행된 자율 훈련 시간의 효과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학생들은 그동안 진행된 배구 수행평가 리그전과 반 대항 연습경기를 토대로 팀별 강점을 강화하거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연습을 스스로 기획했다. 서브·리시브·블로킹·커버 등의 상황을 중심으로 역할을 분담해 훈련을 진행했고, 기존의 팀 미션에서 수행했던 내용을 응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처음의 걱정과 달리 교사의 개입이 없이도 운동 기능이 뛰어난 몇몇 학생들이 기회를 독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구기 종목 수업에서 다소 소극적이었던 여학생들도 같은 팀의 다른 여학생들을 가르쳐 주는 데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하거나, 오히려 교사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피드백해주는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지점에서 '유능한 또래'만큼이나 주효한 '무능한 또래'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학생들은 자신보다 뛰어난 팀원으로부터도 배우지만, 자신보다 부족한 팀원을 도우면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성장하게 된다. 이는 교사의 가르침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소비할 때는 일어날 수 없는 종류의 질적 성장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번 경우에는 다행히 적절한 조건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우선 전환기 반별 대항전이라는 당면 과제가 존재했고, 평가가 모두 종료된 학기말이다보니 각 팀의 남녀 주장들에게 이미 각 기술을 세련화할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스포츠클럽이나 자율 동아리에 비해 특정 종목에 대한 관심도와 숙련도의 편차가 큰 체육수업에서 학생들 간의 교학상장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는 불완전한 과제가 있을 때 이를 완성하려는 인지적 긴장이 학습자의 자발적 참여와 몰입을 촉발하는 현상인 자이가르닉 효과로도 설명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수호믈린스키의 교육 철학을 소개한 장에서도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의문을 해소하기보다 스스로 의문을 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업 내에서 교사는 모든 해답을 주지 않는다(또는 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결여의 상태에서 정답을, 때로는 문제마저도 학생이 스스로 찾아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 비어 있는 미완의 영역을 매개로 학습자의 사고력이 점화되고 새로운 변용과 창조가 일어남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내가 설계한 그동안의 체육수업은 외부 방해 요소들의 유입을 차폐하여 학습자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닫힌계系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난 학기의 자율 훈련 시간을 운영하며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학생들의 깨달음이 반드시 교사가 사전에 계획하고 허용한 테두리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나? 모든 학생들의 일관된 성취를 보장한다는 명목 하에 위험요소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더 큰 성장의 여지마저 소거해 버린 것은 아닌가?
요즘의 아이들은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다. 방과후에도 이어지는 빡빡한 사교육 스케쥴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는 한가한 시간을 운운하는 것은 사치로 여겨진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도파민을 빠르게 충전하기 용이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백을 부여하는 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백을 즐기고 활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수업에서 쌓은 경험을 진정한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되면 '한가한 시간'은 더 이상 낭비가 아니라 지적 적극성을 발휘하는 토대가 된다.
여백이 있어야 아이들은 자란다. 느리더라도 더 튼튼하게 자란다. 절제된 애정을 바탕으로 교사와 학생 간 거리두기가 이루어지면, 궁극적으로는 학생 역시 수업과의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수업의 '안쪽에서' 그 내용에 충분히 몰입해 겪어본 뒤에, 수업으로부터 빠져나와 그 '바깥에서' 전체적인 맥락과 의미를 조망할 때 비로소 자신만의 이야기를 엮어나갈 수 있게 된다.
수업과 삶을 주어진 대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이 '겪기와 엮기'를 얼마나 잘 해내느냐에 달려 있다. 진정한 자유는 단지 제약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님을, 그 제약과 구속을 모두 끌어안고 더 큰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있다는 진리를 책장을 덮으며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 본다.
2026.01.23.